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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설날 풍경

등록일 2023-01-25 19:55 게재일 2023-01-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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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이번 설에도 우리는 모두 호텔에서 만났고 헤어졌다. 올해는 대구의 자연휴양림을 겸한 한적한 호텔을 찾았다. 방 셋을 예약해 두었다. 나와 남편 둘에다가, 서울 큰아들네 4명과 대구의 작은아들네 4명 모두 합하면 10명이다. 세배는 모두 우리 방에 와서 하고, 새해 덕담 나눈 후 아침 조식을 하러 갔다. 여유롭고 느긋하고 무엇보다도 며느리와 손주들이 좋아해서 이런 명절 지내기를 정한 나 자신이 뿌듯하기까지 하다.

30년 전 시어머니 장례 후, 제사를 누가 모실지 남편과 시숙 3형제분이 숙의를 하셨다. 그 일이 상의할 문제인가마는 맏형님네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 상태였고, 둘째 형님은 모태신앙으로 기독교를 믿는 분이셨다. 형제 중 막내인 남편은 선뜻 내가 모실게요 말하기에 내 눈치가 보였던 모양이었다. 이 사람도 집에서 노는 사람이 아니잖느냐고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나는 흔연히 내가 모시고 싶다고 얘기했다. 직장 다닌다는 핑계로 어머님께 아이들을 맡겼고, 기쁘게 우리 아이 둘을 키워 주셨던 분이었다. 제사를 모시면 그 보답이 될까 싶은 생각이었다. 또한, 친정어머니가 제사 지내고 어른 모시는 큰집이 얼마나 좋은가를 자주 얘기했으며 평소 그 소임을 감당하시는 큰어머니를 매우 부러워하셨다. 당시 36살밖에 안된 나는 비록 막내지만 제사를 지내면 친정어머니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큰집 행세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가 보다. 예전 조선시대에는 윤회봉사라고 해서 아들딸 구분 없이 자녀들이 조상들의 제사를 나누어 모셨던 적이 있었다. 반드시 맏이만 제사 의무를 질 필요는 없다는 얕은 지식도 나의 결정에 한몫했다.

100일 동안 매일 아침저녁 상식을 차려 올리는 100일 탈상을 했고, 초하루 보름엔 삭망을 지내는 풍습을 따랐다. 매년 설과 추석의 두 차례 차례와 기제사도 나름 정성껏 준비하고 모셨다. 그렇게 25년을 제사를 지냈다.

두 형제가 3년 간격으로 차례로 결혼을 하고, 또 연년이 4명의 손주가 태어나자 명절 풍경이 갑자기 왁자해졌다. 시숙들 식구와 함께 모이면 15명이나 되니 와, 이건 보통일이 아니라는 현실감에 새로운 모색을 할 시점이었다. 무엇보다도 직장 다니는 두 며느리에게 명절증후군 따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야 뭐, 옛날 시속 숭상하고 잘하든 못하든 내가 자발적으로 맡은 일이었지만, 나의 며느리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5년전 추석 차례 지낸 후, 가족회의를 하자고 했다. 그리곤 내 생각을 얘기했다. 어쩌면 나의 일방적 선언, 또는 통보였다고 하는 게 더 맞다. 기제사는 우리 두 내외가 힘닿는 대로 모시겠다. 명절엔 차례 대신 성묘를 하겠으며, 아이들과는 이 귀한 연휴엔 가족 여행을 계획하겠다고 했다. 손주들이 더 크면 어려울 일이기에 내년부터 바로 시행할 거라고 했다. 시숙께서 그동안 고생했다는 치하도 곁들여 흔쾌히 두말없이 동의해 주셨다.

그리고는 우리는 해마다 두 번의 정기적인 가족여행을 준비하여 경주, 부산, 여수 등지에서 만나고 명절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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