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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라는 생애의 시

등록일 2023-01-15 17:38 게재일 2023-01-1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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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 시인

자주 먼지 털고 소중히 닦아서

가슴에 달고 있다가 저승 올 때 가져오라고

어머닌 눈 감으시며 그렇게 당부하셨다.

 

가끔 이름을 보면 어머니를 생각한다

먼지 묻은 이름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 내 이름을 써 보곤 한다.

 

티끌처럼 가벼운 한 생을 상징하는

상처 많은, 때 묻은, 이름의 비애여

천지에

너는 걸려서

거울처럼

나를 비춘다.

 

-‘이우걸 시조전집’(태학사, 2013) 중 ‘이름’

 

 

현대시조에서 이우걸 시인(1947년~)의 위상은 각별하고 돌올하다. 이 시를 보며 오래전 초등학교 입학 사진 한 장을 떠올린다. 가슴에는 네모반듯하게 접은 하얀색 면 손수건과 이름표를 달고 입학식 운동장에 코흘리개들이 줄을 맞춰 서 있던 장면 말이다.

화자는 “자주 먼지 털고 / 소중히 닦아서 // 가슴에 달고 있다가 / 저승 올 때 가져오라고” 어머니의 유언을 회고하며 이름에 부침하는 생의 의미를 환치하고 있다.

어린아이의 콧물 닦기 손수건은 자라면서, 세상의 먼지를 닦듯 자기 삶의 먼지를 터는 용도로 바뀐다. 그렇게 이름을 잘 간수해서 명예롭게 가져오라는 어머니의 귀한 당부가 담겨 있다. 하나 실상은 이름에 먼지 묻히지 않고 살아내기란 쉽지 않다. “상처 많고, 때 묻기 쉬운” 이름의 비애다. 이름은 인생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리라.

시간이 빚어놓은 인생, 그 안에는 고난도 있고 실패도 있다. 가족이라는 품에서 처음 사회라는 세상에 나온 아이들이 왼쪽 가슴에 손수건을 단 것은 공교롭게도 은유로 읽힌다. 이제 생필품이 된 티슈 같은 것이 없었던 이유도 있겠지만 가슴에 달린 이름표와 손수건은 완벽하게 짝패다. 삶은 어쩌면 성공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실패가 만들어낸 개인의 역사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화자는 이름을 생각하면 어머니가 떠오르고 티끌 같은 한 생을 이름이란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볍지만 무겁게 한 번 왔다 쓰고 가는 그 이름에 이름값을 한다는 것, 맨 처음 부모로부터 받은 생애 첫 시(詩)라고 불리는 이름은 어떤 뜻이 있을까.

“이름 명(名)은 저녁 석(夕)에 입구(口)가 붙은 뜻과 뜻이 합쳐진 문자로 결국 저녁에 부르는 이름이 된다. 해가 떠서 날이 환할 때는 사람의 얼굴이 표식이 되어 누가 누구인지 분간이 될 터인데 날이 저물면 사정은 다르다. 그래서 만든 것이 이름이며, 이름은 나와 남을 구분하는 표식”이라고 했다. 달리 말하면 이름은 나와 타자와의 식별이고 관계 속에서 이름은 다르게 호명된다.

사람은 결코 아름답지만도 추하지만도 않다. 지상의 생명체라는 독특한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불릴까. 유년 시절 동네 아이들과 해가 지는 것도 모르고 놀고 있을 때면 골목마다 아무개의 이름을 부르던 어머니들의 긴 육성이 들리는 듯하다. 사회적 관계에서 부르는 누구 씨의 짧은 스타카토 음이 아닌 길게 메아리쳐 돌아오는 이름이 귓가를 지난다. 그렇게 어머니의 긴 호명은 더 깊은 여음으로 거울을 거느리고 되돌아오는 것이다.

여명이 밝은 날 아침이면 거울을 닦듯 소중히 이름 석 자를 써 볼 일이다.

◇ 이희정 시인 약력 ·2019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내 오랜 이웃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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