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권력의 위기, 신뢰의 위기

등록일 2022-12-26 19:59 게재일 2022-12-27 19면
스크랩버튼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에서도 우리의 정치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정치의 실종은 권력의 위기이고, 권력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를 의미한다. 집행권력을 가진 여당이나 입법권력을 가진 야당이나 권력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여야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약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권력의 획득·유지·확대’를 위해 수많은 거짓말들을 한다.

이 가운데에는 ‘용서받은 거짓말’도 있고, ‘용서받지 못한 거짓말’도 있다. 미국의 트럼프(D. Trump) 전 대통령은 4년 동안 ‘3만573번의 거짓말’(워싱턴포스트)을 하면서도 임기는 채웠으나, 닉슨(R. Nixon) 전 대통령은 워터게이트(Watergate)사건을 은폐, 조작한 거짓말이 탄로나 재임 중에 하야했다.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어떤가? 지난 대선 결과가 보여준 윤석열과 이재명의 ‘간발의 득표 차이’는 두 후보가 국민으로부터 평가받은 ‘간발의 신뢰 차이’를 말해준다. 대장동사건으로 최측근들이 연이어 구속되었는데도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사과 한마디 않는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나, 외교무대에서 불거진 비속어 논란을 덮으려고 말 바꾸기와 우기기로 일관하다가 그 책임을 언론으로 돌린 윤석열 대통령이나 ‘신뢰의 수준은 도토리 키 재기’이다.

공자가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無信不立)”고 한 것처럼, 정치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국민의 신뢰다. 신뢰란 무엇인가? 믿음을 뜻하는 신(信)은 ‘사람(人)+말(言)’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이 말한 바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 즉 ‘언행일치’가 신뢰다. 스스로 ‘무신불립’을 역설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것이나, 공정·정의·평등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권이 심판받은 것은 모두 국민을 배신했기 때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성공 역시 국민의 지지여하에 달려 있고, 국민의 지지율은 신뢰도와 궤를 같이한다. 낮은 지지율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 대통령은 당선 인사에서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간절한 호소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보여준 정치행태는 공정과 상식에 부합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과 대립으로 통합의 정치는 말뿐이었다.

대통령의 약속이 거짓으로 드러나면 민심은 떠나고 정권은 위기를 맞는다. 정치의 성공은 신뢰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국정의 동력도 역시 국민의 신뢰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내 탓을 남 탓으로 돌려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비겁한 권력, 민심을 외면하는 권력 지상주의 정치로서는 결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거짓말’이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로 미화되는 탈진실시대의 지도자는 ‘권력과 신뢰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정치적 공인의 권력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목적이 된 권력은 국민의 신뢰를 잃음으로써 마침내 권력도 잃게 된다.

세상을 보는 窓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