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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문화도시 벳부에서의 8박9일

박선유 시민기자
등록일 2022-12-18 18:19 게재일 2022-12-1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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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와 닮은 벳부서 열린 전시·워크샵<br/>예술이 일상이 된 모습 작품에 고스란히<br/>마을 출신 작가들 기획 작품 등 인상적
벳부에 모여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예술가들.
경주에서 하시즈메상 일행을 만난 건 우연이자 운명 같았다. 그 흐름에 이끌려 필자는 최근 8박 9일간 벳부에 위치한 레지던스에 체류하며 전시와 워크샵을 진행했다.

일정은 준비에 매우 촉박했다. 평균 하루 5시간의 수면을 취하며 벳부를 화폭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그중 인상적인 기억들을 아래 기록해 보았다. 벳부는 2차대전의 피해가 없었던 곳으로 옛 건물들과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편이다.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다. 그중 대표적인 건물이 다케가라와 온천, 1879년에 만들어진 공공목욕탕이다.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보존이 쉽지 않았을 터.

그것을 지켜낸 건 벳부시의 시민들이었다. 콘크리트로 변경될 뻔 했을 때 시민들의 한 목소리로 반대했고, 결국 원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근대 건물을 거의 보기 힘들어진 경주와 타 도시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 더 기억에 남는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 동아시아문화도시 관련 지원금으로 많은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기츠키시 야마카 마을에서 열린 카타스미카이카이 예술제였다.

사실 이 예술제는 동아시아문화도시 지원금을 받긴 했으나, 대부분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국 소도시의 인구소멸 문제가 심각하듯 이곳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해결책이자 방안으로 준비된 예술제이기도 했다.

이 마을 출신의 작가가 기획한 전시로 작가들의 작품이 마을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시골마을 상점 등을 그대로 활용해 전시를 했는데, 예술이 일상이 된 모습이었다. 손으로 그려진 지도를 보며 걷다보면 뜻밖에 장소에 작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건물 내 전시장은 작품을 위해 구조나 위치를 변경하지 않고 생활하던 모습 그대로에 작품만 추가된 형태였다. 기교 없이 담백한 요리를 맛본 기분이었다.

기획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기획자 역시 작가인데 그의 작품이 없는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야구나 축구에서 감독이 선수로 뛰는 경우가 있을까? 할 수는 있겠지만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이다.”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답변이었다.

장애인 예술문화지원센터 방문도 기억에 남는다. 오이타는 일본 내에서도 장애인 관련 시설 역사가 긴 곳이다. 담당자인 타찌바나씨가 안내를 해줬다.

장애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들 중 시각장애인과 예술가의 콜라보로 탄생한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시각장애인이 느낀 점과 생각나는 부분을 설명하면 예술가가 표현하는 형식이었는데, 몽환적이며 이색적이었다. 그간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에 대한 당혹감이 함께 들었다. 비 시각장애인인 필자는 그간 그들이 상상하는 세상 또한 내가 아는 세상과 별 다를 게 없다 여겼다. 어쩌면 인식조차 해오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함께 사는 사회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말이다.

귀국 전날엔 벳부 시내에 위치한 신비로운 가게에 초대를 받았다. 이곳엔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요리를 하는 주인장이 살고 있다. 매주 화요일 벳부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모인다고 했다. 벳부에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로 해외뿐만 아니라 일본 내 여러 지역 작가들이 찾아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가게는 작가들의 놀이터인 셈이다. 전시 어시스턴트였던 미사키씨가 사전에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거장 살바도르 달리의 진품도 있다고 했다.

필자는 긴장하고 들어섰다. 전시장에서 만났던 작가들이 꽤 보였다. 그리고 들었던 대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걸려있었다. 다행인 건 분위기 메이커 야마모토씨와 한류의 영향으로 드라마라던가 연예인에 관해 대화를 걸어주는 일본 작가들 덕분에 어색함의 시간이 길지 않았단 사실이다. TV에선 방탄소년단이 입대한다는 NHK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경주에도 이런 공간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벳부에서 경주와 닮은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인구소멸 문제, 외국인 학생이 50퍼센트를 차지한다는 벳부 내 대학, 보존과 개발의 문제, 그리고 예술의 활용과 역할 등 많은 숙제를 안고 돌아온 기분이다. /박선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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