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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공생의 정치

등록일 2022-12-12 18:11 게재일 2022-12-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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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한국정치는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이라는 점에서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이다.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될수록 양당 내부에서는 강경파가 득세함으로써 대결은 더욱 치열해진다. 겉으로는 서로의 증오가 폭발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호 이익을 지켜주는 ‘은폐된 공생관계’에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적대적 공생은 특수한 한국정치문화의 산물이다. 정치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정당체제는 보수와 진보의 전통을 잇는 양대 정당의 독과점 정치구조이다. 한 때 유력한 정치지도자를 중심으로 제3당이 부상한 경우도 있었지만, 양당 중심의 정치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체시키지는 못했다. 양당의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안이 없다는 현실이 유권자들의 정치혐오를 증대시키고 있다.

양당의 적대적 공생은 이분법적 정치문화로 인해 더욱 공고해졌다. 한국정치는 냉전과 6·25, 남·북한 간의 끝없는 대치 속에서 선악을 나누는 ‘정치적 흑백론’이 지배하게 되었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독선적이고 비민주적인 정치의식이 우리의 정치를 갈등과 대결로 내몰았다. 그 결과 각 진영에서는 극단적 성향의 정치팬덤(fandom)들이 득세하게 되었는데, 이는 동시에 두 진영 간 적대적 대결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적대적 공생관계는 여야 정당에게 정치적 이익을 제공해 준다. 야당은 국정을 책임진 여당의 무능과 실정을 공격할 수 있고, 여당은 그 책임을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야당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야당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집중 공격함으로써 사법 리스크로 흔들리고 있는 이재명 대표를 지키려하고, 여당은 야당 대표를 대장동사건의 몸통으로 각인시킴으로써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과 부인 및 처가 리스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두 정당은 ‘전쟁’을 통해서 서로의 ‘생존’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적대적 공생의 최대 수혜자는 거대 양당의 정치인들이고,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다. 적대적 공생의 정치는 증오를 먹고 살기 때문에 양당은 모든 역량과 자원을 소모적 정쟁에 투입한다. 이 때 수세에 몰린 야당은 자신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권력투쟁의 전선을 확대해나가는 반면, 권력을 장악한 정부여당은 야당과의 협치를 거부하고 야당 인사들에 대한 비리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 결국 정치가 실종됨으로써 국민의 고통만 커지게 된다.

이제 우리 정치도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적대적 공생’의 악순환을 끊고,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우호적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기적으로는 독과점 정치구조의 혁신을 모색해야하며, 단기적으로는 정치인과 국민의 정치의식개혁이 시급하다.

양당의 주도세력이 교조주의자에서 합리주의자로 대체될 때 비로소 정치가 살아날 수 있다. 특히 정치팬덤들은 자신들의 과격한 행동 때문에 상대 진영 팬덤들의 입지가 더욱 강고해진다는 역설을 깨달아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의 이성 결핍은 민주정치의 반동화를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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