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헌법에는 국가의 최고의무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태원에서 10·29 참사가 일어났을 때 국민은 “압사당할 것 같다”, “살려 달라”고 절규했는데, 국가는 응답이 없었다. 무책임한 국가를 믿었던 순진한 청춘들의 비극이었다.
이번 참사와 관련하여 고위공직자들이 보여준 행태는 개탄스럽다.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행안부장관), “국정상황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대통령 비서실장), “핼러윈은 축제가 아니라 현상”(용산구청장)이라는 등 모두가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또한 참사가 일어났던 그 시간, 경찰청장과 용산경찰서장은 비상연락이 되지 않았고, 용산구청장은 참사 전후의 대책회의에 모두 불참했다. 게다가 책임을 추궁 받는 국감장에서 홍보수석과 시민사회수석은 “웃기고 있네”라고 필담을 하다가 들켜서 같은 당 주호영 위원장에 의해 퇴장 당했다. 이처럼 공직자들의 무능과 무책임이 총체적이니 문제가 심각하다.
철학자 베른하르트 그림(Bernhard A. Grimm)은 “책임을 지지 않는 권력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민주정치는 책임정치다. 국민을 책임지지 못하는 정권은 교체된다. 책임의 크기는 권력의 크기에 비례한다. 고위직일수록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다. 책임은 법적 책임은 물론, 정치적 책임까지 포함된다. 고위공직자는 형사책임이 없다고 해서 정치적 책임도 없는 것은 아니다. 10·29 참사와 관련하여 “장관과 경찰청장에 대한 경질요구는 후진적”이라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인식이야말로 후진적이다. 비서실장의 책임의식이 이러하니 공직사회의 책임윤리가 바로 설 수 있겠는가?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정치인은 신념윤리와 책임윤리가 충돌할 때 책임윤리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정치는 결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하고, 선의(善意)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자의 신념윤리가 강할수록 정치는 이념화되고 실용성은 떨어진다. 책임윤리는 없고 권력의지만 강한 정치인은 국민에게 재앙이다. 고위공직자는 법적 책임을 묻기 이전에 스스로 도덕적·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윤리가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검사 출신 대통령이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대통령이 법적 책임만 따진다면 분노한 민심을 더욱 격앙시킬 뿐이다. 법적 책임은 향후 법원이 판단할 것이니 대통령은 먼저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야당의 무책임한 정치공세는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이 10·29 참사의 책임을 야당에 돌릴 수는 없다.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측근의 보호가 아니라 국민의 고통과 함께하는 것’이다.
책임윤리가 실종된 고위공직자들이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서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들에게 권력에 따른 올바른 책임의식을 심어주어야 하는 것은 바로 대통령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