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기자, 포항을 산책하다<br/>영일대해수욕장서 동빈큰다리 3.1㎞ <br/>영일대 해상누각서 울릉도 선착장까지<br/>가을 해변길 북적임 없이 느긋하게 즐겨<br/>알록달록 네온·갖가지 조형물 등 감상도<br/>정비 끝낸 동빈내항엔 조명시설 갖추고 <br/>해경 파출소까지 소재해 치안 걱정 덜어<br/>동빈큰다리까지 "40~50분 코스"로 완주
비단 여름 한철만이 아니다. 포항의 주요 해수욕장 가운데 하나인 영일대해수욕장에선 계절과 무관하게 젊은이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7~8월엔 수영과 일광욕을 즐기며 휴가를 보내는 청년들이 많고, 겨울엔 한적한 해변 풍경을 즐기며 삼삼오오 사진을 찍는 20~30대가 흔한 장소가 바로 영일대해수욕장.
그렇다면 가을이 무르익은 요즘은 어떨까? 지난 주말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영일대 해변을 산책했다. 드물게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해수욕장인 그곳엔 크고 작은 카페와 주점을 포함해 젊은이들이 즐길만한 ‘핫 스폿(Hot spot)’이 적지 않다.
여름 더위는 이미 물러갔고, 아직은 추위가 도착하지 않은 완연한 가을. 데이트를 즐기거나, 모처럼 휴일을 맞아 바다 정취를 맛보려는 청년들이 영일대해수욕장 주변에 가득했다.
시끌벅적 야외에서 조개를 구워 파는 술집과 양고기가 맛있는 식당, 멀리 포스코가 네온사인을 밝힌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며 향기로운 차를 마실 수 있는 커피숍마다 그들이 속삭이는 밀어(蜜語)가 넘쳐나고 있었다.
기왕지사 거기까지 갔으니 이제는 멀리 떠나버린 기자의 청춘시절을 추억하며 영일대해수욕장에서 동빈큰다리까지 3.1㎞쯤을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영일대해수욕장은 경북 포항시 북구 항구동과 두호동에 인접한 해변이다. 백사장의 길이가 1천750m, 너비는 40~70m 정도이며 면적이 38만㎡인 이 해수욕장은 물결이 잔잔한 여름엔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포항의 명소.
해마다 방문객들을 위한 정비가 이뤄지기 때문에 백사장의 모래도 깨끗하다. 그렇기에 식구들이 함께 찾기에 적합한 동해의 근사한 해수욕장으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물론 샤워장과 탈의장, 주차장 등 편의시설도 두루 갖췄다.
▲국내 최초 해상 누각에서 출발하는 산책
‘코로나19 사태’가 한국을 뒤흔들기 이전엔 해마다 국제불빛축제와 바다국제공연예술제 등이 열린 곳도 바로 영일대해수욕장. 요트와 수상 오토바이를 타는 이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1976년 개장한 이 해수욕장은 이전엔 포항의 북쪽에 위치했다는 이유로 ‘북부해수욕장’으로 불렸다. 50대 이상의 포항시민들은 아직도 이 명칭에 익숙하다.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것은 9년 전인 2013년.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영일대해수욕장’이란 이름을 확정했고, 그해 6월 29일에 명칭이 바뀌었음을 공식적으로 알렸다”고 ‘위키백과’는 설명하고 있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장미가 피어있는 영일대장미원은 영일대 해상누각 맞은편에서 위치했다. 꽃처럼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사진 파트너’가 또 있을까?
나이 지긋한 중년 여성은 물론, 교복을 입은 10대 여고생들까지 장미와 얼굴을 맞대고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세상사 고민과 걱정거리야 늙은이건 젊은이건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꽃과 함께 하는 그 순간만은 다들 얼굴에 장미보다 화사한 꽃이 피었다. 바로 ‘웃음꽃’이다.
코로나19가 힘을 잃기 시작한 후부턴 영일대 해상 누각 인근에서 건강을 위해 에어로빅을 하는 모습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조그만 단상 위에 올라 다이내믹한 춤 동작을 보여주는 강사의 모습을 열심히 따라하는 아주머니들이 적지 않다. 이 광경은 해질 무렵 영일대해수욕장의 진풍경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영일대 해상 누각은 낮에 봐도 좋지만, 불 밝힌 야경이 더욱 매력적이다. 바다 위에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 고풍스런 누각에 도착하면 탁 트인 바다 풍경이 시원스러움을 선사한다.
이 누각은 한국 최초의 해상누각으로 이름을 알렸다. 두호동행정복지센터 앞 해상 100m 지점에 자리했는데, 포항을 찾은 지인 중 하나는 해상 누각 지척에 위치한 행정복지센터를 보고는 “이런 경치를 보면서 근무하면 스트레스도 없을 것 같다”는 진심 담긴 우스개를 하기도 했다.
젊은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기꺼이 받아 안고, 느슨해진 신발 끈을 다시 묶었다. 영일대해수욕장을 출발해 40~50분 정도면 동빈내항을 거쳐 포항 북구 동빈동과 남구 송도동을 잇는 동빈큰다리까지 갈 수 있다.
▲‘완보’가 아닌 ‘속보’로 보다 큰 운동 효과를
해상 누각에서 출발해 영일대해수욕장의 다른 편 끝까지 가는 길에서도 많은 선남선녀를 지나쳤다.
만추를 느끼며 정겨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그들은 야외 테이블에서 ‘치맥’을 즐기기도 하고, 여름보다 인적이 드물어진 해변에서 어깨를 감싸 안은 포즈로 둘의 모습이 담긴 ‘셀카’를 찍기도 했다. 대부분이 느긋한 태도로 산책을 즐기고 있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제대로 운동복을 갖춰 입고 제법 빠른 걸음으로 해변을 걸었다. 맞다. 운동 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저 정도 속도의 걸음걸이가 좋다고 그랬다.
천천히 걷는 완보에 비해 빠르게 걷는 속보는 심폐 기능을 강화하고,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해주는데 보다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에서 발간한 ‘운동가이드’는 속보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팔을 앞뒤로 자연스럽고 활기차게 움직인다. 운동 강도는 50~70%이고 분당 80~90m의 속도로 시간당 5~5.5㎞를 이동하며, 분당 3.5kcal 이상의 에너지가 소비된다.”
20분가량을 걸어 동빈내항의 입구라 할 수 있는 영일만 관광유람선 선착장에 이르렀다. 여기서 울릉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출발한다. 60대 후반인 아주머니 두 분이 잠시 속보를 멈추고 배낭 속에 준비해온 물을 꺼내 마셨다.
“추우나 더우나 매일 저녁 이 길을 걷는다”는 그들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앞서 언급한 ‘건강가이드’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이른바 ‘걷기의 효과’다.
“걷기 운동은 체지방을 감소시켜 비만을 개선하고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성인병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뼈를 자극해 골밀도를 유지하고 증진시켜 골다공증을 예방한다. 이에 더해 스트레스, 불안감, 우울증 감소에도 도움이 된다…(후략)”
▲어둠 내린 동빈내항엔 세월 낚는 낚시꾼이
알록달록한 네온이 반짝이고, 철로 만든 갖가지 조형물과 모래조각까지 감상할 수 있는 영일대해수욕장에 비해 11월 초순의 동빈내항은 조금 쓸쓸한 풍경이다.
포항에 태풍이 닥칠 때면 바람과 파도를 피하는 배들로 넘쳐나는 동빈내항은 형산강이 동해와 만나는 끝자락에 자리했다. 크지는 않지만 쓰임새가 적지 않은 항구다. 주변으로는 산책로도 잘 정비돼 있다. 이전엔 오염이 심해 악취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도 있었다지만, 지난 2017년부터 3년간 진행된 정화작업으로 지금의 동빈내항 일대는 과거보다 많이 깨끗해졌다.
태풍과는 무관한 계절이라 동빈내항에 정박한 배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인적도 영일대해수욕장에 비해 드물었다. 그래서일까? 거기에서의 산책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없지 않을 듯했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한국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 치안이 좋은 국가다. 게다가 동빈내항 인접 산책로엔 오렌지색 조명 시설이 밝게 켜져 있어 해가 진 이후 걷기에도 어려움이 없다. 항구 한가운데엔 해양경찰서 포항파출소까지 있으니 과한 걱정은 접어도 좋을 것 같았다.
짭짤한 바다 내음을 실어오는 가을바람이 볼을 스치는 순간. 낮에 하는 산책 이상으로 밤 산책 또한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영일대 해상 누각에서 출발해 동빈큰다리에 이르는 걷기 운동이 끝나가고 있었다.
저문 동빈내항엔 낚싯대를 드리운 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물고기가 잡히기는 하는 걸까? 그러나, 이 의문은 이내 접었다. 낚시꾼은 물고기만이 아닌 세월을 낚는 사람이 아닌가.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