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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게 없는, 동해안에서 가장 너른 장터

등록일 2022-10-19 20:15 게재일 2022-10-2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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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포항 &lt;10&gt;<br/>죽도시장
도심 한복판에 있는 죽도시장은 동해안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이자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동해안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은 포항에 있는 죽도시장이다. 시장 면적이 14만8천760㎢에 이르고 점포 수는 2천500개 정도 된다.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성한, 없는 게 없는 너른 장터다. 모두 25개 구역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수산물, 농산물, 청과물, 죽세공품, 한복, 수예, 이불, 주전부리 등 이 세상에 존재할 만한 거의 모든 품목이 진열되어 있다. 포항 사람치고 죽도시장에 한 번이라도 안 가본 사람이 없고, 외지인들도 포항에 오면 호기심에라도 한 번은 들르게 된다.

 

14만 8천760㎢ 이르는 동해안 가장 큰 전통시장

점포 수 2천500개… 다채로운 볼거리·먹을거리

1930년대부터 죽도 갈대밭에 좌판 모인 장터 형성

1971년 시장 허가 받아… 100년 가까운 역사 자랑

전국 각지 해산물들이 모인 ‘백화점’ 죽도어시장

지역의 명물 과메기·대게·고래고기 등도 ‘인기’

아케이드·청정 해수 공급 시설 등 현대화 공 들여

커피숍·게스트하우스 등 둥지… 젊은 감성도 물씬

시장은 지역의 역사와 궤적을 함께하며 죽도시장 또한 그렇다. 일제강점기부터 포항의 원도심인 여천동에 시장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시가지가 초토화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와는 별개로 1930년대부터 죽도 갈대밭에 좌판이 옹기종기 모인 장터가 형성되어 점점 덩치를 키우다가 한국전쟁 직전에는 지금 죽도시장의 3분의 1 규모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시장은 거의 불타버렸고 전쟁 후에 복구를 거쳐 1960년대에 구획정리사업이 전개되었다. 그 후 규모가 커지면서 1971년 11월 시장 허가를 받은 것이 죽도시장이다. 이런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죽도시장의 역사는 100년 가까이 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 3대 시장인 부조장(扶助場)이 형산강 하류에 있었다. 부조장은 ‘윗부조장’(경주 강동면 국당리 강변)과 ‘아랫부조장’(포항 연일읍 중명리 강변)으로 형성되었다. 부조장은 서해 강경장, 남해 마산장과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장터로, 포항 연안의 청어와 소금을 내륙으로 가져다 팔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농산물을 거래하는 교역의 요충지였다. 당시 형산강 유역에는 수많은 황포돛배가 떠 있었고 전국의 보부상들이 모여들었다. 부조장은 20세기 들어 포항과 부산을 연결하는 동해남부선 철도가 부설되는 등 교통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역사의 흐름 속으로 보면 죽도시장은 부조장의 전통을 잇는 큰 장터인 셈이다.

 

 

싱싱한 해산물의 백화점, 죽도어시장

전통시장은 어딜 가나 붐비지만 죽도시장에서 가장 시끌벅적한 곳은 어시장이다. 상인도 많고 손님은 더 많아 늘 북새통을 이룬다. 전통시장이 예전에 비해 많이 힘들어졌고 죽도시장의 사정도 다를 바 없지만 어시장은 여전히 활기가 넘친다. 포항 연근해는 물론 전국 각지의 해산물이 모여 있는 죽도어시장은 싱싱한 해산물의 백화점이라 할 만하다. 다양하고 신선하고 저렴한 해산물이 지천으로 깔려 있어 대형마트보다 값싸고 물 좋은 생선을 살 수 있다. 대게, 홍게, 꽃게는 물론, 독도새우, 꽃새우, 닭새우가 있고 참소라, 뿔소라, 나팔소라가 있다. 고등어, 갈치, 오징어, 문어, 낙지, 전복이 있고 가자미, 조기, 도루묵, 소라, 고동, 멍게, 해삼, 가리비, 바지락이 있다. 그 밖에도 바다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해산물이 죽도어시장에서 거래된다고 보면 된다.

죽도어시장에서 가장 북적거리는 수협 위판장은 포항의 새벽을 깨우는 곳이다. 새벽 별이 반짝이는 4시 30분쯤 위판장은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켜고 있다. 트럭에 실려 위판장에 들어온 생선을 상인들이 바닥에 가지런히 정렬하면 빨간 모자를 쓴 경매사를 필두로 중매인들이 우르르 모여 경매가 시작된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 경매사가 구성진 목소리로 이끌어가는 새벽 경매는 죽도어시장의 진풍경이다. 위판장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생선들이 하나둘 낙찰자를 만나 팔려나가고 장사 준비를 위해 상인들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에 동이 튼다.

 

 

과메기, 대게, 고래고기를 맛볼 수 있어

해산물은 아무래도 찬 바람이 불어야 제맛이다. 12월에 접어들면 죽도어시장은 과메기가 뒤덮다시피 한다. 어시장의 모든 점포에서 과메기를 내놓는데 꽁치 과메기가 대부분이지만 과메기의 원조인 청어 과메기도 더러 볼 수 있다. 속이 꽉 찬 대게도 겨울 어시장의 인기 품목이다. 어시장에 들어서면 수조에 대게가 꽉 차 있고, 대게 찌는 수증기가 풀풀 날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고소하고 담백한 대게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시장을 계속 찾아온다. 대게의 주산지는 구룡포이며, 죽도어시장의 대게도 대부분 구룡포에서 온다. 사계절 내내 대게를 팔지만 대게의 제철인 겨울에 제맛을 맛볼 수 있다.

죽도어시장에는 고래고기를 전문으로 파는 점포가 있다. 한자리에서 수십 년간 고래 수육과 육회를 팔아온 곳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고래고기 맛을 아는 사람은 따로 있다. 흔히 고래고기는 열두 가지 맛이 난다고 하지만, 수십 년 동안 고래고기를 팔아온 분은 오십 가지 맛이 난다고 말한다. 고래고기는 부위별로 독특한 맛이 있는데 껍질이 두꺼워야 살코기에 기름기가 있어 맛이 좋다. 고래고기를 삶을 때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맛이 확연히 달라진다. 이 점포 앞을 지나가다 보면 대낮부터 고래고기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십중팔구 고래고기의 깊은 맛을 아는 단골들이다.

오징어가 ‘금징어’가 된 지 꽤 되었다. 싱싱한 오징어 한 마리에 4천∼5천 원이니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포항과 울릉도 쪽의 해양생태계가 바뀐 데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이 겹쳐 오징어가 잘 잡히지 않는다. 근래에는 꽁치 어획량도 신통치 않아 꽁치 과메기로 겨울을 나야 하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어족 자원 감소는 어민과 어시장 상인들의 큰 걱정거리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죽도어시장의 사업가들이 일본 시모노세키(下関)에 생선을 수출했다. 포항항에서 삼치, 방어, 복어 등을 선박에 실어 시모노세키로 보냈는데, 이런 수출은 15년가량 이어지다가 중단되고 말았다. 어획량이 줄어들어 손써 볼 방법이 없었다. 우리 연안에서 어획량 감소는 소리 없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죽도어시장.
죽도어시장.

현대적인 시설로 탈바꿈한 죽도시장

전통시장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오래되었다. 죽도시장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00년대 들어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시장 현대화에 많은 공을 들여 이제는 전국 어느 전통시장과 비교하더라도 뒤지지 않는 환경이 되었다. 죽도어시장에서도 깨끗하고 위생적인 수산물을 제공하기 위해 2015년 7월부터 청정 해수 공급 시설을 가동하고 있다. 송도 연안 수심 6미터 지하의 해수를 취수해 여과기로 모래를 씻어낸 다음 2킬로미터의 해수관로를 통해 어시장에 청정 해수를 공급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해수 운반 차량으로 바닷물을 공급했는데, 해수관로가 설치되면서 수도꼭지만 틀면 청정 해수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죽도어시장은 도심 한복판에 있다. 동빈내항, 포항운하, 송도해수욕장, 중앙상가 등 포항의 명소와도 가깝다. 그래서 포항의 명소를 둘러본 관광객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어시장 횟집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근래에는 포항운하에서 유람선을 타고 영일만을 한 바퀴 돌아본 다음, 어시장 횟집에서 시원한 물회나 대게를 먹는 관광객이 많다. 주말에는 포항의 명산인 내연산과 운제산을 등반한 후 어시장에서 회를 즐기는 산악회 회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커피숍과 게스트하우스

죽도시장을 걷다 보면 구석구석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징후를 느낄 수 있다. 그 많던 다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하나둘씩 둥지를 틀고 있다. 시장의 분위기가 한결 젊어지고 있는 것이다. 건어물을 파는 ‘경동시장’은 ‘DOHSH’라는 산뜻한 브랜드를 개발해 다양한 마케팅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주단(綢緞)거리에 있는 커피숍 ‘죽도소년’은 젊은 여행객이 주 고객이다. 전통시장에 외지의 젊은이들이 찾는 커피숍이 있다는 게 생뚱맞게 들리기도 하지만 커피숍에 가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원래 이 자리는 ‘삼일라사’라는 양복점이었고, 뒤이어 ‘삼일주단’이라는 한복점이었는데, 2018년에 책과 그림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커피숍으로 바뀌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었다. 여기에서 만나 결혼한 커플이 있는데, 신부가 입은 웨딩드레스를 진열해놓기도 했다.

낡고 오래된 여인숙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오다가다’도 빼놓을 수 없다. 사양길에 접어든 여인숙을 감성적으로 개조해 이색적인 숙박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여행객들끼리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여행 체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사람들이 외면하던 여인숙이 하룻밤 묵고 싶은 낭만적인 숙소로 변신한 모습을 ‘오다가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죽도시장은 아침이면 유료 변소 앞에 긴 줄을 서야 했고, 수시로 악다구니판이 벌어졌다. 돌이켜보면 그 살벌한 싸움은 시끌벅적한 장터에서 자기 영역을 지켜내며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지. 과거의 살풍경은 사라졌지만 이 풍진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쉴 새 없이 “어서 오이소”를 외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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