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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워크 위를 걸으며 밤바다의 정취에 취하다

등록일 2022-10-11 19:18 게재일 2022-10-12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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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포항 &lt;8&gt;<br/>영일대해수욕장에서 여남까지
여남 스카이 워크

송도에서 동빈내항을 건너면 영일대해수욕장이 나온다. 1975년 개장 때부터 북부해수욕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영일대(迎日臺)’라는 해상 누각을 조성하면서 2012년 6월에 현재 명칭으로 바뀌었다. 송도해수욕장에 사람이 몰리던 시절에 영일대해수욕장은 한가한 해변이었다. 하지만 송도해수욕장이 백사장 유실로 명성을 잃으면서 영일대해수욕장이 부각되었고, 어느새 포항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해수욕장이 되었다. 송도해수욕장처럼 백사장이 유실되지 않고 해수욕장으로서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영일대해수욕장에 사람들이 붐비는 이유라 할 수 있다. 포항의 대표적인 축제인 국제불빛축제 주행사를 비롯해 사계절 내내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는 곳 또한 영일대해수욕장이다.

 

2012년 6월부터 영일대해수욕장으로 불리며

한적한 설머리 마을에 횟집·카페건물 등 가득

사계절 즐길거리·먹거리 찾는 사람들로 북적

 

여남으로 이어진 해안길엔 환호공원이 우뚝

국내 최대규모 체험 조형물 스페이스워크와

테마 소공원·전망대 등 포항밤바다 풍경 일품

 

동해안굿 상징 김석출 만신이 태어난 ‘여남’

국내 최장 463m 해상 보도교 ‘스카이 워크’

영일만 조망 야산 위 커피숍도 핫플레이스

 

바다는 늘 그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있는 듯하지만 순간마다 다른 빛깔, 다른 모습이다. 해가 뜨거나, 햇살을 받아 윤슬이 반짝이거나, 저녁노을이 물들거나, 달이 뜰 때면 바다는 전혀 다른 풍경화가 된다. 호수처럼 잔잔하거나 파도가 높거나 태풍이 몰려오면 바다는 또 다른 풍경화를 펼쳐 보인다. 바다는 그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풍경화를 품고 있다. 바다를 속 깊이 좋아하는 사람은 무심해 보이는 바다의 안부가 궁금해 매일같이 바다를 찾는다.

 

사계절 내내 붐비는 영일대해수욕장

영일대해수욕장은 사계절 내내 사람들로 붐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즐길거리와 먹을거리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횟집을 비롯해 커피숍, 식당, 술집, 숙박시설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1970∼1980년대의 한산했던 풍경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해 질 녘에 바다 위로 노을이 물들고, 어두운 바다에 선박들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면 영일대해수욕장도 화려한 불빛으로 갈아입는다. 제철공장의 거대한 조명이 불을 밝히면 영일대해수욕장의 밤은 더욱 화려해진다. 형형색색의 조명과 어우러지는 밤바다의 정취는 영일대해수욕장의 또 다른 매력이다.

영일대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가면 설머리 마을이 나온다. 신라 경순왕 때 형산(兄山) 정상에 있는 형산사에서 동해 쪽을 내려다보니 고운 모래밭이 하얀 눈처럼 덮인 곳이 눈에 띄어 설(雪)머리라 했다는 얘기가 전한다. 그만큼 포항 해변의 모래가 고왔다.

한적한 어촌이었던 설머리 마을에 고급 횟집이나 카페 같은 건물이 가득 들어차 있다. 포항에서는 유일하게 기존 어항에 요트 등이 정박할 수 있는 피셔리나(fisharina)도 갖추었다. 영일대해수욕장에 사람이 몰리면서 바로 옆에 있는 설머리 마을도 영일대해수욕장처럼 바뀐 것이다. 세월은 번화가를 쇠락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한적한 곳을 번화한 곳으로 바꾸기도 하는데, 설머리 마을은 후자 쪽이다.

영일대와 불빛축제
영일대와 불빛축제

영일만이 한눈에 보이는 환호공원

영일대해수욕장에서 설머리 마을을 지나 여남(汝南)으로 이어지는 해안 길은 걷거나 드라이브하기에 좋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조깅을 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 길은 설머리 마을의 아리랑횟집까지만 있었다. 그 위로는 길이 끊어지고 군부대의 해안 초소가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초소를 철거하고 해안을 매립해 길을 이었으니 그 풍광이 오죽할까. 설머리 마을에서 여남 가는 길 중간에 환호공원이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체험형 조형물인 스페이스 워크가 조성된 후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는 곳이다. 공원에는 테마 소공원과 레저 공간, 전망대, 팔각정, 산책로 등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공원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영일만, 특히 보름달이 뜬 영일만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포항을 왜 일월(日月)의 고장이라는 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캄캄한 밤바다에 은가루를 가득 뿌려놓은 듯한 풍경 앞에서는 말을 잃게 된다.

영일만이 내려다보이는 환호공원 언덕 양지바른 곳에 손춘익 문학비가 있다. 손춘익은 한국 아동문학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작가다. 따뜻한 휴머니즘과 예리한 사회의식을 바탕으로 『작은 어릿광대의 꿈』 등 50여 권의 동화집과 『작은 톱니바퀴의 연가』 등 여러 권의 소설집을 남겼다. 평생 포항을 떠나지 않았으며, 포항의 문화예술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의 문학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외롭다는 것은 언제나 아쉽게 사라지는 것.

하지만 오늘 하루 이 아름답고 황홀한 꽃 한 송이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심어준 보석들은 영원히

반짝이고 있을 것을 우리는 믿어도 좋을 것입니다.

- 동화 「꽃피는 얼굴」 부분

 

동해안굿의 상징 김석출이 태어난 여남

환호공원을 지나면 여남이 나온다. 자연부락인 여남은 도심에서 떨어져 있는 조용한 어촌이었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대양초등학교도 2001년에 폐교되었다. 설머리 마을에서 여남까지 해안 길이 이어지고 마을 주변에 큰 횟집들이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근래 바다가 잘 보이는 야산에 커피숍이 하나둘 들어서더니 어느새 포항에서 고급스러운 커피숍이 가장 많은 곳으로 변했다. 영일만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의 가치를 여남의 변화가 보여주는 것이다.

여남은 동해안굿의 상징인 김석출 만신(萬神)이 태어난 곳이다. 김석출은 1922년 이곳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부터 굿판에서 징채를 잡을 정도로 솜씨가 뛰어났다. 동해안굿은 그를 떠나서 얘기할 수 없다. 그의 삶과 예술적 궤적을 따라가야 비로소 동해안굿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다.

김석출은 20대 중반에 부산으로 떠났지만 그의 일가는 포항에 남아 무업(巫業)을 이어갔다. 하지만 바닷가 마을마다 열리던 굿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도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바닷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굿은 큰 놀이판이자 치유의 마당이고 종합예술이다. 바다를 무대로 한 뿌리 깊은 문화의 향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것은 여간 쓸쓸한 일이 아니다. 김석출의 조카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20여 년간 동해안별신굿을 전수하던 김정희가 2019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동해안굿이 처한 비극적 현실이다.

김석출은 여러 장의 음반을 낸 것은 물론 해외에서 수차례 공연하며 호평을 받은 예인(藝人)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땡큐, 마스터 킴〉은 호주 최고의 재즈 드러머(drummer)인 사이먼 바커(Simon Barker)가 김석출에게 매료되어 그를 만나러 가는 예술적 여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땡큐, 마스터 킴’을 보는 동안 관객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김석출과 그의 음악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우리 음악의 넓이와 깊이에 대해서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사이먼 바커의 팬들은 변화된 그의 음악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이전보다 음악적으로 성숙했다는 것을 팬들이 먼저 알아챘다. 내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 고재열, 「굿 장단에 푹 빠진 외국인, 우리 가락을 영상에 담다」, ‘시사IN’ 155호, 2010.

 

김석출이 태어난 곳에 그를 기억하는 상징물 하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언젠가는 그의 이름 석 자를 새긴 아담한 돌 하나라도 세워지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국내에서 가장 긴 해상 보도교, 스카이 워크

여남의 바다 위에 특별한 구조물 하나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2년 4월 13일 해상 스카이 워크(Sky Walker)가 개장한 것이다. 스카이 워크는 평균 높이 7미터, 총길이 463m에 이르는 국내에서 가장 긴 해상 보도교다. 바닥이 투명한 특수유리로 제작되어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출입구가 해안 산책로와 연결되어 바다와 육지를 넘나들며 영일만을 조망할 수 있고, 야간에도 개장하기에 밤바다의 정취를 감상할 수 있다.

환호공원의 스페이스 워크에서 여남의 스카이 워크까지는 승용차로 7∼8분 거리다. 스페이스 워크에서는 우주를 걷는 듯한 느낌을, 스카이 워크에서는 바다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누릴 수 있다. 영일대해수욕장에서 여남까지는 다른 해변에서 누릴 수 없는 이색 체험을 만끽할 수 있다.

 

글 : 김도형 작가, 사진 : 김훈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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