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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지원, 결국은 빚더미” 태풍 피해 기업 살길 막막

김민지기자
등록일 2022-09-13 20:38 게재일 2022-09-1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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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장비 잠기고 공장 무너져 <br/>생산라인 멈춘 ‘폐공장’들 속출<br/>포스코 외주·연관업체 ‘도미노’<br/>물류기업 대부분 올스톱 상태<br/>이자 혜택·상환 기한 연장뿐인<br/>‘긴급경영안정자금지원’ 역부족<br/>“근본적인 대책 마련돼야” 호소

“금융지원이요. 결국 갚아야 할 빚 아닌가요”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피해로 대기업부터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포항철강공단 기업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정부가 포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면서 피해기업을 대상으로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에 나서고는 있으나 기업인들의 마음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특히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정상조업이 늦어질 경우 한계기업도 속출할 전망이다.

13일 포항시 남구 대송면 제내리에 위치한 한 기계 제조업 공장. 이곳에서 만난 본사 대표 정해식(43)씨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진흙으로 뒤덮이고 벽이 무너져 모든 생산라인이 멈춰 ‘폐공장’이나 다름없는 모습의 공장 내부는 바쁘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 대신 그의 한숨 소리만 울려 퍼졌다. 태풍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6개월 전에 8억여 원을 들여 마련한 설비기계는 물론, 내부 모든 기계들이 물에 잠겨 제 기능을 상실했다. 그는 “흙이 기계 장비 구석구석 말라붙어 있어 수리조차 하지 못한다. 전부 버려야 할 판”이라며 “9월 말 포스코에 납품하기로 한 3억∼4억원의 물품 납기 기약도 연장 신청했다”고 한탄했다. 정씨는 “기계를 새로 들이고 정상가동을 하려면 10월은 넘겨야 한다. 납품을 못하는 동안 자금이 막히는 것이 가장 문제다”며 “추산 피해액은 1억5천여만 원이지만 복구하는 기간까지 장기적으로 본다면 그 이상이다. 현재 정부의 지원으로 손해 복구를 하기엔 턱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공장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추석 연휴도 반납하고 복구에 매달리고 있는 제내리의 모 기업은 수십여억 원 규모의 기계장치를 완성해 납품을 앞두고 흙탕물이 들이닥치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전 직원들이 직장을 살리려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구슬땀을 흘리고 있지만 이미 수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 회사 대표는 “어떻게 일어서야 할지 엄두가 안 난다”며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포스코 외주 및 연관업체들도 시름이 깊다. 이들은 일하는 만큼 매출이 발생하는 시스템인데, 포항제철소의 정상 가동은 아직 초기 단계여서 걱정이 커지고 있다. 수입이 없더라도 임금 등 고정비용은 그대로 지출해야 해 비상이 걸려 있는 것. 모 기업 대표는 “포스코의 피해가 너무 크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내 물류기업들도 현재 대부분 올스톱 됐다. 거의 대부분 침수 피해를 입어 반입과 반출 자체를 못하고 있다. 수마가 할퀴고 간 철강공단 및 인근 지역을 돌아보면 기업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자금난 등 자체 여력이 벽에 부딪혀 저마다 아우성인 모습이 역력했다.

피해 기업들은 지난 12일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대책회의에서 수해 기업·소상공인을 대상으로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보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한목소리로 요청했다. 정부는 피해기업 대상 긴급운영자금 지원(기업은행 최대 3억, 산업은 행 기업당 한도 이내), 신보의 경우 특례보증(보증비율 5% 증가, 보증료율 0.5% 고정)을 비롯해 기존 대출금 최대 1년간 만기연장, 상환유예 등을 지원, 기존 이용 중인 신용보증기금 보증상품 최대 1년간 보증 만기 연장 등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자금·융자 등 이자를 감소하거나 기간을 연장하는 금융·재정 지원이 전부인지라 사실상 기업들은 보상받을 길이 없어 막막한 심정이다.

특히 공단 내 기업들은 각종 보상도 못 받으면서 회사 내부 피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신인도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며 아예 함구하고 있어 공단 내 실제적인 피해 규모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너무 힘들다. 당국에서 피해기업들이 일어 설수 있도록 다양한 추가 대책을 마련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13일 포항시에 따르면 지난 6일 포항을 휩쓸고 간 태풍 힌남노로 포항철강산업단지 104곳과 개별기업 106곳이 물에 잠기거나 시설물이 파손돼 피해를 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추가 정밀 조사가 이뤄지면 피해 규모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김민지기자 mangch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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