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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 같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포항

등록일 2022-09-06 20:44 게재일 2022-09-0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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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포항
스페이스 워크의 야경.

근래 포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은 어디일까? 환호공원에 있는 스페이스 워크(Space Walk)다.

롤러코스터처럼 생긴 묘한 조형물을 보려고 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진다. 2021년 11월 18일 제막한 스페이스 워크는 독일계 예술가 부부인 하이케 무터(Heike Mutter)와 울리히 겐츠(Ulrich Genth)가 디자인한 국내 최초의 체험형 조형물로 총길이 333미터에 가로 60미터, 세로 57미터, 높이 25미터 규모다.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뜻에서 스페이스 워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조형물의 계단을 따라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걷다 보면 아슬아슬한 느낌이 든다.

조형물 아래에서 바라보면 조형물 위를 걷는 사람도 조형물의 일부로 보인다. 보는 각도에 따라 은색 조형물은 수많은 장면으로 바뀐다. 파란 하늘과 에메랄드빛의 맑고 투명한 영일만을 배경으로 하기에 그 장면은 감탄사를 자아낸다. 서쪽 하늘에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면 관람객의 마음에도 홍시빛이 곱게 번진다.

관람객들은 휴대전화로 이 장면을 담아내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 이유로 수많은 스페이스 워크 사진이 SNS로 공유되고 있다.

 

지질학자들이 본 2천만년 신생대 지층

포항시는 화석·고인돌·암각화의 도시

스페이스 워크 통해 지역 새롭게 조망

포항-일본 교류 입증한 ‘연오랑세오녀’

고대부터 일본과 얽힌 역사·신화 전설

강·바다·산·들판·사람 이야기 가득해

포항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조형물

스페이스 워크는 환호공원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아파트 5층 높이로 조성되어 사방이 탁 트여 있다. 동쪽으로는 영일만을 지나 호미곶까지, 서쪽으로는 흥해읍에서 가장 큰 산인 비학산(飛鶴山)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포항을 가슴 깊이 느끼기에 이처럼 좋은 곳은 또 없다.

늘 보던 세상도 새로운 시각으로 보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스페이스 워크라는 새로운 장소에 서면 포항이라는 도시가 새롭게 보인다. 단순히 재미나 쾌감을 넘어 포항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 스페이스 워크의 진정한 기능이 아닐까 싶다. 이 기획도 그러한 목적에서 출발했다. 늘 보던 포항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포항을 찬찬히 살펴보고 음미해보고 싶은 것이다. 포항의 속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그 이야기의 조각을 한데 모아 그동안 몰랐던 포항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화석, 고인돌, 암각화의 도시

포털 사이트에서 ‘포항’을 검색하면 ‘호미곶’이 먼저 뜬다. 그다음으로 포스코, 과메기, 물회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포항에는 이것 말고도 풍요로운 자연과 흥미로운 역사를 배경으로 다양한 볼거리, 먹을거리, 이야깃거리가 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아무래도 철강 도시의 이미지가 강한 탓이다. 포항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알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 몇 토막을 우선 펼쳐본다.

포항은 화석의 도시다. 포항 토박이치고 동네 뒷산에서 조개나 나뭇잎 화석 하나 주워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화석 중 상당수는 세계적으로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 스페이스 워크가 있는 환호공원은 화석의 보고(寶庫)로, 2017년에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지질학자들은 포항 지역을 2000만 년에서 1500만 년 정도 된 신생대 지층으로 본다. 특히 화석이 잘 보존되는 이암(泥巖) 퇴적층이 발달해 바다와 육지 생물 그리고 곤충 등 다양한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1995년에는 환호공원과 가까운 장성동에서 1300만 년 전 돌고래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한국에서 발견된 최초의 돌고래 화석이다. 포항은 고인돌과 암각화(바위 그림)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인 고인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3만여 기의 국내 고인돌은 서해안을 따라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영남에서는 영일만 일대에서 내륙으로 확산된다. 포항 일원에는 335기의 고인돌이 있으며, 기계면에 114기의 고인돌이 모여 있다.

특히 1985년 기계면 인비리 고인돌에서 석검(石劍) 손잡이 모양, 즉 검파형(劍把形) 암각화가 발견된 데 이어 1989년 흥해읍 칠포리 곤륜산 인근에서 검파형, 석검형, 윷판형 등의 암각화 군집이 발견되면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이하우 한국선사미술연구소장에 따르면 칠포리 암각화군은 약 1.7킬로미터에 걸쳐 8개소에서 247점의 표현물이 발견된 한국 최대 면적의 암각화 유적이다.

오래전부터 일본과 교류 이어져

포항의 대표적인 설화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연오랑세오녀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즉위 4년인 서기 157년 때의 이 이야기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오래전부터 포항 지역이 일본과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역사에 대한 관점은 우리와 다르지만, 일본에서도 포항이 일본과 많이 얽혀 있다고 본다. 그러한 시각은 1935년 일본인들이 발간한 ‘포항지(誌)’의 첫 대목에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포항항은 경상북도의 동쪽 끝에 위치한 조선 남부(南鮮) 동해안 유일의 무역항이다. 그리고 그 땅은 고대부터 일본과는 관계가 매우 밀접해 그 유명한 스사노오노미코토(素盞鳴尊)나 스쿠나히코나(小彦名)도 이곳 포항에서 도항했다던가. 또한 진구 황후(神功皇后)가 삼한 정벌에 친히 나섰을 때의 항로를 이곳으로 채택했다고 전해져, 지금의 포항역 뒤쪽 죽림산에는 황후가 상륙한 유적으로서 황후 신사가 세워져 있다. 그 밖에도 일본과 얽힌 이 땅의 신화 전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 김진홍 엮음, ‘일제의 특별한 식민지 포항’, 글항아리, 2020, 40쪽.

그 후로도 포항은 일본과 얽히고설키는 관계가 이어진다. 고려시대에 왜구는 우리 연안에서 약탈을 일삼았는데 영일만 일대도 주요 공략 대상이었다.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우왕 13년(1387) 통양포(通洋浦, 지금의 두호동)에 해군기지인 수군만호진(水軍萬戶鎭)을 설치하는데, 이를 계기로 포항은 동해안의 군사 요충지가 된다.

조선시대에 창진(倉鎭)이 설치된 것도 포항 역사의 중요한 장면이다. 영조 7년(1731) 경상도 감사의 요청에 따라 흉년으로 고통받는 함경도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곡식 최대 보관량 5만 석, 거느린 배만 14척에 이르는 대규모 관창(官倉)이 포항에 설치되었다. 이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으며, 포항(浦項)이라는 지명은 이때 처음 등장한다. 포항 창진은 훗날 강원도, 전라도 등 다른 지역도 구제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고려시대 수군만호진, 조선시대 창진 설치는 요즘으로 치면 해군과 대규모 물류기지가 들어선 것이다. 형산강을 품고 영일만을 접하고 있는 포항의 독특한 지리가 군사적, 물류적 관점에서는 중요한 덕분이다. 훗날 포항에 해병대 1사단이 주둔한 이래 해병대의 요람이 된 것, 포항에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철강산업단지가 조성된 것, 동해안의 유일한 국제무역항인 영일만항이 개항된 것은 이러한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수없이 펼쳐져

1900년대 초반 포항은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연일군(延日郡) 북면 포항동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흥해군, 청하군, 장기군이 포항보다 규모가 크고 유서 깊은 곳이었다. 포항이 속한 연일군은 1914년 부군면(府郡面) 통폐합 때 흥해군, 청하군, 장기군과 영일군(迎日郡)으로 통합된다. 포항에 정착한 일본인들이 포항을 개발하면서 변화가 일어난다. 포항의 규모가 커지면서 1917년에 지정면, 1931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광복 후 1949년 8월 14일 포항부(府)로 승격되어 영일군에서 분리되었고, 이튿날 포항시로 개칭되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포항은 일제강점기에 근대 도시의 골격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포항의 풍부한 자원이 일본에 수탈당한 아픔이 있다.

한국전쟁 때 초토화된 포항은 1960년대 후반 포스코가 설립되면서 운명이 바뀐다. 알려져 있다시피 포스코의 설립자금은 대일 청구권 자금의 일부다. 포스코의 성공으로 포항은 우리나라 산업의 심장이 되었고, 포스코가 설립한 연구중심대학 포스텍(포항공대)을 기반으로 첨단과학의 샛별이 되었다.

1995년 1월 포항시와 영일군이 통합되면서 지금의 포항이 된다. 일개 동(洞)이었던 포항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모태인 영일군을 통합한 것이다. 1128.76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통합 포항시의 면적은 서울시의 약 두 배에 해당한다. 역동적인 역사가 전개된 포항에는 아득한 과거와 최첨단의 다양한 양상이 층층이 쌓여 있다. 신석기시대의 흔적을 담고 있는 화석부터 전 세계에서 4개국에만 설치된 4세대 방사광가속기까지 두루두루 품고 있는 곳이 포항이다. 그런 까닭에 세헤라자드가 밤마다 풀어놓는 ‘천일야화’처럼 포항의 강과 바다, 산과 들판,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수없이 펼쳐져 있다.

글 : 김도형 작가, 사진 : 김훈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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