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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戊寅)

등록일 2022-08-17 18:35 게재일 2022-08-1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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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온作 ‘사라지다’

육십갑자 중 열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무인(戊寅)이다. 천간(天干)은 무토(戊土)요, 지지(地支)는 인목(寅木)이다.‘잔설(殘雪)이 남아있는 봄 산’의 물상이다. 무(戊)는 만물을 무성하게 성장시키는 위엄을 상징한다. 호랑이 인(寅)은 봄의 양기가 막 터져 나와서 생명을 키우는 의욕이 대단하며, 진리를 펼치려는 형상이자 포악성의 의미도 내재되어 있다.

호랑이는 야행성이다. 보통 인시(寅時), 새벽 3시부터 5시 사이에 먹이 사냥을 위해 움직인다. 동트기 전에 움직이는 동물이기에 그렇다. 호랑이는 움직이는 반경이 200km 이상이므로 야생의 왕 중의 왕이며, 역마의 기운이 있다.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사람에게 ‘역마살’이 끼었다고 하고, 이동수가 있다고 한다. 농경사회에서는 고향을 떠나는 것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유목민’(노마드)같은 삶을 야만적이고 열등하다고 규정하였다.

시대가 변하면 생활방식과 사고도 변하여 ‘역마살’에 대한 해석도 달리한다. 오늘날에는 살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처럼 역마의 기운을 살려야 한다.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은 바다로 진출하는 것이 살 길이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가 저서‘차이와 반복’에서 ‘노마드’를 처음 언급했다. 땅에 뿌리 내리고 토박이로 살며 정체성과 배타성을 지닌 민족을 이루기보다는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바꾸어 나가며 창조적으로 사는 인간형을 말한다. 또는 여러 학문과 지식의 분야를 넘나들며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인간형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 역사에서 노마드적 삶을 산 신라시대 혜초(慧超·704~780년) 스님이 있었다. 1908년 9월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1878∼1945)는 중국 돈황 막고굴 제17굴(장경동)에서 그동안 이름만 알려져 있었을 뿐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찾아냈다. 책명도 저자명도 떨어져 나간 채 발견된 이 여행기가 8세기에 활동한 혜초 스님이 저술한 ‘왕오천축국전’의 잔간(殘簡) 사본이라는 것이 발견자에 의해 밝혀졌다. 펠리오는 종이의 질이나 필치로 보아 9세기에 필사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혜초 스님은 스승의 권유로 불법을 구하기 위해 인도로 떠났다. 약 4년 동안 인도와 멀리 중동지역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육로여행을 하면서 각 지역에서 불교를 어떻게 믿고 있는지와 함께 옷·음식 ·풍속·기후 등 그 당시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모아서 기록했다. 그 당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미지에 대한 동경과 새로운 지식을 찾고자 하는 갈망 즉, 노마드 기질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혜초 스님은 그 시대의 진정한 세계인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1찬300여 년 전의 불교역사와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8세기의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기행문은 세계에서 이 책밖에 없어 더욱 그 가치가 높다. 또한 세계 4대 여행기로 손꼽히며 그중에서도 가장 일찍 쓰여진 것이다. 현재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무인일주(戊寅日柱)는 일지(日支·배우자궁)에 편관칠살을 두고 있다. 어의(語義)가 좋지 않아 나쁘다고 보는 인식이 있으며, 안락하고 편안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통변을 달리 해석하고 있다. 독선적이지만 관운이 좋다. 자신을 낮출 줄 알고, 지인 또는 배우자의 조언을 귀담아 들으면 명예와 존경이 뒤따를 수가 있다. 조직생활이나 직장생활과는 잘 어울리나, 사업과는 거리가 멀다.

‘안자춘추’ ‘내편’ 잡상 편에 나오는 글이다. 안자가 제(齊)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어느 날, 수레를 타고 문을 나섰다. 어느 날 수레를 모는 사람의 아내는 남편이 수레를 모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수레 위에 세워 놓은 큰 양산 아래에 앉아서 채찍을 휘둘러 네 마리의 커다란 말을 몰아치는 자기 남편의 모습은 아주 우쭐거리고 거칠 것 없어 보였다.

수레를 모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자, 그의 아내가 다짜고짜로 헤어지자고 하였다. 날벼락 같은 소리에 수레를 모는 사람은 어이 없이 아내를 멍청히 보다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아내는 “안자께서는 키가 여섯 자도 안 되시지만, 제나라의 재상으로 모든 나라에서 많은 존경을 받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분의 태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겸손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분이 외출하시는 모습에서도 그분의 생각이 아주 깊이가 있다는 것이 바로 눈에 보입니다. 당신은 키가 여덟 자가 넘으면서도 겨우 남의 수레나 모는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거들먹거리는 모습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그런 당신 같은 사람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당신과 헤어지자고 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류대창명리연구자
류대창명리연구자

이때부터 수레를 모는 사람은 아주 겸손해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안자가 수레를 모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처럼 변하게 되었느냐고 묻자 그는 아내의 이야기를 안자에게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안자는 그를 벼슬자리에 추천했다.

인간은 어떤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주변에 떠도는 말보다는 통찰력이 있는 사람을 통해 참된 말에 관심을 기울여야 실수가 적다. 무관심은 자칫 타인과의 단절로 이뤄져 자신의 삶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선택과 소망은 아주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속성을 지닌다. 불가능한 일을 선택했을 때는 바보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소망은 불가능한 일에도 성립할 수가 있다. 사람들은 영화배우의 인기나 운동선수의 승리처럼 자신의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소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선택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만 합리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양치기 소년처럼 허황되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똑똑한 지도자보다는 진실 되고 실현 가능한 것을 말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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