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함산에 깃든 신라 역사와 경주 이야기<br/> ⑤ 불국의 나라를 꿈꾸다 ⑷ 작품 속에 표현된 불국사
□초의선사가 불국사 머물며 시 짓기도
불국사는 통일신라시대 과학 기술의 수준과 건축술, 예술적 감수성이 오롯이 담겨 있는 시대의 걸작품이다. 오랜 역사를 버티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자리잡은 만큼 숨겨진 이야기가 풍부한 곳이기도 하다.
불국사·석굴암 가치 주목한 것은 조선인이 아닌 고미술품 가치 알았던 일본인
일본 고미술학자·사학자 몰려들자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도 찾아 ‘경주 붐’ 시작
가람 이병기·소설가 현진건 등 작품화… 소림사 배경 홍콩 영화 촬영지이기도
불국사와 관련된 유명인사 중 추사 김정희(1786~1856)와 초의선사의 이야기는 대단히 흥미롭다. 추사 김정희는 잘 알려있듯이 추사체를 일군 조선 최고의 서예가다. 1817년 김정희는 우정을 나눈 초의선사와 경주에 머물고 있었다. 초의선사는 법명이 의순(1786~1866)으로 해남 대흥사의 제13대 종사이자 국내 다도의 중흥자로 유명한 스님이다. 다도만큼 학식도 높아서 추사 외에도 실학의 선구자인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마음의 위안을 준 덕승(德僧)이었다.
김정희와 초의선사는 서로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깊게 교류했다. 그중에서도 초의선사가 불국사에 머물며 지은 시에는 김정희와의 만남을 고대하는 장면이 나온다.
불국사에서 옛일을 생각하며 9수 [佛國寺懷古 九首 丁丑六月在慶州]
오래도록 순시하고 있는 그대가 못내 그리워 / 苦憶先生久在行
자하문 밖 맑게 갠 하늘을 바라보네 / 紫霞門外看新晴
세상에서 불국은 차라리 얻기라도 쉽지만 / 佛國人間寧易得
서로 만나 못 다한 정을 누릴 수 있을까 / 相邀始可遂閑情
시를 받은 김정희는 당대 문장가 답게 아래 시를 써서 화답했다.
초의의 불국사시 뒤에 쓰다 [題草衣佛國寺詩後]
연지의 다보탑이 법흥의 연대라서 / 蓮地寶塔法興年
선탑의 꽃 바람이 한결같이 아득하이 / 禪榻花風一惘然
이게 바로 영양이 뿔을 걸어 놓은 데라 / 可是羚羊掛角處
어느 누가 괴석에다 맑은 샘을 쏟았는고 / 誰將怪石注淸泉
마지막 연의 괴석에 맑은 샘은 물은 수구를 통해 연지의 괴석 위로 떨어지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지금도 비가 내리는 날 불국사 청운교 옆에서 볼 수 있다.
□이병기, 이태준 등 수많은 문인들이 경탄
김정희와 초의선사가 주고받은 시의 소재가 된 불국사는 수많은 문학예술인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우리 문학 속에 불국사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제 강점기였다. 불국사와 석굴암의 가치에 대해 주목한 것은 조선인이 아니라 고미술품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일본인들이었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불국사를 일본의 유명사찰인 동대사나 청수사보다 더 높은 수준의 절로 인식했던 것 같다. 당시 일본인들에게 경주는 불국사와 석굴암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재를 품은 보물같은 곳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고미술학자나 사학자들이 경주로 몰려들었다. 경주 붐이 일자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은 왜 일본인들이 경주에 대해 경탄 하는지 알고 싶어서 경주를 하나둘 찾기 시작했다.
조선의 내로라 하는 지식인들이 경주를 찾고 글을 남기자 그 뒤를 이어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오기 시작했다. 경주가 ‘수학여행 1번지’가 된 것도 이때 부터였다. 수학여행은 대체로 2박3일 코스였고, 불국사와 석굴암은 당시에도 중요 관람 코스 중 하나였다. 휘문고보 선생이었던 가람 이병기는 수학여행 인솔교사로 3번이나 경주를 방문했고 여행기를 언론 매체에 기고하기도 했다. 이병기 선생이 1927년 10월 조선일보에 연재한 ‘가을의 경주를 찾아서’에는 당시 불국사의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주지 스님은 두어 상좌를 데리고 날마다 이 보배들을 구경하러 오는 손님네의 치다꺼리를 하느라고 염불도 할 겨를이 없는 모양이다”
이병기 선생은 석굴암과 관련한 시조를 쓰기도 했다.
한 고개 또 한 고개 고개를 헤어오다
토함산 넘어 서서 동해바다 바라보고
저믄날 돌아갈 길이 바쁜 줄을 모르네
보고 보고 지어 이곳에 석굴암이
험궂은 고개 넘어 굽이 굽이 도는 길을
잦은 숨 잰 걸음 치며 오고 오고 하누나
(석굴암(石窟庵) 전문)
1925년 한국 최초의 서사시집으로 불리는 ‘국경의 밤’을 간행한 파인(巴人) 김동환도 불국사를 사랑한 문인이었다. 유명잡지인 ‘삼천리’에 ‘불국사의 동백꽃’이라는 시와 ‘백마강과 불국사를 주제로 한 기행문, ‘불국사의 서전(瑞田) 황태자’라는 수필문을 기고하기도 했다.
불국사의 아름다움에 몰입했던 소설가는 ‘빈처’의 현진건이었다.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시절 고도순례(고도순례)-경주(1929)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신라 천년의 화려했던 역사를 지면 위에 살려냈다. 특히 불국사의 아름다운 정경과 석굴암의 빼어난 예술적 감각 등을 섬세하게 묘사한 이글은 지금까지도 명문(名文)으로 손꼽히고 있다. 불국사에 깊은 인상을 받은 현진건은 이후 석가탑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무영탑’이라는 소설을 내기도 했다.
상허(尙虛) 이태준의 불국사 사랑도 현진건 못지않았다. 한국 근대문학의 첫 번째로 꼽는 명문장가인 그는 1935년 ‘조광’지에 발표한 ‘불국사 돌층계’라는 작품을 통해 불국사를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다.
“신라 사람들이 밟던 층계로구나! 생각하니 그 댓돌마다 ‘쿵’ 울리면서 예전 사람들의 발자취 소리가 어느 틈에서고 풍겨 나올 것 같았다. 그들은 어떤 모양의 신발을 신었던 것일까? 그때 부인들의 치맛자락은 얼마나 고운 것이, 또 얼마나 긴 것이 이 층계를 쓰다듬으며 오르고 내린 것일까? 나는 아득한 환상에 잠기며 그 말 없는 돌층계를 폭양(暴陽) 아래에 수없이 오르고 내리고 하였다. 지나간 사람들 발자취, 우리는 어디서 그것을 만져 볼 것인가. 바람에 쓸리고 빗물에 닳았으되 그들이 밟던 돌층계만이 그래도 어루만지면 무슨 촉감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어서 가을에 한번 다시 가서 그 돌층계를 만져도 보고 밟아도 보고 싶다.”- 수필 ‘불국사 돌층계’ 일부
이태준의 단편 소설 ‘석양’에도 불국사가 나온다. 소설 속 여주인공 타옥에게 불국사는 절이라기엔 너무나 목가적인 서정이 무르녹아 있다. 청운교, 백운교의 흐르는 듯한 돌층계에는 곧 무희라도 나타나 춤추며 내려올 듯하다고 표현한다. 석가탑, 다보탑 두 탑과 범영루에 걸터앉아 흰 구름을 보기도 한다. 호텔에서 영지를 내려다보며 슬픈 전설을 통해 또한번 허무를 이야기한다. 불국사에서 사흘을 머물며 석굴암의 예술적 황홀감에 사로잡히기도 하며 십일면관음상의 손등을 만져보기도 한다.
소설 속 이야기는 해운대에서 마무리되지만 경주가 주무대다. 오릉과 불국사, 석굴암 영지 등 유적지 명소들을 배경으로 남녀 간 사랑의 덧없음과 허무를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YMCA 야구단’의 촬영지
촬영지로도 불국사는 인기가 높았다. 1970년대 무협 홍콩 영화를 보면 불국사가 종종 소림사로 나올 때가 있다. 1978년 성룡이 출연한 ‘권정(금강혈인)’이 대표적이다. 당시 중국이 경직된 사회여서 본토 촬영이 불가능했고 홍콩 땅은 너무 좁아서 사찰을 배경으로 할 촬영지가 별로 없었다. 그나마 전통건축이 비슷하게 생긴 한국에서 중국 무협 배경으로 촬영하곤 했는데 불국사는 가장 적합한 촬영지였다고 한다.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불국사가 신라 황궁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영화 ‘YMCA 야구단’에서는 여주인공인 정림(김혜수)이 동료인 대현(김주혁)과 함께 불국사의 다보탑을 방문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 역시 불국사에서 직접 촬영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사실 옥의 티에 가깝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을사조약을 전후한 구한말인데, 당시 불국사는 폐사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가수 현인의 데뷔곡이자, 현인을 가요계의 정상에 오르게 만들어 준 곡인 ‘신라의 달밤’의 가사 1절에는 ‘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 온다’라는 가사가 나온다. 또한 그의 노래 중에서 ‘불국사의 밤’은 불국사를 배경으로 한 노래다.
세계 언론 속에 불국사
러 국영뉴스채널·스페인 일간지
신비함 간직한 꼭 찾아야할 명소
‘2021 트래블러스 초이스 어워드’
경북 대표 관광지로 첫 이름 올려
불국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사찰로 전세계 언론에 소개됐다.
2014년 불국사와 석굴암, 템플스테이, 한글이 러시아 국영뉴스채널 24TV를 통해 소개됐다. 24TV는 “오랜 신비함을 담고 있는 한국의 불교 사찰들”이라는 제하로 불국사와 석굴암 방문기를 보도했다. 방송은 불국사가 ‘행복한 나라의 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며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찰이 여러 번 훼손되었지만 한국인들은 항상 불국사를 재건했다고 설명했다. 또 불국사는 서울에서 상당히 먼 거리인 경주에 있지만 고속열차를 이용하면 2시간 만에 경주역에 도착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불국사의 상징인 석가탑과 다보탑은 불국사 사원과 조화를 이루고 주변의 자연경관과 혼연일체가 된 듯 자연스럽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석굴암에 대해서는 해발 750m에 있는 동굴 사원으로 연꽃 위에 앉은 부처가 동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어 매일 아침마다 첫 태양빛을 받는다고 묘사했다.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EL PAIS)는 2019년 한국 관광을 할 때 꼭 찾아야 할 명소는 경주 불국사라고 소개했다. 기사에 따르면 불국사는 신라 시대의 절로 주변에 국보 7개나 있으며 토함산 중턱의 암자 석굴암과 공동으로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도 밝히고 있다.
엘파이스는 황룡사가 거대한 규모로 유명한 절이라면, 불국사는 치밀한 구성의 완성도와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글로벌 최대 여행 플랫폼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선정하는 ‘2021 트래블러스 초이스 어워드’에 경북의 대표 관광지 불국사가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전세계 1위 여행 전문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er)는 매년 약 9억여 건의 여행자들의 리뷰와 의견을 기반으로 전세계 상위 10%의 우수한 여행지를 선정해 ‘트래블러스 초이스 어워드(전세계 여행자 선정 관광지)’를 발표한다.
/최병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