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가 꽃을 피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꽃을 보았다. 그것도 바로 우리 집 뒤뜰 작은 언덕에서…. 60~100년 만에 한 번 핀다는 그 ‘신비의 꽃’을 보았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다.
기계 읍내를 조금 벗어난 ‘소금실’이란 한적한 마을 안쪽에 작은 집 한 채를 갖고 있다. 퇴직 후 조용히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면서 마음을 닦으려고 마련한 집인데, 봄이면 예쁜 꽃들이 피고 특히 울창한 대나무 숲은 사철 푸른 잎새의 기운을 불어주는 곳이다. 그런데 초록의 장막을 높이 두른 듯 하늘대던 대나무 숲이 작년 봄, 이맘때쯤인가 왠지 생기를 잃고 눈에 띄게 누렇게 변해갔다. 5월이면 초록색이 더 짙어 보여야 하는데 엷은 연두색이었다가 누렇게 또 갈색으로 변해갔었다. 비탈진 언덕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사군자(四君子)를 그릴 때면 힘있게 표현되는 잎들 대신에 털이 부숭숭한 모습이다.
대나무는 뿌리가 땅속으로 뻗으며 번식하는 것이기에 어디서 새로운 품종이 기어들어 왔나 염려도 되고 갑자기 무슨 병이 들었나 하고 의심하며 바라만 봤다. 그런데 해가 지나고 이번 봄에도 새잎들이 돋아나지 않아서 가까이 가보니 줄기도 누렇게 말라서 모두 죽어가고 있었다. 몇 개를 베어 눕혀보니 보리가 마디마디 엉겨 붙은 듯 잎새가 이상하다. 뭘까? 하고 검색을 해보았다. 대나무꽃이라고 한다. 아! 대나무도 꽃이 피는가? 처음 듣는 이야기고 또 꽃이라면 예쁘고 올망졸망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전혀 아니다.
대나무는 외떡잎식물로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목질이 단단하여 나무라고 한다. 특히 대나무가 한번 꽃을 피우면 그 줄기와 땅속뿌리가 죽고 따라서 숲 전체가 죽게 되는데, 이후 숨은 눈이 자라서 다시 죽순을 올리고 숲 회복에는 10년 이상 걸린다는 사실도 알았다, 땅속뿌리로 번식하니 씨앗이 필요 없겠지만 자연현상으로 또는 토질환경으로 영양분이 모자라서 더 자랄 수 없을 때 꽃피우고 씨앗을 퍼뜨린다는 것이라니 생존의 본능일까. 이렇듯 한 번 꽃피우고 죽기에 꽃말은 정절, 지조, 절개 등이지만 우리는 두 가지 정반대의 해석을 택하고 있다. 하나는 번식과는 무관하게 수십 년 만에 개화하여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반면에 꽃피면 한꺼번에 모두 죽어 숲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재난을 염려하는 말들도 있다. 대나무 꽃에 대한 운명의 해석은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매란국죽(梅蘭菊竹) 사군자의 하나이고 온실가스 흡수량도 소나무의 약 3배이며 다양한 건강효과를 우리 몸에 준다고 하니 대나무꽃을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보자. 옛날 질병과 가뭄을 사라지게 한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전설처럼, 대나무꽃이 무리지어 노래하니 이제 코로나 역병도 사라질까. 꽃 지면 열매도 맺히리니 그 먹이 찾아 봉황도 날아오겠네.
근래 전국 곳곳에 대나무꽃이 핀 소식이 들린다. 국가에도 가정에도 좋은 일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