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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땅과 상생 공존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등록일 2022-05-16 20:12 게재일 2022-05-1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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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가 만났다<br/>양명학자 최재목 교수

길은 처음부터 길이 아니었다. 사람이 다녀서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모든 것은 사람이 만들어 가야 한다. 여기서 개체적 생명, 인간의 자유 의지가 가능해지고 자유로운 인간이 탄생하게 된다. 양명학의 정신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이미 정해져 있고 인간은 그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주자학에 반기를 들고 태어난 것이 양명학이다. 양명학자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는 동양철학을 연구하면서도 저술활동과 시, 그림, 기고, 강연 등 활동에 영역이 따로 없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이스인 조르바가 환생한 듯, 그의 생도 자유로운 인간을 추구하며 전위적이며 분방하다. 인간의 삶은 지구를 떠나 존재할 수 없으니 나무처럼 땅에 기대어 우주와 교감해야 한다는 식물성 사유를 주창한다.

 

모든 이치란 사람이 만든 것,

사람이 만들어 가면 이치가 된다는

심즉리(心卽理) 사상이 양명학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자의 위기

개개인 성찰·노력에 기반한

창의성과 독창성 필요하다 생각

돈이 되거나 안되거나

‘인간다움’의 공동선 위해 지속돼야

 

- 일찍 대학교수가 됐고 평생 직업이 됐으니 꽃길을 걸어온 것 같다. 그런데 글은 도발적이고 반시대적 불평과 ‘시니컬’하면서 패러독스로 무장한 듯 농담조에 때로는 낙천적이어서 종잡을 수가 없다.

△내가 삐딱하고 허접해 보이는 것은 유아기 모성결핍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쓴 일기를 보니 젖이 나오지 않았던 모양이더라. 그래서 모성이 결핍됐을 것이고 자연인으로서 스스로 결핍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91년 29살의 나이로 교수(전임강사)가 됐고 40살도 전에 교수가 됐다. 그러니 자연 ‘안티’가 많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유림의 본산이기도 한 영남에서 이단으로 치부되는 양명학을 전공한 것도 이유가 될 것 같다. 조선은 주자학의 나라였고 양명학은 정통 주자학에 반하는 ‘마이너’였다.

 

- 30여 년 동안 교직에 있으면서 많은 작업을 했다. 지금 하고 있는 강의나 저작활동은 어떤게 있나.

△명품강의 반열에 오른 스무살의 인문학을 비롯, 인간관계와 철학, 노자와 인문학 등 6개 강좌에 17시간 강의가 있고 대학원 수업과 외부강의, 교수신문과 다수 일간지 정기 및 비정기 기고와 칼럼, 방송 출연 등으로 일과가 짜여졌다. 그런 중에도 시작과 그림을 그리고 주말이면 농장에서 땀 흘리는 농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 키만큼 책을 쓰겠다고 작정했더니 고려대 김언중 교수가 나를 ‘등신(等身)교수’라고 했다. 뜻을 풀어보니 불쾌해 할 수도 없었다. 쓰다가 죽는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 교수신문에 연거푸 올해의 사자성어에 선정되는 실력을 발휘했다.

△양식있는 시민으로서 정치권에, 사회에 쓴소리를 한 것이 먹혀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후인 2017년엔 파사현정(破邪顯正)을, 문재인 정권의 2019년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공동운명체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조국 사건이 불거진 뒤인 2020년에는 내로남불을 지적하는 아시타비(我是他非), 지난해에는 고양이가 잡아야 할 쥐와 같이 살아간다는 묘서동처(猫鼠同處)를 이야기했다. 모두 그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을 지식인의 눈으로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 세상에서는 최 교수를 진보나 좌파로 분류하기도 한다. 동의하나.

△ 나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에게 잘 보이려 한 적 없다. 나대로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어정쩡하게 살아왔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이다. 이념적으로도 중도에서 좌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좌도 아니다. 내 양심대로, 교수의 양식대로 살아왔다. 내게 이념과 친소관계는 다르게 작용한다. 태극기 부대를 포용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인문학의 포용력이다. 마찬가지로 시인 서정주의 친일과 그의 작품은 다르게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그래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불편했던 적은 없었나.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를 초청해서 특강을 하고 난 뒤 국정원에서 찾아와 “박근혜 대통령 시대를 어떻게 비판할 수가 있나”하고 추궁조로 물었다. 나는 “대학은 좌도 우도 없고 독도를 지키는 데는 진보도 보수도 없다. 더구나 독도를 지키는 데는 저런 분이 필요하다”고 되레 꾸짖었다. 5공 6공 시대도 아닌 지금 어떻게 국정원이 대학 강의를 트집 잡는지 불쾌했다.

아마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창씨개명한 일본 이름으로 불러가면서 강의한 것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번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총장실에 갔더니 당시 총장님이 “교수가 복장이 그게 뭐냐?”고 하더라. 마침 함께 간 카이스트의 뇌 과학자 김대식 교수가 반바지를 입고 있어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 최 교수가 연구하는 양명학은 어떤 학문인가.

△16세기 중국 명나라의 왕양명이 제창했던 학문이다. 당시로서는 보편적 주류였던 주자학에 반기를 들고 자기의 독창적 사상을 펼쳤던 것이 양명학이다. 주자학은 ‘세상의 모든 이치는 이미 있다. 불변하는 이치가 모든 사물의 근저에 있다’고 했다. 이런 이치[理]의 선험성에 대해 왕양명은 ‘그런 것은 없다. 결국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라며 반론을 폈다.

모든 이치란 사람이 만든 것이고 사람이 만들어 가면 그것이 이치가 된다는 주장이다. 심즉리(心卽理)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길이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고, 내가 걸어가면 길이 된다. 잘못되면 바꾸면 된다’ 이런 식의 이야기다.

 

- 그러면서 영남퇴계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아이러니 아닌가.

△역설적이기도 하다. 영남이 그만큼 개방됐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 철학자로서 시를 쓰고 그림도 그린다. 일찍이 등단했고 시집도 여러 권 냈다.

△철학은 추론하고 논리적이지만 철학으로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감성적 작업을 통해 풀어나간다. 이 작업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가 ‘나는 소외된 존재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영혼의 결핍, 소외감 같은 것을 해소하는 창구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나는 이념적으로 좌도 우도 아니다. 나는 특정 이념이나 논리나 이슈 같은 것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시를 쓰고 소설도 썼다. 중고교 이후 집중적으로 시를 썼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마 철학을 하지 않았다면 시인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시인이었다가 철학자가 됐다는 말이 맞는다. 지금은 철학에 더 신경을 쓰고 시가 소외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철학의 문제나 내용에서 보면 시적 표현이 많이 있다. 결국 내 내면에는 시와 철학이 동거하며 상생적으로 작업을 일궈나가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 인문학의 위기라고 한다. 인문학자로서 어떻게 해석하고 또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금까지 인문학이 위기 아니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자의 위기’이며 ‘인문학적 방법론의 위기’라 할 수 있다. 인문학을 다루는 주체인 인문학자가 시대를 캐치해내고 선도해가기 위해서는 늘 깨어있어야 한다. 시대를 성찰하고 반성하며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지금 인문학자들의 사고는 너무 분화됐고 오로지 자기 영역에만 몰두하고 다른 영역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온 말이 융복합이다. 융복합적이란 말은 방법론적인 것인데 이마저도 분과학문의 하나로 자리 잡는 듯해 좀 못마땅하다.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서는 우선 인문학자 개개인의 자각과 성찰, 노력에 기반한 창의성과 독창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다음 국가와 대학 자체의 제도적 뒷받침이 지속돼야 할 것이다. 인문학을 공공적인 것으로 보고 공동선을 위해 지속시켜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돈이 되거나 안 되거나 관계없이 ‘인간다움’을 위한 공동의 방향에서 지속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 철학과 교수로서 독도연구소를 맡고 있다.

△10년 이상 독도연구소장직을 맡고 있다. 일본에서 공부했고 일본어를 할 수 있고, 넓은 의미에서 동아시아 근세 근대사상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론적으로 독도 문제는 대한민국의 영토 문제이고 평화와 연관된 문제다. 우리 영토에 대한 정확한 학습과 교육의 문제는 인문학의 과제이기도 하다. 또 국가 간의 평화라는 것은 윤리적 철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독도에는 역사적 국제법적 외교적 정치적 등의 문제가 맞물려 있어 좀 복잡하다. 역사 속에 이루어진 문제이기 때문에 다루어야 할 고문서 등 자료들이 많다. 거기에다 섬으로서 자연 생태 지질학적 해양적인 문제도 껴안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라서 대륙과 해양 두 방면에서 접해야 할 문화적 외교적 문제를 늘 안고 있다.

 

- 앞으로 인문학은 어떻게 진전될 것으로 보나. 또 최 교수는 앞으로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나무를 좋아하고 식물성 사유에 대해 구상중이다. 대지의 철학, 지구의 철학으로 식물성 사고에 대해 천착할 예정이다. 이미 동양의 철학 사상에는 이런 요소들이 풍부하다. 식물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우주와 교감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지구를 떠날 수 없다. 나무처럼 대지의 정치를 해야 한다. 지구와 대지를 새롭게 바라보고 상생 공존하는 방향을 생각해야 한다. 그 속에서 인간의 위치와 의미를 묻는 것이 인문학의 큰 흐름이 될 것으로 본다. 자꾸 지구를, 땅을 벗어나고 배반하는 삶을 살면서 갈등이 생겨나고 고뇌와 번민이 자라는 것이다.

 

- 생명철학은 최근 타계한 김지하 시인이 주창하기도 했다.

△신문사 주간으로 당시 김지하 시인과 생명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도 했다. 그가 고문으로 일그러진 몸뚱이를 부르르 떨면서 “내가 감옥에 있던 당시 너는 어디에 있었어?”라고 꾸짖던 장면이 떠오른다. 아무도 대꾸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궈야 했다. 운동권에서도 그 열매만 챙기는 세력들이 따로 있음을 일갈했던 것이다. 고인이 된 김 시인을 생각하면 그 장면부터 떠오른다.

 

- 성과 인문학이라는 다소 엉뚱한 책을 쓰기도 했다.

△엉뚱하게 보이겠지만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없다. 한국의 성 문화는 보수적이고 경직돼 있다. 역설적으로 병리적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땅의 진보는 진부(陳腐)가 되었다. 모두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책을 구상했고 썼다. 해원상생(解<51A4>相生)해야 한다. 마광수를 포용할 수 없는 진보와 지성은 이미 죽은 사회다. 그런 사회는 비정상의 사회이고 미투(Me too) 같은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라는 시집을 냈다. 앞으로도 나대로 살아갈 것인지, 계획 같은 것은 있나.

△나 스스로의 매력이라면 ‘촌스러움’이라 생각한다. 농촌에서 태어났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자 하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발터 벤야민처럼 세상을 두리번거리며 호기심 많게 사는 존재일 것이다. 운명에 사로잡히거나 굴복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뭘 해보려고 하는 그런 정신, 그것도 촌스러움이라 본다. 그래서 호도 돌돌(乭乭) 돌구 이런 것이다. 시냇가 어디에나 있는 돌처럼 촌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 최재목(崔在穆) 영남대 철학과 교수

 

상주출생. 대륜고. 영남대 철학과 졸, 일 츠쿠바대 문학석사, 문학박사(철학사상 전공) 양명학 자. 시인. 저술가. 한국일본사상사학회 회장과 한국양명학회 회장, 영남대 도서관장과 신문방송사 주간 등을 역임했다.

현 영남대 독도연구소장, 퇴계학연구원장.

하버드대와 도쿄대 베이징대 등에서 객원연구원으로, 네덜란드 라이던대에서 방문학자로, 중 절강이공대 객원교수를 지냈다. ‘나는 폐차가 되고 싶다’ 등 8권의 시집과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 ‘동양철학자 유럽을 거닐다’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의 도덕경’ 등 35권의 저서를 냈고 앞으로 출간할 도서목록까지 작성해 뒀다.

스스로를 결핍된 존재로 규정짓고 하는 일은 허접하다면서도 늘 저지르고 주목을 받으려 노력하는 아방가르드적 자유인.

“나는 아나키스트가 되고 싶다. 모든 억압된 체제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자연과 자치를 모토로 살아가려 한다. 나는 자유를 존중하고 생명주의자이다.”

 

 

/편집위원 이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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