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철
가도 가도 하얗게 막막한 러시아 설원.
자작나무 처녀림 그 미끈한 아랫도리에 쏟아내는
뜨거운 오줌발, 절로 굵어지는데
아, 수피(樹皮) 겹겹 피나게 벗겨가며 백옥처럼 더 환해져가던
그때, 그 러시아 자작나무 눈부신 처녀들.
온갖 귀신 이야기들 문풍지 매섭게 때리는 유년의 겨울밤.
해 떠오르면 꿈도 두려움도 가웃가웃 함께 날려 보내던 가오리연
연줄 끊어져 눈 시린 빛살 되어 날아갔던 그 때 그 연, 연줄들.
그 처녀, 그 연들 눈의 요정 되어
오늘은 초부리 겨울 저 자작나무로 희디희게 서 있는 것인가.(부분)
시인에게 현재 눈앞의 현실은 과거의 기억과 융합되어 현현한다. 저 러시아 자작나무 ‘처녀’가 유년시절 날린 연들이 “눈의 요정 되어” “희디희게 서 있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보면. 이렇듯 지금 바라보고 있는 자작나무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연 날렸던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으로 비월함으로써, 시인은 그 시절에 가졌던 꿈, 좌절되기도 했던 그 꿈을 지금의 현실에 되살리면서 유년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