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는 ‘힘의 정치’이다. 강대국들의 국익이 충돌할 때 약소국의 이익은 무시된다. 강대국 간 전략경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같은 지정학적 ‘중추국(pivot state)’은 외교·안보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유사한 지정학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한국도 강대국 정치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관’과 러시아의 ‘현실주의 국제질서관’의 충돌이다. NATO의 동진(東進)을 우려해 온 러시아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있는 우크라이나의 NATO가입 추진을 침공의 빌미로 삼은 것이다. 또한 우크라이나 내부의 친러파(동부지역)와 친서방파(서부지역)의 지속적인 대립과 갈등, 특히 동부 돈바스지역에서 계속되어 온 친러 반군의 분리·독립운동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국의 외교·안보에 커다란 함의(implication)를 던져주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힘이 지배하는 국제정치 현실’을 직시하고,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것이다. ‘평화는 이상(당위론)이지만 전쟁은 현실(경험론)’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평화는 허구임을 증명했다. ‘평화는 목적이고 전쟁은 수단’이다. 국가는 국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서 전쟁을 활용하며 전쟁의 승패는 수단, 즉 전력(戰力)의 질과 양에 달려있다.
동맹은 자체 방위력을 보완해주는 힘이다. 우크라이나는 방위력도 약했고 동맹국도 없었다. 북핵 위협에 직면해 있는 한국에게는 핵 억지력을 제공하는 한미동맹이 사활적 중요성을 갖는다. 경제안보 차원의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와 군사안보 차원의 한미동맹은 질적으로 다르다. 한미동맹과 한중관계의 경중(輕重)을 고려하여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한국 외교안보전략의 핵심이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서 핵무기의 중요성을 재확인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핵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영국·러시아와 체결한 ‘부다페스트 협정’으로 안전보장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그 협정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우크라이나가 ‘절대무기인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러시아의 침략도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는 핵 억지력 강화를 위해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 또는 핵 공유협정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내정치에 대한 안보적 함의이다. 친러파와 친서방파의 대립은 우크라이나를 약화시켰고, 친러 반군의 무장투쟁은 러시아의 개입 명분이 되었다. 한국정치에도 엄존하고 있는 자주파와 동맹파, 친미파와 친중파의 대립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외세에 악용될 수 있다. 중추국의 위치에 있는 한국이 북핵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자주와 동맹, 동맹과 균형을 둘러싼 이분법적 흑백논쟁은 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내부의 분열이 외부의 침략을 불러온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