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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가요 제1호 ‘황성 옛터’의 시인 무덤을 가다

박월수 시민기자
등록일 2022-02-15 20:14 게재일 2022-02-1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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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평 이응호의 무덤. /박월수 시민기자
32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시인이 있다. 왕평 이응호다. 그는 극작가이며 배우이고 작사가이기도 했다. 1908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아버지가 수정사 주지로 있는 청송에서 보냈다. 영천 보통학교와 서울 배재중을 졸업하고 조선배우학교에서 연기수업을 받았다.

1930년경 조선 연극사의 순회공연 때였다. 비 오는 여관방에서 고려왕조 터였던 만월대를 둘러보고 느낀 감회를 전수린이 멜로디로 만들고 왕평이 가사를 붙였다. 조선인에 의해 창작된 최초의 대중가요 ‘황성 옛터’다. “조선의 세레나데”라고도 불린다. 당시 인기가수며 명배우였던 이애리수가 불러 크게 히트했다. 1932년 빅터 레코드에서 출반 하자마자 5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민족의 정서를 자극한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금지곡이 되었다.


왕평은 유행가, 서정곡, 재즈송, 민요·속요·신민요, 합창·행진곡, 극과 극영화, 난센스, 스케치·만담 등 195편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님 그리워 타는 가슴, 항구의 일야, 조선 행진곡, 대한 팔경, 고도의 정한 등이 있다. 1904년 평북 강계에서 연극 ‘남매’를 공연하던 중 무대에서 뇌일혈로 쓰러져 사망했다. 청송 파천면 송강리 3번지 수정사 앞산 자락에 그의 유골이 묻혔다.


수정사 앞 목계솔밭에 ‘황성 옛터’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지난 2009년 청송 향토문화 발전회에서 후원하고 청송군에서 건립했다. 노래비를 둘러보고 수정사 앞자락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그의 묘소에 들렀다. 일본 경찰이 매장 허가를 내주지 않아 분묘는 봉분조차 없이 초라한 그대로 지금껏 방치되고 있다. 그를 기리는 후학들이 몇 해 전 소박하게나마 비석을 마련해주어 그곳이 ‘황성 옛터’의 시인 왕평의 무덤인걸 알 수 있다.


‘대한팔경’ ‘조선 행진곡’ 같은 금지곡을 만들어 민족의 자긍심을 심어주었던 애국지사 왕평, 무대에서 쓰러진 참 예술인 왕평의 초라한 무덤 앞에서면 누구나 부끄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박월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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