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미
몇백 년 된 은행나무가
봄을 기다리고 있는 성황산 새로 난 산책길
고목 같은 살갗을 뚫고 새순 내밀게 될
(….)
지금껏 헛살았던 길 되짚으며
산바람 숨 깊이 들여 산이 주는 고요를 들었을 때
아가야 나의 가지 길이 비로소
사람 속으로 짱짱하게 뻗어나는 걸 알았단다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가시 많은 덤불 속에도
아주 작은 새들이 살고 있는 모양을
호주머니 속에 넣어와 가만 열어보기도 했단다
그때서야 주린 정월을 채우고 간
청설모가 오르내린 나뭇가지마다
내가 살아야 할 길이 보이더구나
시의 화자는 산책길을 걸으면서 새로운 생명이 고요히 “고목 같은 살갗을 뚫고” 조금씩 솟아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때 그는 죽음 주위를 맴돌았던 휘청거리는 ‘지금껏’ 삶이란 “헛살았던 길”이며, “사람 속으로 짱짱하게 뻗어나는” 생생한 삶의 장이 자신이 갈 길임을 깨닫는다. 산속 뭇 생명들-“아주 작은 새”나 ‘청설모’와 같은-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