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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쇄조보(세계최초 조선 활판 신문), 상업용 배달까지 이뤄져

조규남기자
등록일 2021-12-13 20:29 게재일 2021-12-1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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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역사박물관 <br/>   제3회 학술세미나 개최<br/>1면에 왕실 소식·인사 이동<br/>사회면, 고급 수입차 금지령<br/>선조에 의해 석달만에 폐간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기록에만 존재하던 조선 최초의 신문이 444년 만에 재조명된다.

영천시역사박물관은 오는 16일 영천시립도서관 지산홀에서 조선 최초의 신문인 민간인쇄조보를 재조명하기위해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1577년 창간된 민간인쇄조보는 세계최초로 활자조판방식을 채택해 1650년 독일에 서 간행한 아인코멘데 자이퉁 EinkommendeZeitungen보다 73년, 1638년 중국에서 간행한 저보(邸報)보다 61년 앞서 최초의 활판신문을 만들었다.


민간인쇄조보는 나무활자를 이용해 조판 인쇄하는 방식으로 신문을 찍어낸 뒤 그 활자를 풀어서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경제성과 상업성 신문 발행에 있어 신속성을 모두 갖춘 근대 신문사의 구조를 갖췄다.


조선은 성리학적 유교사회로 모든 정보를 지니고 있는 활자를 국가나 기관이 소유하고 있었다. 선조 10년 1577년 민간업자들이 의정부와 사헌부에 허가를 취득해 정보전달체계인 활자를 이용해 왕실이나 중앙정부의 소식을 매일 신속하게 전달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을 창간했다.


직원이 30명이나 되는 신문사로 상업용 배달까지 이뤄졌다. 1577년 8월에 창간해 “신문이 사사로이 역사를 만든다”는 이유로 선조에 의해 11월 28일 폐간을 당하게 된다.


민간인쇄조보는 신문(저널리즘)의 편집기능을 한껏 살려 신문의 첫 페이지에 당시에 중요한 역사의 한페이지를 담았다. 1면에는 왕실소식과 인사이동, 2면에는 당시의 행정부인 육조(六曹) 소식을 실었다. 사회면에는 고급 수입차(마차) 금지령과 구제역으로 인한 국가사업의 지장에 따른 상황 등 다양한 기사가 포함됐다.


영천시역사박물관 관계자는 “선조의 탄압으로 3∼4개월만에 폐간의 운명을 맞이한 민간인쇄조보는 세계 최초활자조판방식 상업용 일간신문으로 평가되고 있다”며 “이번 학술세미나를 통해 제 조명하고 세계최초 상업용 일간신문으로 공인 받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영천/조규남기자 nam8319@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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