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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와 바로크 미술의 귀환

등록일 2021-11-08 19:52 게재일 2021-11-0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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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 정원.

요즘 유행하는 메타버스(metaverse)는 4차 산업혁명이 일으킨 첫 번째 거대 파도이다. 메타버스는 IT기술을 통해 사람과 세계가 관계 맺는 새로운 방식이다.

‘미술과 기술’이라는 대명제 아래 선보이고 있는 뉴미디어 미술창작물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는 디지털 환경에서 수집된 방대한 데이터에 특정 알고리즘을 부여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유형이다. 다음으로는 특수 감지센서 등을 이용해 어떠한 변화에 반응하고 이를 경험하게 해 주는 작품이 있다. 세 번째로는 딥러닝이나 머신러닝과 같은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작품이 있고, 넷째로 증강현실을 이용해 현실공간에 가상을 작품을 구현하거나, 다섯째로 가상공간에 가상의 작품을 경험하게 하는 작품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로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소리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거나 연출하는 작품이 있다.

자연이나 대상 등을 가상세계에 모방하고 감상자는 기계장치의 도움으로 그것을 경험한다. 가상의 공간에 모방된 현실은 현실에 대한 또 다른 인식과 경험을 가능케 해 준다. 하지만 문제는 모방된 가상세계와 그 가상세계에서의 경험이 무엇을 지향하고 어떠한 가치를 지니느냐는 것이다. 단지 현실을 기술적으로 모방하는 것으로 도래할 미래의 미술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연의 모방과 가상의 창조는 서양미술사에서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르네상스의 원근법은 2D를 3D로 바꾸는 혁신적인 기술이었고, 17세기 바로크 미술에서는 어떠한 기계장치의 도움 없이 오로지 미술기법으로 실제 건축공간에 가상현실을 구현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맞선 가톨릭교회의 반종교개혁으로 탄생한 양식이다. 가톨릭교회로부터 멀어진 신자들을 시각적으로 압도해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출현한 바로크 미술에서는 건축, 조각, 회화의 경계가 사라졌다. 르네상스 미술가들이 고전미술을 모범으로 삼았다면 바로크 미술은 이성적 판단과 인지능력을 무력화 시킨 초감각적 가상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자연의 빛이 창을 통과하는 순간 강하게 응축돼 교회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리고 그 빛은 금색 장식물들에 부딪혀 찬란한 광채를 뿜어낸다. 건축의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그림 속 인물이 조각이 되어 눈앞에 나타나더니 어느새 다시 그림이 되어 허공을 떠다닌다.

바로크를 수용한 프랑스 절대왕정의 결정체 베르사이유 궁전 곳곳에도 현실과 가상이 뒤섞여 있다. 절대왕정의 이념을 상징하는듯 기하학적이고 대칭적 형태로 가꾸어진 정원 곳곳에는 신화를 그리고 있는 조각상들이 놓여 있다. 회화가 그렇듯 조각 역시나 과거를 현재로, 가상을 현실로 불러내는 그들의 방법이었다. 거대한 정원 사이사이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연극이 펼쳐졌다. 연극이야 말로 가장 오래된 메타버스의 원형 중 하나이다. 왕의 집무실과 침실에 접한 ‘거울의 방’에서도 여러 의미에서 현실과 가상이 교차한다. 한 쪽 벽면을 가득 메운 거울은 현실을 비춰주지만 사실은 가상을 불러내는 장치이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면 호수와 정원 그리고 운하가 시선을 압도한다. 여기서는 다른 방식으로 현실과 가상이 관계한다. 창밖 풍경은 사실이자 현실이지만 규모와 조성 방식이 너무나 인공적으로 완벽해 오히려 가상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음악에 맞춰 분수가 춤을 추면 베르사이유의 가상현실은 현실의 공간에서 완성된다. 메타버스에서 논의되는 가상현실, 현실과 가상의 융합, 현실의 확장이 이미 17세기에 일어났던 것이다.

서양미술사는 오랫동안 현실을 과장하고 왜곡해 스펙터클을 연출한 바로크를 퇴폐, 타락, 악취미로 여겼다. 여기서 유래해 서구에서는 규범에서 벗어난 무언가를 ‘바로크적’이라 부르기도 한다. 바로크 양식은 백년 남짓 유럽 전역에서 유행하다가 로코코라는 과도기를 거쳐 신고전주의에 완전히 자리를 내줬다. 고전적 미학을 재부활시킨 신고전주의에 자리를 내어준 이후 바로크의 미술사적 의의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다 20세기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우리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메타버스와 미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바로크의 잔향이 감지된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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