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가을’은 ‘자연의 가을’을 닮았다. 가을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듯 제왕적 권력도 힘을 잃는 시기다. 현직 대통령의 말보다 차기 대권주자의 말에 더 큰 힘이 실린다. ‘레임 덕(lame duck)’현상은 권력에 가을이 왔다는 증표다. ‘가을이 온 권력’은 자신을 성찰하면서 소프트 랜딩(soft landing)을 준비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게 “이게 나라냐”고 비판했던 문재인 정부가 “이건 또 나라냐”고 비판받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마약 같은 권력의 속성과 인간 능력의 한계에 대한 성찰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천사요 당신은 악마’라는 오만과 독선이 실정(失政)을 자초했다. 죽은 권력을 적폐로 몰아 청산했지만, 살아있는 권력은 더 심각한 신 적폐를 양산했다. 현재의 권력이 과거의 권력을 자신의 관점에서 심판했기 때문이다.
권력에도 가을이 오면 곧 닥칠 겨울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대통령들의 망명·피살·자살·수감 등은 권력의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가를 말해준다. 겨울을 대비해서 어떤 대통령은 법적·제도적 안전장치를 강구했고, 또 다른 대통령은 측근을 여러 요직에 심어두었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권력은 하산(下山)과 동시에 그 힘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죽은 권력의 잘못을 묵인하는 것은 권력정치의 속성상 불가능하다.
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하다. 하산 길에 들어선 문 대통령이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정상에 오를 때 도와주던 측근들이 하산 길에는 이미 유력 주자의 대선캠프로 떠났다. 정권의 강력한 버팀목이 되었던 ‘문빠’와 ‘대깨문’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국민에게 약속한 수많은 공약을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국론분열과 부동산 폭등 속에서 혼자 하산해야 한다. 임기제 권력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외롭고 힘든 하산 길이다.
이제 권력에도 가을이 왔으니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야 한다. 가을의 아름다움은 소멸의 쓸쓸함을 깨달음으로써 느끼는 아름다움이다. 떨어진 낙엽이 후세를 위한 밑거름이 되듯이, 권력도 자신을 성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 문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운동권정치의 진영논리와 내로남불, 갈라치기와 흑백논리를 버리고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울산시장 선거개입,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수사에 협조하고 협치와 통합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권력은 살아있을 때 스스로 성찰하지 못하면 권좌에서 내려온 후에 더욱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법이다.
권력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자기 성찰에 기초해야 한다. 권력에 취하고 고루한 신념에 갇혀서 생각을 안 하면 성찰이 없고, 성찰이 없으면 체면과 부끄러움을 모른다. 대통령이 행사한 권력에 대한 성찰은 현재의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권력을 위한 것이다. 지금 ‘권력의 봄’을 향해 끝없이 목청을 높이고 있는 ‘철부지 대선주자들’에게 ‘권력의 가을’도 생각하면서 겸손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