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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등록일 2021-08-01 20:00 게재일 2021-08-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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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산

저건 가기만 한다

 

오는 것은 알 수 없고

 

가는 것만 보이는 건

 

그건 분명 이상한 일이지만

 

숙명인 양 가는 뒷모습만 전부다

 

 

 

도무지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우리는 열차의 맨 뒤 칸에서 뒤를 보고 있다

 

마치 기계노동의 습관처럼

 

도무지 누가 앞에서 운전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얼굴이 있는지도 모른 채 우린

 

모든 걸 배웅하기에 바쁘다

 

 

 

(중략)

 

 

순환의 절반을 버림으로써 얻은

 

이 엄청난 질주와 쾌락

 

우리는 어떤 재생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숙명을 발견하지 않고 발명했을 뿐이다

 

숙명이라는 쏟아지는 별들의 시간을

‘시계-시간’은 글자판을 순환하지만 앞으로만 나가면서 순환한다. ‘시계-시간’은 삶을 재생하지 않고 소진케 한다. ‘시계-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은 이 시간을 누가 운전하는지 모른 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백무산 시인에 따르면 우리는 이 숙명을 “발견하지 않고 발명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숙명은 변화시킬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시의 마지막 부분은 이러한 질문을 유발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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