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무궁화 꽃이 피었다. 3년 전, 7년 전 오늘 일기를 다시 보여주는 블로그의 서비스 덕분으로 같은 날에 쓴 대여섯 개의 오늘 일기가 떠올라 잊고 있던 그 날의 이야기에 또 한 번 웃을 수 있어서 좋다. 12년 전 이맘때도, 우리 동네에는 무궁화가 화려한 외출을 했다.
2009년 7월 오늘, 안동에서 외할머니가 오셨다. 연세가 많으셔서인지 집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셔서 겨우 모시고 온 길이었다. 손녀인 내가 꽃구경 가자니 이 나이에 꽃은 봐서 뭐하냐고 안 간다고 손사래 치신다. 힘드시면 업어드릴 테니 가자며 억지로 모시고 기청산수목원으로 향했다.
입구의 키 큰 소나무를 보고 “야야, 이크러 좋다 야야.” 를 연발하신다. 입장료가 비싸다 하시다가 숲해설가가 따라다니며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니, 또 “아이구, 야드래이.” 하시며 좋아하신다. 지팡이를 짚고서도 잘 따라 다니셨다. 증손자 규헌이가 부축해 드리려 해도 싫다셨다. 숲해설가가 우리 가족관계를 묻고는 친정엄마도 모시고 남편이 운전해 4대가 왔다니 신기하다며 웃었다. 꽃과 나무 그늘이라 이 더위에도 시원한 산책이었다.
그날 기청산 수목원은 무궁화 축제 기간이었다. 꽃의 색깔도 여러 가지였고 모양도 다양했다. 무궁화의 종류는 200종 이상이 있는데 품종은 꽃잎의 형태에 따라 홑꽃, 반겹꽃, 겹꽃의 3종류로 구분하고, 꽃의 중심부에 단심(붉은색)이 없는 순백색의 흰 꽃은 배달계라 하며, 꽃잎에 무늬가 있는 종류는 아사달계라고 한다. 단심계는 꽃의 중심부에 붉은 무늬가 있는 것으로 백단심계, 홍단심계, 청단심계로 구분된다. 외할머니께 무궁화의 이름 하나하나를 읽어드렸다. 이렇게 여러 종류가 있는 줄 평생 모르고 사셨다며 한참을 무궁화동산에 머무셨다.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선정한 것은 1896년 독립문 주춧돌을 놓는 의식 때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을 넣으면서 민족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고 한다. 무궁화의 정신은 우리 겨레의 단결과 협동심으로 꽃잎이 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꽃잎의 근원은 하나인 통꽃이며, 인내, 끈기를 나타내듯 여름철 100여 일간 한 그루에서 3천 송이 이상의 꽃을 피운다고 하니 무궁한 꽃이라 불리는 것이다.
여름에 들면서 도시숲을 아침마다 걷는다. 오랜 시간 기차가 다니던 레일을 걷어낸 자리에 나무와 꽃을 심어 숲을 만들어 걷기에 좋은 산책로가 됐다. 유성여고 앞에서 시작해 걸으면 효자교회까지 연결되는 긴 숲이다. 내가 걷는 길은 우현사거리 부근이다. 메타세쿼이아가 늘씬한 키를 뽐내며 줄지어 서서 파란 하늘과 잘 어우러져 새소리가 함께 들려 숲속을 걷는 기분이 든다. 그 길로 머리도 덜 말린 채 출근하는 사람들, 교복을 입고 조잘거리며 학교로 향하는 여중생들, 어제도 만난 강아지가 할머니를 끌고 냄새 맡기에 열심이다. 시내 방향으로 걸으면 인공폭포가 나타나고 곧 수도산이 나타난다. 입구에 절이 세 개나 있어서 진짜일까 궁금한 마음에 다 올라가 보았다.
오늘은 무궁화가 만발한 충혼탑을 오르기로 했다. 입구에서부터 길 양쪽에 무궁화가 가로수로 섰다. 분홍 꽃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꿀벌이 꽃술에 매달려 아침 준비로 한창인지 인기척에도 달아나지 않는다. 충혼탑이 어디 있는지 무궁화만 따라가면 알 수 있게 줄지어 심어놨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문 앞에 키 낮은 무궁화가 담장을 대신이었다. 발밑에는 또르르 말린 꽃이 가득 떨어져 있어도 오늘 또 새로운 꽃이 활짝 펴 교실로 향하는 우리에게 함박웃음을 안겨주었다. 그때는 무궁화는 키가 작은 줄만 알았다. 수도산의 무궁화 가로수를 보니 이렇게 늘씬하게 자랄 수 있구나 싶다.
매일 걸어도 매일 새로운 꽃을 피워 우리를 반긴다. 가까이 있어 별명도 십여 개인데, 그중 ‘일급(日及)’은, 아침에 햇빛을 받아 피었다가 저녁에 해와 함께 진다는 데서 주어진 이름이다. 무궁한 무궁화가 수도산 가득 피었다. /김순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