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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에

등록일 2021-07-18 18:22 게재일 2021-07-1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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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강의 경치를 닮은 영일대 저녁풍경

영일대로 걸었다. 저녁을 먹고 나온 산책길, 북부 바닷가에는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붐볐다. 장미정원 가까이 무대에서 행사진행자의 마이크 소리에 따라 함성이 오르내렸다. 광장에는 농구공을 튕기는 아이들, 더운 날씨와 상관없이 다정하게 어깨를 맞댄 연인들, 강아지에게 이끌려 나온 이웃들, 부딪히지 않으려 애쓰며 걸어야 할 정도였다. 바다로 조금 더 가까이 나앉은 누각에 오르니 바람이 훨씬 시원하다. 누각은 네 방향으로 열려있어 동해로 이어진 바다 방향에서는 하얀 요트가 다가왔다가 멀어져가고 저 멀리 포스코 건물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공장에 불빛이 밤을 낮처럼 일하는 이들이 있다고 알려준다.

환여동 카페촌으로 몸을 돌렸다. 가게들이 불빛을 환하게 바다에 쏟아붓는다. 영문을 모르고 몰려나온 그 불빛을 파도가 일렁이며 휘젓는다. 동행한 아들에게 이 풍경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냐고 물었다. 글쎄요 하더니 금방 ‘고흐’의 그림이 떠오른다고 했다. 맞다, 고흐가 그린 두 개의 ‘별이 빛나는 밤에’ 중 론강에 비친 별빛과 닮았다.

빈센트 반 고흐는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죽기 전 1888년 9월에 그렸다. 그는 70~80도의 압생트를 즐겨 마셨다고 하는데, 독주 속에 테르펜이라는 물질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황시증이라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일부에선 고흐가 이 병을 앓았을 거라 주장한다. 황시증에 걸리면 노란색이 유독 진하게 보이고, 빛을 볼 때 빛이 일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 근거로, 고흐의 초기작과 후기 작품을 비교하며, 그림에 별빛과 햇빛이 무리지는 표현이 많다고 지적한다. 고흐가 밤하늘을 표현하는 나름의 방식이라기보다는 실제로 하늘과 별이 그림과 같이 보여서, 보이는 대로 그렸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자주 ‘어지럼증’을 호소했다는 내용이 있으니, 더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영일대 누각에서 이 풍경을 본다면 해석이 달라질 것이다. 론강 빛의 이지러짐이 포항 앞바다에 일렁이는 빛과 너무나 똑같으니 말이다. 카메라로 바다에 흐르는 별빛을 그려본다. 아들이 영일대의 불빛을 보고 바로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제목을 떠올릴 만큼 고흐는 사랑받는 화가이다. 많은 이가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의 제수씨인 요한나 덕분이다. 고흐가 3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고, 동생 테오도 몇 달 후 세상을 떠났다. 잠깐의 결혼 생활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잃은 요한나는 아들을 혼자 키우며 두 형제가 18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번역하는 일을 진행했다. 편지 속에 담겨진 형제애와 예술에 대한 사랑을 사람들에게 알려 무명의 화가로 세상을 떠난 고흐의 실력을 빛나는 별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빈센트(형의 이름을 따서 테오가 지어줌)는 어머니가 못다한 번역을 마무리하고, 고흐의 그림만을 위한 미술관 건립 하는 일에 힘썼다. 암스테르담에 지어진 고흐 미술관은 세계 사람들을 네덜란드로 향하게 만드는 스타가 됐다.

‘고흐’ 하면 선명한 노랑이 떠오른다. 그의 해바라기가 좋아서 매일 덮고 만지는 무릎담요 디자인이 해바라기인 것으로 골랐다. 여름에는 화병에 해바라기 꽃을 꽂아두고 즐기기도 한다. 또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그린 아몬드꽃이 파란 배경에 가득한 그림은 우산에 담아 들고 다닌다.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고흐 그림을 좋은 친구와 보려고 갔는데 이틀 연속으로 보아도 좋았다. 퇴근길에 보니 누군가 나처럼 고흐를 좋아하는 이가 ‘별이 빛나는 포항’이라는 공연을 기획했는지 거리 곳곳에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이 여름, 포항을 여행하게 된다면 바리톤의 묵직한 음색과 재즈 콘서트를 날짜별로 찾아보아도 좋다. 그리고 밤이 깊으면 영일대 누각으로 나가 내가 발견한 고흐의 그림을 찾아보기 바란다. 고흐가 사랑했던 론강의 별들이 포항에 내려와 흔들리는 명작을 건져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김순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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