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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한국 무속의 특별한 공간

등록일 2021-06-21 20:07 게재일 2021-06-22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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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해양문화<br/>동해안굿과 포항의 무속 ⑤ - 죽음의 제의, 동해안 오구굿
오구굿의 한 장면으로 불교의 승무를 연상케 한다. (2015년 11월 22∼23일 강릉) /반혜성(단국대학교 연구교수) 제공

‘오구굿’은 동해안 무속에서 망자천도굿을 부르는 이름으로 오귀굿, 오위굿이라고도 한다. 생로병사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을 위한 제의로, 사람이 죽은 후 일정한 기간 안에 행해야 한다. 사람이 죽은 직후 행하는 굿을 ‘진 오구’라고 하고, 사망한 지 일 년 이상 지난 다음에 하는 굿은 ‘마른 오구’라고 하여 구분한다. 이는 중부 지역인 서울도 마찬가지여서 서울굿에서는 망자천도굿을 ‘진오귀굿’이라 부르고, 죽은 직후에 행하면 ‘진진오귀’, 일 년 이상 시간이 지난 후에 하는 굿을 ‘마른 진오귀’라 한다. 시신의 ‘질고’, ‘마른’ 상태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원통하게 죽은 망령 위안하는 ‘오구굿’

지역선 특히 바다서 목숨 잃은 망자 위해 열려

‘바리데기 신화’ 기반, 불교 영향 확인할 수 있어

무속은 우리 안에 새겨진 정신적 문신과 같아

지자체·전문가 적극 나서 오래된 편견 깨고

문화 정체성 드러낼 수 있는 콘텐츠 활용해야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오구굿

오구굿은 죽은 망령을 위로하여 극락세계로 천도하기 위해 행하는 굿이다. 전라도에서는 씻김굿, 중부 지역인 서울굿에서는 진오귀굿이라 부르는 등 지역마다 그 이름이 다르다. 오구굿은 신앙성이 강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하는 굿이기도 하다. 이 굿은 망령을 저승으로 보내는 굿이지만, 동해안 지역에서는 주로 원통하게 죽은 망령, 즉 객사(客死), 수사(水死), 미혼사(未婚死) 등으로 죽은 망령을 위안하는 굿이다. 특히 뱃일하는 사람이 익사하여 보상금을 받은 유족들이 행하는 것이 가장 많았다. 큰 사고로 여러 사람이 사망했을 때는 합동으로 오구굿을 하기도 한다.

민간신앙에서는 망자가 숨을 거둔 후 바로 저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과 과정을 거쳐 간다고 생각했고, 그 과정 중 하나가 오구굿이다. 오구굿 제의의 순서를 살펴보면, 먼저 부정굿을 한 뒤 마을의 수호신인 골맥이 서낭을 모신다. 특히 물에서 죽은 영혼을 모시는 ‘넋건지기’를 한 후, 넋을 굿당에 모시기도 한다. 이어서 조상굿을 하고 초망자굿이 이어진다. 초망자굿은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하는 것이다. 이때 무당은 한지로 망인의 모습을 오린 넋과 그 넋을 담은 상자인 ‘신태집’을 들고 춤을 추면서, 죽은 이의 한을 위로한다. 신태집은 굿판에 온 망자의 혼이 임시로 거처하는 공간으로, 동해안뿐만 아니라 전라남도 씻김굿, 남해안 오귀새남굿에서도 등장한다. 바리데기굿은 발원굿이라고도 하는데, 오구신을 청하여 망인을 저승으로 모셔주기를 부탁하는 굿이다. 무당은 부모를 위해 저승에 가서 약물을 길어온 효녀 바리데기가 오구신으로 좌정하기까지의 신화를 구연한다.

 

포항 오구굿의 사례

민속학자 최길성이 1972년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조사한 ‘청진오구굿’은 당시 주소로 ‘영일군 청하면 청진리’에 있는 50여 호의 해변 마을인 청진에서 했던 오구굿이다. 이 굿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최길성이 펴낸 ‘한국무가집 2(1992)’에 기록되었다. 굿은 이 마을에 사는 최씨가 26세에 사망한 자신의 형제를 위해 의뢰하였다. 망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형들의 어업을 도우며 살았는데, 저인망 어선을 타고 제주도로 잠수(일명 머구리)를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유명을 달리했다.

어업조합에서 유족인 최씨에게 당시 돈으로 보상금 20만 원을 주었는데, 일부는 장례 비용으로 쓰고 남은 돈으로 망자를 위한 오구굿을 한 것이다. 망자는 젊은 나이에 사망한 데다 미혼이었기 때문에 이 오구굿에서는 역시 미혼으로 죽은 여성인 김씨의 영혼을 신부로 맞이하는 굿을 겸하였다. 이 오구굿을 맡은 무당은 이금옥(李金玉) 만신 외 8명이었다.

오구굿에서는 특히 바다에 빠진 넋을 건지는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 바닷가에 망자의 가족들과 무당들이 바다를 향해 서면, 무당이 징을 치며 독경을 한다. 독경을 마친 후 넋전을 놋주발에 담고 무명 헝겊으로 싸매어 바다로 던지면, 가족들은 들고 있던 떡을 바다로 던진다. 이때 살아 있는 수탉을 바다에 던지는데, 수탉이 다시 바닷가로 헤엄쳐 나오면 이를 바다에 빠진 망자의 혼이 되돌아온 것으로 생각한다. 처음에 바다로 던졌던 넋전을 다시 거두어 소반에 얹고, 돌아온 닭도 다리를 묶어 소반에 올린다. 그러면 망자의 가족은 소반을 들고 집으로 가니, 망자를 집으로 다시 데려가는 것이다. 집 마당에서는 앞서 말했던 대로 망자 최씨와 망자 김씨 두 영혼의 혼례식이 이루어졌다.

 

오구굿에서 ‘바리데기’를 구송하는 장면.  /반혜성(단국대학교 연구교수) 제공
오구굿에서 ‘바리데기’를 구송하는 장면. /반혜성(단국대학교 연구교수) 제공

오구굿의 꽃 바리데기 신화

동해안 망자천도굿의 명칭이 오구굿인 것은 바리데기 신화에서 따온 것이다. 바리데기가 목숨을 바쳐 저승 여행을 하는 이유는, 아버지 오구대왕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다. 바리데기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전승되는 대표적인 한국 신화로 서울에서는 ‘바리공주’라 하며, 호남이나 동해안에서는 바리데기라 한다. 줄거리는 버려진 딸이 아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인간이 갈 수 없는 저승 여행을 감행하는 이야기다. 김태곤이 1976년 2월 23일부터 26일까지 조사한 김석출의 바리데기를 중심으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바리데기는 오구대왕과 길대부인의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버려진 아이다. 버려져 죽을 지경에 처했다가 비리공덕 부부에게 기적적으로 구조되어 무사히 성장한다. 세월이 흐른 후 오구대왕은 병에 걸리는데, 인간 세상에는 약이 없고 서천서역국의 동수자가 지키는 약수와 꽃을 구해야 했다. 여섯 공주에게 차례로 서천서역국에 가서 약수를 구해 오라고 하지만 모두 갖은 핑계를 대면서 가지 않는다. 결국 자신들이 버렸던 바리데기를 다시 찾게 된다. 열다섯으로 성장한 바리데기는 부모와 재회하자마자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남장을 하고 여행을 떠난다. 바리데기는 서천서역국으로 가는 험난한 여행길에 석가모니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고, 여러 가지 주문과 주령을 들고 지옥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들을 구원하기도 한다.

마침내 서천서역국 동대산에 이르러서 동수자라는 남성을 만난다. 동수자는 천상에서 죄를 얻어 삼십 년 동안 약수를 지켰다. 그가 다시 천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인간 여자와 결혼하여 삼 형제를 낳는 것이다. 동수자는 남장한 바리데기가 여성인 것을 알아본다. 그는 바리데기와 같이 목욕하는 척하다가 옷을 숨긴 후, 아이를 낳아달라고 한다. 결국 바리데기는 동수자와 혼인하여 아들 셋을 낳은 후에야 약수와 꽃을 구해 인간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그사이 동수자는 죄를 탕감받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결국 바리데기 혼자 아들 셋을 데리고 쩔쩔매고 있으니 배 한 척이 와서 태워준다.

문수지장경 따리시고 오방다꺼니 오르시고 선주가야 오른 인물

석가여래 오르시고 일력들아 동력들아 화장하야 오른님을 바양노

금살번께 발공도 주정이 보면 물 한솥 연화대 어느 탄울이 오르시고

일력들아 동력들아 화장하야 오른님은 화양노

금산부채 발공도 주절 벌어 물항수 연화대 아미타불이 오르시고

 

이 노래는 바리데기가 배를 탄 모습을 노래한 ‘용선가’의 일부분이다. 여기서 불교의 여러 신들이 등장하여 함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용선가’의 ‘용선’은 선박 운행의 무사태평을 기원하고, 조상신들이 용선을 타고 좋은 곳으로 천도하라는 의미를 담은 동해안굿의 상징물이다. 바리데기는 한국 무속의 전통적인 신이지만, 이 신화에는 다양한 불교의 신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무속의 세계관에서 바리데기보다 높은 신이다. 바리데기는 지장보살, 석가여래세존님, 저승 시왕 같은 신보다 아래에 있는 신이다. 고유의 신보다 불교의 신을 높게 보았던 것이다.

바리데기는 마침내 이승에 도착한다. 하지만 한 농부에게 오구대왕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른다는 소식을 듣는다. 바리데기는 서둘러 가서 관을 열고 약수와 꽃으로 오구대왕을 되살린다. 그 후 오구대왕님과 길대부인은 천상의 견우직녀성이 되고, 바리데기 일곱 자매는 북두칠성이 되는데 그중 떨어져 있는 별이 바리데기다. 바리데기의 세 아들은 삼태성이 된다. 무엇보다 바리데기는 망자들의 왕생극락을 인도하는 저승의 신이 된다. 그래서 망자천도굿에서 바리데기를 잘 모셔야 망자의 저승 가는 길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바리데기는 무당의 조상신이자 몸주 노릇을 하여 모든 무당의 섬김을 받는 신이기도 하다.

바리데기 신화에서도 확인되는 것처럼 오구굿은 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동해안굿에서는 불경을 독경하면서 의례를 진행하며, 죽은 영혼은 불교와 같이 ‘영가’라 부른다. 영산맞이와 같은 굿거리에서는 화랭이들이 바라나 꽹과리를 들고 염불을 하고, 극락춤을 추는 것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본인의 위패를 불명으로 써서 신단에 놓거나, 굿당 신단 위에 극락문을 만들어 연꽃의 조화로 장식하기도 한다. 무속 의례를 행하는 무당들도 무속과 불교의 관련성을 부인하지 않으며, 때로는 무속이 불교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역사적으로 토착 민간신앙이었던 무속은 삼국시대 한반도에 들어온 고등 종교인 불교의 영향을 받아 의례의 특성이나 내세관 등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점이 가능했던 것은 한국 무속 자신은 배척받았으면서도 개방성을 통해 외부적인 요소를 수용하면서 변화 발전하는 방식으로 전승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 무속의 특징은 동해안굿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동해안굿의 미래

동해안굿은 한국의 어느 무속권보다 전승 집단이 굳건하며, 무속을 신뢰하고 지지하는 토박이들의 믿음이 존재한다. 김석출이라는 걸출한 화랭이는 떠났지만, 그 맥을 이을 뛰어난 전승자가 있고 젊은 화랭이들의 배움의 열망이 계속되어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 무속은 우리 안에 새겨진 정신적 문신이다. 자기부정을 통해 형성된 문화 정체성은 그 문화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 무속의 위상을 재평가하고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무속 문화를 어떻게 되살릴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 무속은 수많은 문화 콘텐츠에서 한국 문화의 정체성과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요소로 활용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무속에 대한 오래된 터부와 편견은 여전히 이를 민속예술 안에 가두고 있다는 게 아쉽다.

이번 연재를 통해 포항은 김석출이라는 뛰어난 만신이 태어난 곳이자 호탈굿을 중심으로 한 별신굿, 넋을 건져내었던 오구굿이 열렸던 한국 무속의 특별한 공간이었음을 상기하게 되었다. 현재 포항의 별신굿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포항의 별신굿을 비롯한 무속을 되살리기 위해 앞으로 연구자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 지역 주민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글 / 염원희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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