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동네 산책길에서 지인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김에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외로운 건 인문학적으로 어떤 해결책이 있어요? 겪을 수밖에 없다는 말 말고 좋은 대안 좀 연구해봐요. 자원봉사 같은 건 권하지 말구요, 짜증나.”
그 지인과는 이상하게 길거리에서 가끔 만나는 인연이 있다. 언젠가도 길에 서서 외로움을 어떻게 하냐고 하소연하기에 걸어보라고 했더니 걷는 것도 하루이틀이지요 하기에 그것도 그렇네요, 하면서 깔깔거린 적이 있다. 그런 지가 한참 전인데 산책길에서 또 만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원봉사는 짜증난다고 손사레를 친다. 긴 말을 안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갈듯하다. 자원봉사가 필요한 곳은 대부분 상황이 어려운 곳이다. 그런 곳에 가서 ‘그래, 저렇게 힘든 사람도 있는데’하면서 나를 위로하는 것도 편하지 않고, 봉사 대상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마음이 더 힘들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그런 자원봉사의 끝은 어디일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외로운데 이런 무거운 의문 앞에 서게 되는 것이 짜증이 나는 것이다.
자원봉사뿐 아니라 무료로 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복잡한 감정이 많이 든다. 큰애가 4살이던 1994년부터 최근까지 거의 쉬지 않고 동네에서 무료 독서모임을 했다. 처음 독서 모임을 시작하던 1990년대에는 전공을 살려 동네 주민센터에서 1년간 무료로 논어 강의도 했다. 요즘에는 도서관의 문화 강좌가 많지만 그때는 그런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요즘 말로 ‘현타’가 왔다. ‘현타’란 현자타임의 줄임말이다. 무언가에 몰두하여 열심히 하다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는 성찰을 하게 되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무료 독서모임을 하는 나의 욕망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깨달음이 뒤늦게 찾아온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불씨를 지핀 책이 있다. 노구치 마사코의 ‘프랑스 여자는 80세에도 사랑을 한다’는 책에는 빨간 코트를 입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하이힐을 신는 80세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갑자기 만날 수도 있을 사랑을 위해 언제나 화려한 속옷도 잊지 않는다. 그 프랑스 여자가 자신의 욕망을 알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것이 쉽고 간결해서 신선했다. 이 80세 프랑스 여자가 느닷없이 다가온 것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행동에 숨김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자원봉사 같은 일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복잡한 메커니즘이 숨어 있어서 의도와 결과가 잘 어우러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애당초 대상을 위하는 선한 마음이 아니라 열등감을 감추고 싶어서 시작할 가능성도 있고, 선한 의도로 시작했지만 초심을 잃기도 한다. 봉사한다면서 모인 사람들끼리 자리와 명예를 가지고 다투기도 한다.
자신의 실존적 문제를 아는 것은 정말 긴급하다. 다행히도 그것을 알았다면 괜히 에둘러 갈 필요도 없다. 자신의 욕망에 당당하고 솔직하게 다가가는 것, 그것은 80세가 되어도 멈출 수 없는 인생의 과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