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해양문화<br/>동해안굿과 포항의 무속 ④- 동해안굿의 질병 퇴치 기원
2019년 12월에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이 지속되고 있다. 감염병의 시대,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초반에 느꼈던 긴장감보다는 감염병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 현실이다.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이지만 새로 출현한 감염병을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을 겪으며, 그렇다면 전통사회에서는 감염병을 어떻게 극복하고자 하였는지 궁금해진다.
광인굿·심청굿·손님굿은 질병 물리치는 무속 제의
‘손님’은 두창신 지칭하지만 ‘질병신 일반’으로 확장도 무방
병굿을 한의학이나 서양의학의 의료행위보다 ‘우위에’
동해안 손님굿 서사구조는 장자와 노구할매의 대조로
공동체 삶의 방식·인간 안에 내재한 선악의 문제 제기
광인굿, 심청굿, 손님굿
다른 무가권도 그렇지만 특히 동해안굿에서는 광인굿, 손님굿, 심청굿 등 질병을 물리치는 여러 제의가 이루어졌다. 광인굿은 광인(狂人), 즉 미친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행하는 무속 제의다. 귀신에 의해 정신이상자가 된 사람에게 귀신을 떼어내는 목적으로 행했고, 다른 굿처럼 귀신을 달래기보다는 위협을 가하여 쫓는 축귀(逐鬼)의 제의다. 심청굿은 한국 고전소설의 주인공인 심청을 신으로 모셔 마을 사람들의 안질(眼疾)을 없애주기를 기원하는 독특한 제의이다. 판소리 ‘심청가’가 조선 후기에 생겨난 것이니 심청굿은 비교적 근래에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광인굿, 심청굿이 개인의 질병을 없애고자 하는 목적을 가졌다면, 손님굿은 손님으로 불리는 ‘두창(천연두)’을 가져온다는 신을 모시고 달래서 공동체의 바깥으로 내보내는 의례다.
동해안의 손님굿은 두창신인 손님을 모시고 달래어 이 병에 걸린 병자를 낫게 하기 위한 병굿의 성격을 지니므로, 이는 신을 모시는 의례임과 동시에 ‘병자를 위한 의례’라 할 수 있다. 손님굿의 앞부분에 서사 형식의 무가를 구송(口誦)하고, 후반부에 두창신을 내보내는 의례인 ‘말놀이’를 한다. 두창신은 강남천자국(江南天子國)에서 한반도로 들어온다. 실제로 두창이라는 질병의 발생지가 인도였고 대륙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러한 과정이 손님굿 신화에도 반영되었다. 손님신이 한국 무속의 대표적인 외래신(外來神)이다. 손님신이 한반도로 들어오는 여행의 과정을 ‘노정기(路程記)’라 하는데, 중국에서 들어와 한반도 전역을 휩쓸었던 두창의 전염 과정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이다.
‘손님’은 어떤 신인가
강남천자국에서 한반도로 들어와 집집마다 방문하는 손님신을 잘 대접한 노구할매는 복을 받고, 불손하게 대하고 구박한 장자(長者)는 외동아들 막둥이를 두창으로 잃게 될 뿐만 아니라 패가망신한다. 1979년 김유선 만신이 노래한 손님굿은 “의학이 발달하여도 손님신을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시기가 1979년이므로 현대 의학, 특히 서양 의학을 의식한 말인 것으로 짐작된다. 현대에 두창 치료의 의미가 사라졌음에도 치병굿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며 굿을 시작하고 있다. 1977년에 김석출이 노래한 손님굿의 도입부에서 “하루는 손님네가 회의를 하여 세계 각국을 살펴보니 우리 조선국은 좋은 약도 없고 처방조치도 없고 침술과 한약뿐이니, 마마 천연두는 치료가 안 되니 손님신을 모셔놓고 굿을 하여”라 하여 손님신은 두창을 치료하기 위해 한반도에 왔으며, ‘침술과 한약’으로 일컬어지는 한의학보다 무속이 우위에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이 굿이 질병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의례라는 점, 그리고 이 굿의 전승 집단은 손님굿과 같은 병굿을 한의학, 서양의학과 같은 의료행위와 동일 선상에 두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의학의 발달로 현재 무속의 치유적 의미는 미약하지만 적어도 무속 집단은 이 의례의 의미와 목적을 믿고 있으며 그러한 신앙 의식을 바탕으로 전승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손님네가 삐끌어지만
참 자손들을 꼼보도 맨들 수 있고
병신도 맨들 수 있고
눈도 또 새따먹게도 맨들고
코빙신도 입비뚤이도 맨들고
뱅신을 모도 맨들어 노니
그래도 아무리 세월이 좋아서 주사가 좋고 약이 좋다 해도
손님네 잘 모시야 됩니다.
손님네로 지칭되는 두창신은 ‘꼼보’라는 두창의 결과를 내리는 신일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다양한 질병과 장애를 줄 수 있다. 두창은 사라진 병이지만 현재에도 굿판에서 두창신이 의미 있는 이유는 단지 두창에 한정하여 이 굿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손님신의 의미는 ‘질병신 일반’으로 확장해도 무방하다.
손님신은 강남국, 강남대왕국, 강남천자국으로 지칭되는 곳에서 시준손님, 문신손님, 각시손님, 호방손님의 네 신이 한반도로 들어오는데, 이 중 각시손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각시손님의 ‘각시’는 막 결혼한 젊은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결혼한 여성은 출산과 연관되기 때문에 각시손님은 여신 고유의 생산력, 생명력을 상징한다. 흥미로운 점은 다른 문화권의 두창신도 주로 여성신으로 나타난다는 것. 인도의 시탈라마타, 중국의 낭낭, 아프리카의 소포나 등은 하나같이 여성 신격이다.
인도의 작은 도시나 마을의 지역신 혹은 마을신들 대부분은 천연손님신이며 여신이다. 중국의 두진낭낭(痘疹娘娘) 역시 여신이며 어머니신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각시손님은 여신, 특히 모신(母神)이기에, 질병신이면서 동시에 치유신이다. ‘치유’는 죽어가는 생명을 되살리는 행위로 생명, 재생, 부활을 의미한다. 각시손님은 막둥이를 두창에 걸려 죽게 하지만, 자신을 잘 모신 서울 이정승댁 육남매는 두창을 가볍게 앓게 하여 이 병에 면역력이 생길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당신은 ‘손님’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여러 손님신들은 의주 압록강에 당도하여 배 한 척을 빌리려 하는데, 뱃사공이 뱃삯으로 각시손님에게 “하룻밤만 수청을 들어주면, 배 한 척을 빌려주겠다”고 희롱한다. 화가난 각시손님은 이틀 만에 뱃사공의 일곱 아들 중 여섯 명을 죽이고, 뱃사공도 물에 빠져 죽게 한다. 마지막으로 일곱째 아들마저 죽이려 하자, 뱃사공의 아흔 살 넘은 어머니가 자손 하나만 남겨달라고 간청한다. 각시손님은 “병신 자식도 좋다면”이라며 일곱째 아들을 열두 가지 질병을 가진 병자로 만들어 살려준다.
각시손님이 이같이 혹독한 징벌을 내린 것은 뱃사공이 공동체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했다는 데 원인이 있다. 특히 굿 문화의 패트런(patron)은 대다수 여성이다. 굿이 여성문화로서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뱃사공의 각시손님 희롱은 굿에 참여하는 대중의 공분을 사는 행위였음이 분명하다. 무당이 주재하는 굿판이 마련되는데 물질적·물리적·감정적 도움을 주는 여성을 의식한 규범이기에 공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반도에 들어온 손님신들은 가난한 노구할매 집에 머물고자 하지만, 노구할매는 대접할 음식조차 없어 이웃의 부잣집인 장자네에 가서 대접받기를 권한다. 손님굿은 가난하지만 손님신에게 정성을 다하는 노구할매와 부유하지만 손님신을 박대하는 장자를 대조한다. 착한 노구할매는 장자의 외아들 막둥이가 15세가 되도록 두창에 걸리지 않은 것을 염려하여 장자의 아들이 두창에 가볍게 걸리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장자는 두창신이 허름한 노구할매의 집에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그 집에 불을 지른다. 장자는 아들이 위독해지자 그제야 손님신을 모시려 하지만, 아들의 병이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면 다시 예전의 태도로 돌아간다. 결국 막둥이는 죽어 손님신을 모시고 다니는 마부가 되어버린다.
손님네는 누구든지 들 때는
하루 이틀 앓아서
사흘나흘 만에는 구실이 돋아나며
닷세엿세 만에 꺼먼 딱지 앉아서
이레 여드레만에 꺼먼 딱지 떨어지며
열흘열이틀 열사흘 만에는야
정예를 내여 보내는데
아무리 구실이 돋을 때를
기다리고 바래도
구실이 안 돋어난다
이 내용은 두창의 병세가 진행되는 과정이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회복하면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얻어 다시는 걸리지 않게 되므로, 이는 질병에 대한 매우 중요한 정보였을 것이다. 이것이 무가의 일부로 노래되었다는 점은, 당시 두창에 대한 이와 같은 민간의 의료지식이 보편적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신화에서 뱃사공과 장자는 신을 모셔야 한다는 규범을 위반하였다. 뱃사공은 여성을 희롱하였으며 장자는 타인과 나누는 데 인색하였다. 공동체가 우선시되었던 농경사회에서 부를 가진 자가 자신의 부를 이웃과 나누지 않는 것은 공동체의 질서에 위배되는 악에 해당하며, 이는 징벌 또는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이에 비해 노구할매는 장자와 다르게, 자신이 가진 적은 것도 이웃과 나눠야 한다고 믿으며 이를 실천하였다. 그러므로 노구할매는 공동체적 삶에 적합한 이상적인 존재다.
감염병을 이겨내는 힘
동해안 손님굿의 서사 구조는 악인인 장자와 선인인 노구할매를 대조하고, 공동체 에서의 삶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장자와 노구할매는 개별 인간형이 아닌, 한 인간 안에 내재한 악마성과 성스러움의 상징적 표현일 것이다. 신화학자 노스럽 프라이(Northrop Frye)는 신화와 원형적 상징의 대표로 신과 악마의 구조를 든다. 이들 대조적인 구조는 각각 묵시적, 악마적이라 부르고 신은 바람직한 존재, 악마는 바람직하지 못한 존재다. 손님굿은 표면적으로는 신을 잘 대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실은 공동체의 삶에서 자기 안의 성스러움과 악마성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묻고 있는 신화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노구할매처럼 우리 모두가 선함을 택한다면 감염병이라는 재난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글 / 염원희(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