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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미술

등록일 2021-06-14 20:08 게재일 2021-06-1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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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 (Minimalism)
도널드 저드. 1970년 런던 화이트 채플 갤러리 개인전 모습. /Donald Judd Foundation·Artists Rights Society(ARS), New York

전시 공간에 놓여 있는 동일한 모양의 큐브들. 누구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이 손 쉬운 물건들이 미술작품이라니.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자신들이 기대하고 상상하던 미술과 지금 눈앞에서 경험하고 있는 상자들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된다. 심지어 미술가들이 직접 제작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것이 어떻게 미술일 수 있으며, 도대체 무엇을 봐야할지 혼란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미니멀리즘은 1960년대에 나타난 미술형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시기에 곡선이 배제된 주로 각이진 모서리의 기하학적인 형태의 추상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다. 미술 평론가들은 기하학적 형식의 미술작품들이 처음 소개됐을 때 ABC 아트, 오젝트 아트, 프라이머리 스트럭처 쿨 아트 혹은 리터럴 아트라는 명칭으로 불렸지만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것이 미니멀리즘이다.

미니멀리즘은 1950년대 후반까지 미국 현대미술을 지배하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미학적 반작용으로 일어났다. 유럽에서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 미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갔다. 추상표현주의는 1940년대 일어난 미국 최초의 현대미술 사조로 액션페인팅으로 유명한 잭슨 폴록 색면추상의 마크 로스코 등과 같은 미술가들이 여기에 속한다.

1940년대와 50년대 추상표현주의가 미국 미술을 지배하고 있을 무렵 표현이라는 요소를 작품에서 완전히 제거한 새로운 미술을 선보인 미술가들이 있었다. 미니멀리즘의 선구적 역할을 한 프랭크 스텔라가 남긴 ‘What you see is what you see’(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라는 말은 추상표현주의 이후의 미술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추상표현주의와는 달리 미니멀리즘 미술가들은 미술작품에서 모든 감정을 제거하고 작품의 고유한 특징들을 비워내고 창작자의 흔적을 지워버리기 위해 각진 모서리의 기본적인 모양과 형태를 선택했다. 이로써 유럽의 전통미술은 물론 추상표현주의 미술에서 명백히 읽혀지는 착시나 상징, 은유 등과 같은 요소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게 된다.

미니멀리즘 작품에서는 몇몇 형식적인 공통점들이 관찰된다. 첫째 동일한 형태가 반복적이면서 규칙적으로 나타난다. 둘째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기계적으로 생산된 것이거나 공장에서 제작된 재료들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창작의 주체인 미술가 개인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아 비인격적이다. 칼 안드레가 자주 사용한 벽돌이나 철판 댄 플래빈의 형광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미니멀리즘 미술가들은 감상자들이 작품 앞에서 감탄사를 연발하거나 재료를 다루는 실력에 경외심을 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초감각적이나 정신적인 가치를 부정하고 기념비적으로 웅장하거나, 비장미, 역사적인 이야기, 고귀한 재료, 이지적인 구조 혹은 시각적으로 흥미진진한 경험을 철저하게 거부했다.

미니멀리즘 미술가들이 추구했던 것은 완전히 새롭고 명백한 실제(realness)였다. 미술작품과 감상자 사이를 심리적으로 분리시키는 장벽을 허물어 버리기 위해 조각 작품을 설치할 때 사용하는 좌대를 없애 버렸다. 심지어 칼 안드레의 경우 납작한 철판을 전시장 바닥에 깔아 놓고 감상자들이 그 위를 걸으면서 작품과의 직접적인 물리적 접촉을 하도록 유도한 전혀 새로운 개념의 조각을 선보였다.

미니멀리즘의 이론적 체계 확립에 큰 역할을 했던 도널드 저드는 자신의 작품을 회화나 조각이 아닌 3차원의 실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특정한 대상(Specific Object)이라고 규정했다. 저드는 미술의 조형적 순수성을 오염시키는 모든 환영(illusion)을 제거해야한다는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입장에 동의했고, 미니멀리즘 작품들은 무언가 다른 것을 의미하거나, 지시하거나, 가리키거나, 상징하지 않는다.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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