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문화재연구소의 신라 속 ‘숨은그림찾기’ 24
기와란 목조건물 지붕의 누수와 부식을 방지하고 건물의 치장을 위해 점토를 틀에 넣어 형태를 만들고 가마에 구워 만든 건축 재료입니다. 지붕은 수키와와 암키와를 이어 덮고 처마에는 수키와와 암키와 끝에 연꽃, 당초, 보상화, 귀면, 동물 등 다양한 문양을 부착한 수막새와 암막새를 장식합니다. 마루는 마루를 쌓아올리는 적새기와, 마루 밑의 기와골을 막는 착고기와, 서까래를 덮는 서까래기와, 추녀 밑 네모난 서까래에 사용한 사래기와, 마루 끝에 귀면기와와 용마루 양쪽 끝에는 치미를 배치하여 지붕을 치장합니다.
삼국시대 기와건물은 왕궁, 관청, 사찰 등 국가적인 용도의 건물이나 특수계층의 주거건물 등 국가의 주도하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고, 수막새나 치미 등 특수 용도의 기와 사용을 통해 건물 권위의 높고 낮음을 파악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신라의 왕궁과 관련된 유적으로는 정궁인 월성, 동서 200m 남북 180m 규모의 대형 석축연못의 정원시설과 동궁과 관련된 복합시설이 조성되며 월지(月池)명 유물, 동궁아일(東宮衙鎰)명 자물쇠, ‘세택(洗宅)명 목간, 용왕신심(龍王辛審)명 토기 등 동궁과 관련된 유물이 다량 출토되는 동궁과 월지, 우물 내부에서 ‘남궁지인(南宮之印)’ 글씨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남궁으로 비정되는 국립경주박물관 부지 내 유적, 월성의 정북방향에 위치하고 통일신라시대에 축조한 전각과 회랑의 건물 배치로 보아 북궁으로 비정되는 성동동 전랑지가 있습니다.
또한 삼국시대에는 월성을 정궁으로 사용하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동궁과 월지, 국립경주박물관 부지 내 유적, 월성과 첨성대 사이 공간에 위치한 회랑식 건물지군 일대까지 왕궁의 범위가 확대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월성은 신라의 최고지배계층이 사용한 왕궁입니다. 왕궁 축조와 관련된 문헌기록으로는 “금성의 동남쪽에 성을 쌓고 월성 또는 재성(在城)이라고 하였다.”라는 기사가 확인되며, 실제로 월성에서 ‘在城’명 기와가 수습되기도 합니다.
월성은 발굴조사를 통해 5세기대에 왕궁으로서 면모를 갖추고 5세기 후반 또는 6세기 전반부터 신라가 폐망하는 10세기 전반까지 기와를 사용한 건물이 여러 차례에 걸쳐 건립·중건된 것으로 확인되고, 수키와·암키와, 수막새·암막새, 귀면와, 특수기와, 문자기와, 전돌 등 다양한 종류의 기와가 출토되고 있습니다.
월성에서 출토되는 기와의 특징으로는 와통을 사용하지 않고 토기제작기법을 응용하여 회전하는 물레에서 제작한 신라의 초기기와가 다량 확인됩니다. 백제의 대통사지 창건와와 동일한 문양이 장식된 수막새와 접합된 초기기와가 출토되거나 기와 측면에 내림새가 부착된 초기기와가 출토되기도 한다. 신라 초기기와는 손곡동·물천리요지와 화곡리요지에서 생산되며, 소비지유적에서 출토되는 분포양상을 살펴보면 월성을 중심으로 500m 이내 근거리에 위치한 유적에서만 확인됩니다. 월성을 제외한 각각의 유적에서는 10점 이내 소량만 출토되어 초기기와를 사용한 건물이 존재하였다고 판단하기 어려우나 월성에서는 다량 출토되어 초기기와를 장식하여 신라의 정궁으로 사용한 건물의 존재 확인이 기대됩니다.
월성 출토 삼국시대 수막새는 문양에 따라 백제계·고구려계·신라식으로 구분됩니다. 백제계는 백제 웅진기와 사비기에 유행한 문양이 장식된 수막새가 출토되고, 고구려계는 삼각형의 꽃잎에 양감이 강한 문양이 장식된 수막새가 출토됩니다. 신라식 수막새는 백제계와 고구려계의 영향을 융합하여 개발되며 넓고 부드럽게 융기된 꽃잎 끝을 반전시키거나 잎 가운데 능선을 배치한 문양이 유행합니다. 통일신라 수막새는 꽃잎을 중첩하여 배치한 형태와 보상화문, 가릉빈가, 사자문 등 다양한 문양이 등장하고 대량생산의 필요로 제작기법도 정형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월성 출토 문자기와는 연호명이 나타내는 ‘의봉사년개토(儀鳳四年皆土)’, 신라 6부 가운데 북천이북의 소금강산 일대에 위치한 한지부와 관련성을 보이는 ‘한(漢)’·‘한지(漢只)’, 보문동과 낭산 부근 지역에 위치한 습비부와 관련성을 보이는 ‘습부정정(習部井井)’·‘습부정정(習府井井)’, 기와 제조와 관련된 관청인 와기전(瓦器典)과 관련성이 보이는 ‘전인(典人)’ 그 외 ‘생(生)’, ‘주(主)’, ‘정도(井桃)’, ‘주(朱)’, ‘본(本)’, 만(‘卍)’, ‘정(井)’이 있습니다.
월성에서 출토된 문자기와 중에 특징적인 유물로는 ‘儀鳳四年皆土’명 기와가 있습니다. ‘儀鳳四年皆土’명 기와에 새겨진 儀鳳四年은 679년에 해당하는 연호이며 월성, 동궁과 월지, 국립경주박물관 주차장부지 등 신라 왕궁과 관련된 유적에서 다량 출토되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7세기 후반 이후 월성 주변 일대에 관청건물을 건립하여 왕궁의 영역이 확대한 것으로 파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