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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에 대한 경배

등록일 2021-06-09 20:08 게재일 2021-06-1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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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감천면 석평마을의 석송령.

소나무는 꿋꿋하다. 모양새가 참으로 아름답고 사철 푸른빛을 잃지 않아 초목의 군자로 부른다. 우리 땅과 우리 삶에 잘 적응한 나무이다. 그래서 애국가에서 민족의 푸른 생명력을 소나무에 비유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소나무의 생동력은 줄기에서 뻗는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다. 용트림하며 구불구불 올라가는 줄기의 형상은 마치 용이 하늘로 오르는 모양새다. 품새 또한 침엽수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어디 심어 놓아도 품격 있게 보인다.

소나무 중의 으뜸은 금강송이다. 줄기는 붉으며 가지가 넓지 않다. 울창한 숲에서 햇빛을 받아 살아남으려고 성큼성큼 제 키를 키운다. 백두대간의 산골에서 함박눈을 이기고 비바람을 견디며 곧게 자란다. 하늘을 향해 높이 우뚝 솟아 기골이 장대하다. 그래서 국가의 부름을 많이 받았다. 금강송을 벨 때는 예를 갖추었다. ‘어명이요!’라며 왕의 부름을 받았음을 먼저 알리고 도끼질했다. 실려 간 금강송은 국가건물의 동량지재(棟梁之材)로 쓰였다.

소나무는 씨앗에 날개가 있어 솔방울에서 천천히 떨어지면서 날아간다. 어미나무로부터 멀리 떨어져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도 한다. 마을이나 논과 밭 근처에 솔숲이 형성된 것이 이 때문이다. 넓은 들판에 서 있는 소나무는 다른 식물과 햇빛이나 땅을 두고 경쟁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나무는 키를 키우기보다는 가지의 폭을 넓게 펴며 자란다.

소나무를 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키를 높이는 데 온 힘을 쏟는 나무 아래서는 자박자박 느릿한 걸음으로 탑 돌듯 주변을 돌아본다. 솔솔 부는 솔바람에 솔가지가 흔드는 소리에도 귀를 전부 열어야 한다. 제 키보다 더 크게 양팔 벌린 소나무 아래서는 앉거나 눕거나 엎드린 자세로 요리조리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고는 나무 주위를 천천히 돌면서 오관을 활짝 열어 소나무가 내뿜는 기를 느껴본다. 오늘은 사람보다는 소나무 입장이 되어보고 소나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말을 걸어본다.

아들 석송령.
아들 석송령.

예천군 감천면 석평마을에는 오래된 반송이 한그루 서 있다. 소나무가 소유하고 있는 토지에 대해 세금을 내는 부자 나무이다. 토지대장에 등재된 주인은 성은 석(石)씨이요, 이름은 송령(松靈)이다. 매년 그 세금으로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마을의 단합에 한 몫을 단단히 한다. 나무를 사람과 같이 하나의 인격체로 여긴 석평마을의 소나무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좋은 예이다.

먼저, 소나무의 이름을 불렀다. 석, 송, 령. 그리고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묵례했다. 강렬한 봄볕이 정수리에 닿아 뜨거웠지만, 소나무가 내뿜는 날숨을 들여야겠다는 욕심에 가슴부터 열었다. 어깨를 곧게 펴고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는 기운을 끌어와 ‘후’ 하고 뱉었다.

석송령 주변에 울타리가 쳐져 있다. 소나무 뿌리 주변에 흙이 다져지면 생장에 좋지 않기도 하지만, 나무 아래 막걸리를 뿌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 과일을 두고 가는 사람이 많았다. 소나무는 사람이 뿌려주는 막걸리에 취해 흥에 겨워했을까, 아름드리 몸통 앞에 놓인 바나나, 사과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울타리 따라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석송령이 지닌 이야기 따라 90년을 거슬러 간다.

이순혜​​​​​​​수필가
이순혜 수필가

석평마을의 이수목 노인은 자식이 없어 날마다 걱정이었다. 어느 날, 꿈에 들리는 또렷한 소리 “걱정 마라, 걱정 마라” 선명하고 우렁찬 소리에 노인은 꿈에서 깼다. 노인의 걱정이 소나무에 닿았는지 소나무가 꿈에 나타나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마을의 영물인 소나무에 노인은 모든 재산을 물려주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마을 사람들에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음 날, 노인은 군청을 찾아가 토지의 소유주를 새 주인에게 옮겼다.

천천히 석송령을 한 바퀴 더 돌았다. 석송령은 하늘로 높이 솟구치기보다는 오히려 넓게 가지를 펴면서 600년을 살아왔다. 크게 펼친 팔이 힘들어 돌기둥으로 떠받치고 있지만, 앞으로도 쭉쭉 뻗어 갈 것 같다. 내일은 비바람에 가지들이 심하게 흔들릴지라도. 건너편에 석송령의 아들 소나무가 높이를 쑥쑥 키우고 부지런히 양팔 벌리며 가지를 넓히고 있다. 아버지를 이어 석평마을의 안녕을 위해 그렇게.

석평마을 사람들은 이 소나무가 마을의 화목을 지키는 영물(靈物)이라 믿는다. 소나무에 한 번 더 경배(敬拜)하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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