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음식 - ⑥ 꽁치 다대기, 모리국수, 와인
포항의 상징은 포스코다. 포항을 대표하는 또 다른 상징은 어떤 것이 있을까? 구룡포 과메기, 호미곶 일출, 죽도시장 등이 그 뒤를 따른다. 그런데 포항시의 공식 상징인 시화나 시목은 무엇인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포항의 시화는 장미, 시목은 해송, 시조는 갈매기다. 전국 어디에나 있는 것이니 딱히 포항만을 상징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국민 생선이라 할 만한 꽁치는 흔하지만, 포항이 먼저 떠오른다. 과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꽁치도 포항의 상징으로 한자리를 차지할 만하지 않을까? 시어(市魚)를 정한다면 포항의 시어는 꽁치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꽁치다대기는 뼈째 다져서 만든 꽁치완자를 넣고 끓이는 음식
꽁치완자를 넣은 시락국에 국수 말면 시락국수 밥 말면 시락국밥
모두가 배불리 먹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 모리국수
해산물 넣고 육수 끓이다 국수는 생면을 쓰고 간은 새우젓으로
포항은 일제 강점기때 포도원 면적이 198만㎡에 이르던 곳
1970년대에는 ‘영일만 청포도’로 20년간 마주앙 와인 생산
포도원 되살린다면 와이너리 투어+해양관광 매력적 산업될 듯
포항과 울릉도에서 즐겨 먹는 꽁치 완자 요리
전국에 널리 알려진 포항 꽁치 요리의 대명사는 과메기지만 과메기 외에도 포항 사람들의 꽁치 사랑은 유별나다. 포항에서는 꽁치 하나로 참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낸다. 구워 먹고 끓여 먹는 것은 기본이고 날것은 회로 먹고, 전도 부쳐 먹고 죽도 끓여 먹는다. 소금에 절여 젓갈로도 담가 먹는다. 다양한 꽁치 요리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과메기와 함께 포항을 대표하는 꽁치 요리는 꽁치 다대기다. 뼈째 다져서 만든 꽁치 완자를 넣고 끓이는 음식이 바로 꽁치 다대기인데 꽁치국, 꽁치 당구국, 꽁치 다대기 추어탕, 꽁치 시락국 등의 다양한 이름과 형태로 진화해 왔다.
꽁치 완자 요리는 울릉도의 관문인 포항과 울릉도에서 함께 즐기는 향토 음식이다. 울릉도에서는 꽁치 완자에 섬엉겅퀴를 넣고 끓이는 꽁치 완자 엉겅퀴 된장국이 대표 요리다. 구룡포의 이름난 꽁치 시락국숫집 벽면에는 시락국수 먹는 법이 쓰여 있다.
“꽁치 완자를 으깬다. 청양고추를 넣는다. 산초 가루를 넣는다.” 국수 먹는 법이 어디 정해져 있겠는가마는 낯선 음식 앞에서 주저하는 이들에게 일종의 가이드처럼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으깨지 않고 완자를 통으로 먹을 수도 있고, 매운 것 싫은 사람은 청양고추를 안 넣어도 되고, 산초 향이 싫은 사람은 산초 없이 먹어도 된다. 꽁치 완자를 넣은 시락국에 국수를 말면 시락국수가 되고 밥을 말면 시락국밥이 된다.
전국 각지에 가장 흔한 국밥 중 하나가 시락국이다. 통영에 가면 장어 뼈를 우린 국에 시래기를 넣고 끓인 시락국이 있고, 내륙의 시골 장터에는 돼지고기 육수에 시래기를 넣은 시락국이 있다. 그냥 된장만 푼 시래기 된장국도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이 아니던가. 음식은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다. 포항의 꽁치 완자 요리가 소중한 문화인 것은 꽁치의 살뿐만 아니라 칼슘이 풍부한 뼈까지 버리지 않고 다져서 완자로 만들어 먹었던 옛 포항 사람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포항에서도 꽁치 완자 시락국을 끓이는 방법은 집집마다 다르다. 그때그때 값싸고 흔한 생선을 넣고 육수를 내는 집도 있고, 멸치 육수만 쓰는 집도 있고, 달리 육수를 내지 않고 꽁치 완자와 야채만 넣고 끓여내는 집도 있다. 역시 요리에는 고정된 레시피가 없다. 다만 꽁치 완자를 넣는다는 점만 동일하다. 하지만 이 꽁치 완자를 만드는 법도 제각각이다. 꽁치 살과 뼈를 다져서 사용하는 것은 같은데 완자를 만들면서 여기에 밀가루를 섞는 집도 있고 밀가루를 전혀 쓰지 않고 꽁치만을 사용하는 집도 있다. 꽁치 완자 시락국은 꽁치를 도마에 놓고 칼로 다져서 만드니 꽁치 다대기, 꽁치 당구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요즈음 식당에서는 그런 재래식 방법으로 만드는 것이 힘드니 대부분 꽁치를 방앗간에서 갈아다 완자를 만들어 쓴다. 집에서 소량으로 만들 때만 전통 방식대로 직접 손으로 다진다. 밀가루를 섞은 꽁치 완자는 모양이 좋고 잘 부서지지 않아 씹는 맛이 있지만 국물이 텁텁하다는 단점도 있다.
밀가루를 쓰지 않고 온전히 꽁치 원재료만으로 완자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접착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가루 안 쓰는 완자 만들기를 고수하는 집에서는 완자를 미리 만들어두지 않고 수제비처럼 물이 끓을 때 꽁치 다대기를 숟가락으로 떼어서 넣는다. 꽁치 다대기는 끓는 물에 빠지는 순간 굳어지기 때문에 밀가루가 없어도 완자 모양을 유지할 수 있다. 담백한 국물 맛을 원한다면 이 방식의 꽁치 완자 요리를 만들면 된다. 꽁치 다대기는 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 포항 음식은 꽁치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풍성한가.
모리국수, 생선탕에 국수를 넣어 먹는 데서 유래
포항에는 꽁치 시락국수에 필적할 만한 특별한 전통 국수 요리가 또 하나 있다. 모리국수다. 모리국수는 생선탕에 국수를 넣어 먹던 데서 유래했다. 옛날에는 생선을 끓여서 뼈를 발라내고 살을 넣고 추어탕처럼 끓인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었다. 일종의 어탕 국수였다. 지금은 멸치 육수를 쓰는 집이 많다. 오늘은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의 대천식당에서 모리국수를 먹는다. 본래 구룡포 모리국수는 미역초라는 물고기를 주원료로 만들었다. 미역초의 학명은 무점등가시치다. 남해안에서는 고랑치라 부른다. 동해안에서는 헤엄칠 때 모양이 미역과 닮았다 해서 미역초, 길다고 해서 장치라고도 한다. 미역초는 4∼7월 사이가 맛있다. 그래서 모리국수도 이때가 제철이다. 미역초는 살이 단단해서 회로 먹으면 씹히는 살맛이 일품인데 척추 뼈가 굵고 억세 국물이 잘 우러난다. 모리국수에 미역초를 쓰는 것은 육수가 좋아서다. 미역초를 넣은 미역국도 구룡포 사람들이 즐겨 먹는 향토 음식이다. 국물이 텁텁한 맛이 없고 다른 어떤 생선보다 깔끔하다. 모리국수는 미역초가 흔하던 시절에는 미역초가 1순위였지만 지금은 귀한 물고기가 돼서 다른 물고기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생선이든 싱싱한 생선으로 끓여야 비린 맛이 없고, 시원하고 고소하다. 모리국수는 푹 끓여 뼈를 걸러내고 진국에 국수를 말아내는 민물고기 어탕 국수와는 차이가 있다. 즉석에서 매운탕 끓이듯 생선을 통째로 넣고 바로 끓인다. 먹을 때마다 즉석에서 바로바로 끓이니 손이 많이 간다.
모리국수는 옛날 구룡포에서 집집마다 즐겨 끓여 먹던 음식이다. 본래 재료는 정해진 것이 없었다. 한 집에 보통 식구가 십여 명이나 되니 먹을 것이 귀했다. 미역초뿐 아니라 다양한 물고기와 고둥, 새우, 문어, 홍게 같은 해산물을 넣고 육수를 끓이다 국수를 넣으면 양이 많아져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쌀이 귀하던 시절 최고의 영양식이었다. 온갖 해산물에 미역 같은 해초뿐만 아니라 취나물, 고사리 같은 산나물을 넣고 끓이기도 했다. 때로는 신김치를 넣고 끓이기도 했다. 가족들이 다들 모여서 배불리 먹는다 해서 모리국수란 이름이 붙여졌다.
모리국수에는 무가 들어가야 시원하다. 먼저 미역초를 깔고 무, 콩나물 등 야채를 넣고 끓이다 육수가 어느 정도 우러나면 국수를 넣어서 익힌 뒤 먹는다. 문어, 홍게, 고둥 같은 해물도 고명으로 들어가니 시원한 맛이 배가 된다. 국수는 생면을 쓰는데 생면을 흐르는 물에 한 번 씻은 뒤 끓는 육수에 넣는다. 그래야 국물이 텁텁하지 않고 개운한 맛을 낸다. 간은 새우젓으로 한다. 민물 어탕 국수의 눅진함과는 또 다른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매력이다.
포항 와인의 부활을 꿈꾸며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소년 시절에 참으로 좋아하던 시, 이육사의 ‘청포도’. 포항 청림동에는 청포도 문학 거리가 있고 다양한 포도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또 호미곶 새천년광장에는 청포도 시비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 안동 태생인 이육사의 시비가 포항에 있는 걸까? 이육사는 1936년 7월 당대의 유명한 한학자였던 사촌형과 이종형이 살고 있는 포항에 휴양차 와 있었다. 동해면 송도원에 머물면서 동양 최대의 포도 농장인 미쓰와(三輪) 포도원을 둘러봤고 영일만을 바라보며 시상을 떠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청포도’를 완성한 뒤 국내에서 발표했다. 육사의 시 ‘청포도’가 탄생한 곳이 포항인 것이다. 지금은 짐작하기도 힘들지만 한 시절 포항은 와인의 주산지였다.
일제강점기, 포항시 동해면과 오천면 일대에는 미쓰와(三輪) 포도원이 있었다. 이 농장에서 생산된 포도를 원료로 만들었던 삼륜 포도주는 명포도주로 알려져 애주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미쓰와 젠베에가 1918년 2월 국유지 약 16만 5천㎡를 헐값에 불하받아 미쓰와 포도원을 열었다. 1934년에는 포도원의 면적이 약 198만 3천400㎡에 이르렀고 연인원 3만 2천여 명의 조선인들이 동원돼 포도 농사를 지었다. 미쓰와 포도원은 100여 종의 서양 포도를 시험 재배해 20여 종을 심었다. 1935년 기준 연간 생포도주 1천석, 브랜디 100석, 감미 포도주 500석 이상을 생산했다. 와인 종류도 다양했고 증류주인 브랜디까지 만들어냈다. 레드, 화이트, 감미 화이트, 감미 레드 와인과 브랜디, 포켓 브랜디 등이 생산됐다.
해방 후에도 이 농장에서는 ‘삼륜포도주공사’라는 이름으로 포도주가 생산됐다. 이 농장의 포도주는 1960년대까지 ‘포항 포도주’로 시중에 판매됐지만 1966년 방부제 과다 사용이 문제가 돼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병대교육훈련단과 포항비행장이 자리한 곳이 바로 미쓰와 포도농장 자리다. 1970년대에는 두산 포도원이 청하와 흥해 지역에 들어서면서 영일만 청포도가 부활했다. 총 98㏊의 땅에서 연간 700∼800t의 포도를 생산했다. 이 지역은 강수량이 적고 연간 최저 온도가 높아 포도 재배에 적지였다. 이 농장에서는 양조용 청포도 리스링과 사이벨, 먹포도 엠비에이 등 3종이 재배됐으며, 이 포도를 원료로 20년간 마주앙 와인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포도주 개방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1996년부터 생산이 중단됐다. 이래저래 포항은 와인과 인연이 깊은 땅이다. 다시 이 지역에 포도원을 되살리고 와인을 만든다면 포항의 새로운 산업으로 되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와이너리 투어와 해양 관광, 해양 레포츠의 만남. 아주 매력적인 포항의 미래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 강제윤 시인·(사)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