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br/>김민정 문화음식연구원 대표원장
김민정 원장이 상자의 리본을 풀었다. 상자 속에 국화꽃 모양의 들깨타르트와 흑임자 다식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궁중 잔치 기록서에 의하면 다식에는 황률다식,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녹말다식, 강분다식, 계강다식, 청태다식, 신감초말다식 외에 오곡다식과 산약다식 등, 여러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차에 곁들여 먹는 음식’이라는 뜻의 다식은 오색의 전통문양을 다식판으로 찍어내기도 하고, 김 원장처럼 손으로 정성껏 매만져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차를 마시며 국화꽃 모양의 흑임자다식을 먼저 맛보았다. 검정깨의 고소함에 어우러지는 조청 맛이 은근한 미감으로 다식의 풍미를 더했다.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매운맛을 골고루 적절하게 섭취하는 것이 건강한 식생활의 기본이다. 음식에는 정확한 답이 없죠”
“발효음식에 눈을 뜬 계기가 있나요?”
“2010년도에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어요. 면역성에 도움이 될까 하고 약용식물을 연구하다 발효음식을 만났어요.”
인진쑥과 아카시아 꽃, 솔잎 오디, 산야초를 채집해서 발효시켜 먹으며 건강을 회복했다. 발효요리를 시작한 초기에는 누구나 다 아는 대로 설탕물과 산야초를 1 : 1 비율로 담그다 차츰 설탕을 줄이고 올리고당과 꿀 조청을 넣는다거나 배를 섞어서 버무리거나, 재료를 달리하며 전통방식의 발효를 변화해 나갔다. 첨가물을 넣을 때도 산야초 성분 속에 있는 좋은 성분을 빼내도록 프락토 올리고당과 같이 좋은 재료를 사용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효의 세계를 확장시켜 나갔다. 정답은 아니지만 수십 년의 실전으로 경험을 쌓아가며 개발하고 찾아낸 연구 결과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삶에 이익이 되도록 널리 알리는데 힘썼고, 단맛을 줄이는 일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요리연구를 하던 중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한 기억이었어요.”
어머니가 제사음식을 한다거나 다른 요리를 할 때마다 딸을 곁에 앉혀두고 제사음식과 묵나물 같은 여러 가지 산나물 다듬는 법을 가르쳤다. 어머니는 어린 딸에게서 요리로 제 몫을 할 싹수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고향이 청송이고 송소고택 있는 덕천마을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많이 아팠다. 시골에 살아도 농토가 없어서 어머니가 멀리까지 행상을 하러 다니셨다. 어린 그녀가 어머니의 빈자리를 맡아서 집안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토속음식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문학소녀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문예대회에서 상도 받았지만 몸이 아픈 아버지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꿈을 접었다. 86년도에 문화센터에서 요리강의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식 일을 한 이후로 37년이 흘렀다. 출장요리부터 집들이 요리 등, 불러주는 대로 가서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만큼의 세월이 흘렀다며 소탈하게 웃는다. 그녀의 웃음이 갓 다듬은 산나물처럼 건강하다.
“발효요리와 함께 식용곤충요리를 하신다고 들었어요.”
“흰점박이꽃무지, 장수풍뎅이애벌레, 메뚜기, 백강잠, 번데기, 귀뚜라미, 밀웜 등 7가지를 정식으로 식용곤충요리로 허가받았어요.”
김 원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식용곤충요리연구협회를 창립했다. 잘 키운 농가의 식용곤충을 선택해서 단백질이 풍부한 곤충요리를 연구한다.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 대경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곤충요리 수업을 했다. 맨 처음 식용곤충요리를 알리기 위해 시식회를 한 적이 있다며 그때의 얘기를 들려준다. 식용곤충요리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대구광역시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갔다. 식용곤충요리 전시회와 시식회를 겸하도록 장소 제공을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자리를 내주더라고 했다. 그다지 큰 기대를 갖지 않고 시작한 행사가 음식이 모자랄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을 때 모두 놀랐다. 처음의 성공을 시작으로 2회 전시회를 겸한 시식회가 성공하자, 대구광역시의 도시농업박람회에서 요리대회를 해달라는 제의를 했다. 그렇게 요리라이브로 열 배 이상의 효과를 거두며 매스컴의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성공을 예상했어요?”
“메뚜기 잡으러 다니던 생각을 하며 벌인 일이었어요.”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둘 줄 몰랐다고 한다. 굼벵이, 메뚜기, 밀웜 모두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식용으로 먹어오던 것이었다.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고, 없는 것을 만들어낸 것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주어서 너무 기뻤다며 김 원장이 함빡 웃음을 지었다. 솔직한 담론과 매순간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적극적인 용기까지 속속들이 건강한 에너지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그녀는 요리에 관한 것이면 저절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에너지가 샘솟는 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도록 일을 못했는데도 용감하게 뛰어다닌 걸 보면 의욕이 왕성했던 걸 알겠더란다. 돼지고기와 미삼을 활용한 음식과 애피타이저로 요리왕 선발대회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며, 미삼으로 샐러드를 만들고 양파 링 속에 미삼을 넣어 수삼샐러드를 만들었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만 들려주세요.”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던 얘기 하나 할게요.”
2007년도에 중국 광저우의 ‘삼청각’이라는 한식당을 호텔 이층에 오픈하는데 와서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아직 요리를 한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운데도 망설이지 않고 달려간 용기가 오늘의 그녀를 만들었다. 호텔 한식당에서 넉 달 동안 일을 했던 그 시간이 김 원장에게는 한식에 대해 적극적으로 연구 실습하는 계기가 되었다. 직원들과 의사가 통하지 않아서 밤마다 그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쳤다. 중국인 직원들을 앉혀놓고 자신은 바빠서 중국말을 배울 시간이 없으니 너희들이 우리말을 배우라고 했다. 광저우 호텔에서 일을 하는 동안 자신이 더 많이 배웠다며 그녀는 낯선 곳으로 겁 없이 달려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밥상에서 기본적인 반찬이 되는 음식들이 중국에서는 반찬 하나하나가 모두 메뉴구성이 되고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 한국과 다르더라고 꼬집었다. 언제 어느 때고 푸짐하게 내놓는 우리네 밥상의 정겨움이 돈의 가치로 바뀌는 영업방식이 낯설었나 보다.
“코로나로 인한 변화를 꼽는다면?”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가 없어서 발효식품의 메뉴개발을 시작했어요.”
역시 적극적이다. 잠시도 두 손 놓지 못하고 움직이는 것이 그녀의 에너지를 확인시킨다. 강의와 모임이 중단된 한가한 틈을 이용해서 고추장이나 된장, 간장을 재래의 방식에서 벗어나 즉석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현대적 방식을 연구했다고 한다. 제대로 된 자연발효간장을 맛있게 먹으려면 3년이 걸린다. 발효는 기다림이다. 기다림 속에서 사람도 성숙해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연유로 김 원장은 코로나로 여유로워진 시간을 이용해서 버려야 할 것과 권장해야 할 것을 찾아내고 세세하게 기록해서 치유음식으로 발전시키는 연구를 한다. 그 시작이 빙초산 대신에 레몬을 넣어서 초장을 만드는 건강한 음식 개발이다.
그녀는 또 신체 각 기관별 치유 음식으로 다섯 가지 맛과 색으로 음양오행과 오장육부에 도움 되는 음식도 연구 중이다. 간은 녹색에 신맛이고, 심장은 붉은색에 쓴맛이고, 비장은 노란색에 단맛이고, 폐장은 흰색에 매운맛, 신장은 검은색에 짠맛이 도움을 준다. 폐가 좋아하는 흰색 음식으로 무와 양파, 율무, 배가 있고, 심장에 좋은 적색 음식으로 쑥, 익모초, 도라지, 커피, 작설차처럼 쓴맛을 내며, 위와 췌장 같은 소화기에 좋은 황색 음식으로 인삼, 고구마, 호박 등의 참외가 있고, 신장과 방광, 관절
에 좋은 흑색 음식으로 검은콩, 다시마, 멸치 등의 해조류가 있다. 그 밖에 동물의 간과 쓸개에 좋은 녹색 음식으로 메밀, 팥, 견과류가 간의 활성화를 돕는다.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매운맛을 골고루 적절하게 섭취하는 것이 건강한 식생활의 기본이다. 음식에는 정확한 답이 없고, 자기 방식이 옳다고 함부로 주장할 일도 아니다. 현명하게 몸의 요구를 알아채는 게 중요한 것일 뿐. 김 원장은 자신이 연구한 것을 누군가 공유한다면, 그것은 그분과 자신의 방식이 맞아서 그런 거라며 알고 보면 몸의 요구는 그렇게 쉬운 거라고 한다. 정보를 나누어 가지며 몸의 요구를 알아채는 것.
김 원장은 향토음식 식문화대전 요리대회 통일부 장관상, 재능나눔 공헌대상, 대한민국문화교육대상 등의 포상 경력에 더하여, 대한민국 요리명인으로서 발효요리와 식용곤충요리연구로 사회에 재능기부도 하고, 국민건강에 이바지하며 나누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