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해양문화<br/>바다 음식 - ④ 과메기
기록에 남은 과메기의 시작은 조선의 바다를 물 반, 고기 반으로 만들 정도로 풍성했던 청어다. 청어는 조선의 선비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하는 중요한 생선이었기에 비유어(肥儒魚)라고도 했다. 선비를 살찌우는 물고기. 포항에는 과거에 청어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지명으로 남아 있을 정도다. 호미곶의 까꾸리께라는 곳이 그곳이다. 청어 떼가 해안으로 밀려오면 까꾸리(갈퀴)로 긁어모았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 까꾸리께다.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이던 전설 같은 시대의 이야기다. 유럽에서도 청어는 대구와 함께 가장 중요한 생선이었다. 식량인 동시에 축재 수단이기도 했다. 유럽의 청어는 소금에 절여서 유통됐다. 지금도 네덜란드를 비롯한 북유럽에서는 ‘하링’이라는 전통 방식의 청어 초절임이 팔리고 있다. 교회가 육식을 금지하는 기간에 청어는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청어가 얼마나 많이 잡혔던지 ‘까꾸리(갈퀴)로 긁어 모았다’ 해서 붙여진 지명 호미곶 ‘까꾸리께’
새끼줄에 엮어 통으로 말리는 통과메기를 전통 방식으로 먹기 좋게 손질한 배지기 과메기 등장
1960년 청어 자취 감추자 맛 비슷한 꽁치로 만들어… 레몬보다 비타민 많은 불포화 지방산 보고
‘자산어보’에 등장하는 청어 과메기
과메기는 대개 11월부터 2월까지 말린다. 구룡포 삼정리 해변에는 아직도 재래식으로 해풍에 건조하는 과메기가 생산된다. 대부분 공장식 시스템을 통해서 실내 온풍 건조로 만들어지고 있으니 해변 덕장의 건조 과메기는 귀하다. 삼정리 어업의 역사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청동기시대에도 그물로 물고기를 잡았던 증거물들이 출토됐다. 2002년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 해안도로를 내면서 삼정리, 석병리의 고분군에 대한 발굴 조사를 했는데, 어업 관련 유물이 151점이나 발굴됐다. 삼정리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나온 토제 어망추도 그중 하나다. 어망추는 그물 끝에 달아서 그물이 가라앉게 만드는 기구다.
청동기시대부터 삼정리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물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았고 지금도 삼정리 어민들은 같은 바다에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간다. 참으로 장구한 어업의 역사가 이어져온 해변이다. 청동기시대에도 사람들은 물고기를 말려 먹었을 것이니 청어나 꽁치를 과메기로 만들어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대량으로 물고기를 어획한 토제 어망추가 바로 그 증거다.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에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고래잡이를 했던 그림이 남아 있고, 구룡포 삼정리에도 청동기시대 암각화가 남아 있다. 고래 사냥을 해서 고래고기를 먹었던 청동기인들이니 과메기인들 못 만들어 먹었을 까닭이 없다. 그렇다면 과메기의 역사는 물경 3000년에 이른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삼국지’의 ‘위지 동이전’에는 “옥저 사람이 고구려에 조부(租賦)로서 맥포(貊布)와 함께 어염(魚鹽) 및 해중 식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나오고, 2020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은 재발굴 결과 경주 서봉총에서 쏟아져 나온 유물 중에 백제의 조문객이 가져온 민어의 흔적이 나온 것을 보면 2000년 전에도 건어물 문화가 널리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대와 선사시대부터 생선을 말려 먹는 문화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과메기만 없었을 것인가.
일반적으로 과메기는 청어나 꽁치를 수분 함유량이 40퍼센트 정도 되도록 말린 것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청어 과메기를 소개한다. 관목청(貫目鯖) 항목에 나오는 이야기다.
“모양은 청어와 같고, 두 눈이 뚫려 막히지 않았다. 맛은 청어보다 좋다. 이것으로 얼간포를 만들면 맛이 매우 좋다. 때문에 청어 얼간포를 관목청어라 부른다. 영남 바다에서 잡히는 놈이 가장 드물고 귀하다.”
과메기는 청어의 눈을 꿰어서 만든 관목어, 관목청으로 불리다 과메기가 된 것이다. 청어에 소금을 약간 뿌려서 살짝 저리는 ‘얼간’을 해서 건조한 생선이 과메기였다. 서유구의 ‘전어지(佃漁志)’ 청어(青魚, 비웃) 항목에도 과메기가 등장한다.
“우리나라 청어포 역시 자적색이 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다만 그 고기를 엮는 법은 등을 가르지 않고 새끼로 엮어서 햇볕에 말린다. 이렇게 하면 먼 곳에 부치거나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 민간에서 ‘관목(貫目)’이라고 하는 것은 두 눈이 새끼줄로 꿸 수 있을 만큼 투명한 것을 말한다. 잡는 즉시 선상에서 말린 것이 품질이 우수하다고 한다.”
‘영남읍지’(1871)에는 영일, 청하, 영덕 지방의 토산품으로 관목(과메기)이 거론되고 있다. 이규경이 1800년대 초 편찬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단순한 과메기가 아니라 훈제 청어 이야기가 등장한다.
“청어를 연기에 그을려 부패를 방지하는데 이를 연관목이라 부른다.”
본래 생산지에서 훈제 과메기를 만들기도 했지만 한양으로 운반한 후에 훈제한 뒤 판매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훈제하면 부패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훈제 과메기는 “비싼 값을 받는다”고 했다.
포항에서도 직접 훈제 과메기를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 냉훈법으로 말려 먹은 과메기가 그것이다. 겨우내 청어를 얼렸다 녹였다 반복하면서 건조시켰는데 연기가 빠져나가는 구멍인 부엌의 살창이 건조장 역할을 했다. 당시에는 땔감으로 솔가지를 많이 사용했는데 솔가지가 타면서 연기가 빠져나갈 때 솔향이 과메기에 스며들었다. 살창으로 들어오는 찬바람과 부엌에서 나가는 온기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과메기가 만들어졌고, 여기에 연기로 훈연하며 솔향까지 첨가된 것이다. 솔향 훈제 과메기는 단순한 건조 과메기와는 또 다른 고급 과메기였다. 되살려낸다면 아주 고급 요리가 되지 않을까.
과메기는 살창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뒤꼍 담벼락에도 널어 말렸다. 어촌에서 흔히 생선을 건조해 먹는 방식이다. 이후 좀 더 체계화된 것이 청어를 새끼줄에 엮어 말리는 방식이다. 조기 또한 자갈밭에 널어서 말리는 방식이 점차 새끼줄에 엮어 덕장에서 말리는 방식으로 변천해 온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꽁치나 청어를 새끼줄에 엮어 통으로 말리는 통과메기가 전통적인 방식이다.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한 접씩 새끼줄로 엮어 보름쯤 말린다. 건조 과정에서 내장의 성분이 살에 스며드니 과메기의 향이 진하다. 엮어서 말린다 해서 엮거리라고도 한다.
뼈와 내장 등을 제거하고 말린 배지기 과메기
근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은 배지기 과메기다. 먹기 좋게 뼈와 내장, 머리 등을 제거하고 말려서 만든 것이다. 생선의 등을 칼로 따서 말리는데 칼로 베어졌다 해서 베지기 혹은 배지기다. 지느러미와 머리를 자르고 배를 갈라 내장도 제거한 뒤 등뼈를 중심으로 양분해서 말린다. 먹을 때는 껍질만 제거하면 된다. 배지기는 손질한 생선을 바닷물로 씻은 뒤 민물로 한 번 더 씻어 말린다. 과거에는 바닷물에만 씻었는데 짜다는 이들이 있어 민물로도 씻어준다. 민물에는 2∼3분 담갔다가 건져내 말린다.
배지기 과메기는 속살이 바깥을 향하게 한 뒤 건조대에 걸어서 말린다. 바람이나 햇볕이 좋으면 이틀 정도면 먹을 수 있다. 하루면 물기가 빠지고 이틀이면 딱 먹기 좋게 꾸득꾸득 마른다. 이때 덕장에서 바로 걷어 상품으로 출하한다. 냉동실에 보관하고 먹어도 되고, 포처럼 먹고 싶으면 더 꼬들꼬들 말려서 먹어도 좋다. 전통적인 통과메기가 훈제 과메기로 바뀐 것은 1923년께 일본인들이 홋카이도의 청어 가공법을 들여오면서 확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인들이 청어 살과 별개로 청어 알을 선호한다는 점도 배를 따서 말리는 방식이 확산된 계기로 작용했다.
과메기는 손가락으로 눌러서 탄력이 있는 정도면 잘 숙성 건조된 것이다. 과메기를 먹는 방법은 다양하다. 김과 미역, 배추 등에 싸서 고추장을 찍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음식 먹는 것이 본디 정해진 방법이 있겠는가. 옛날 구룡포에서는 김장김치에 둘둘 말아 싸 먹기도 했다. 아니면 그냥 맨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그야말로 자기 취향대로 먹으면 된다. 싱싱하여 비리지 않게 잘 마른 과메기는 아무것도 찍지 않고 그 자체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본연의 맛을 뛰어넘을 수 있는 부재료란 없다. 원재료가 충실할 때 부재료는 의미가 없다. 과메기는 미나리를 넣고 무쳐 먹어도 좋고 불에 구워 먹어도 별미다.
건강에 두루 좋은 과메기
한국 사람들은 생선회도 유독 씹히는 맛을 선호한다. 꽁치나 청어도 살이 무른 생선이다. 하지만 말랑말랑할 정도로 말리는 과메기는 그 맛이 쫀득쫀득하다. 특히 꽁치 과메기의 식감이 좋다. 꽁치 과메기는 쫀득쫀득한 식감으로 많은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등 푸른 생선은 지방이 많다. 그래서 쉽게 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얼간을 해서 말리면 오랫동안 보존이 가능하다. 지방은 공기와 만나면 바로 부패한다. 그런데 지방이 많은 꽁치가 부패하지 않고 말라서 과메기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꽁치의 몸을 둘러싼 껍질 덕분이다. 껍질이 부패를 방지하고 숙성 발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요즘 과메기의 주원료인 꽁치는 한류성 어류다. 1960년대부터 흔하던 청어가 자취를 감추자 청어와 비슷한 맛을 내는 꽁치가 과메기의 재료로 등장해 전성기를 구가했다. 동해안의 꽁치도 1930년대 이전에는 손으로 잡는 손꽁치 잡이만 있었다. 1938년 후반부터 꽁치 유자망 어업이 시작됐고 1980년대까지 동해안의 대표적 어종이었다. 청어를 대체해 과메기를 만들 수 있을 만큼 풍족했던 꽁치도 2000년대 들어 어획량이 급감했다. 그래서 현재는 포항의 과메기도 대부분 원양에서 잡아온 냉동 꽁치로 만들어진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과메기는 포항을 비롯한 인근 동해안 지역 음식이었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포항의 대표적인 특산물로 자리 잡게 됐다. 과메기의 주재료인 꽁치는 전체 지방의 82%가 불포화지방이고 꽁치 100g당 열량은 262㎘다. 열량이 낮으니 다이어트 식품으로 제격이다. 또 불포화지방이니 혈관 건강에 좋다. 오래 두어도 기름이 굳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게다가 꽁치는 레몬보다 비타민C가 세 배나 많다고 한다. 꽁치는 과메기로 만들었을 때 생꽁치보다 DHA와 오메가3의 양이 증가한다. 과메기를 안주로 먹으면 술에 쉽게 취하지 않는다는 말도 빈말이 아니다. 과메기에 숙취 해소 물질인 아스파라긴산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술안주인 동시에 해장 음식이기도 하니 과메기는 대체 얼마나 미덕이 큰 음식인가.
글·사진 / 강제윤 시인·(사)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