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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독서의 힘

등록일 2021-04-26 18:36 게재일 2021-04-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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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br>인문글쓰기 강사·작가<br>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아버지가 미워요! 절대로 우릴 못 가게 했어야죠!’ 조엘이 울부짖는다. 그러나 조엘은 곧 자신 때문에 토니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토니가 수영을 못 하는 걸 알면서도 모래톱까지 수영 시합을 하자고 했어요.’ ‘조엘, 너랑 아버지랑 토니는 제각각 선택을 했어. 다만 토니만이 스스로 선택하고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뿐이야.’ 조엘은 자신의 고통을 없애지도, 없애 줄 수도 없는 아버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조엘은 울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가 안도한 듯 탄식했다. …. 조엘의 숨소리가 헐떡거릴 때에도 아버지는 조엘을 꼭 안고 있었다. 곧이어 조엘은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아버지의 고동소리에 맞춰 숨을 쉬기 시작했다.

위 장면은 마리온 데인 바우어의 ‘잃어버린 자전거’의 끝부분을 조금 줄여서 옮긴 것이다. 이 책은 136쪽의 얇은 청소년 소설이지만, 읽은 지 10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생생하다. 열네 살의 두 소년 조엘과 토니는 아기 때부터 같이 자랐다. 조엘은 토니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토니의 무리한 요구를 잘 받아준다. 그날도 조엘은 12㎞나 떨어져 있는 위험한 절벽에 가기 싫었지만 토니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따라나선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중간에 토니가 수영 시합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다른 곳에는 가지 말라던 아버지의 당부를 어기는 줄 알면서도 조엘은 금방 받아들인다. 그러나 토니는 익사한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예상하기 쉬운 부모의 반응은 어떤 것일까? 다른 곳에는 가지 말라고 했는데 왜 듣지 않았느냐고 조엘을 나무랐을까? 너의 잘못이 아니라며 위로할까? 조엘이 자기 몸에서 나는 강의 악취가 코를 찌른다며 냄새를 없애 달라고 할 때 아버지는 그 냄새를 없애 줄 수 없다고 한다. 토니가 자기 탓이라며 울부짖을 때 아버지는 우리는 각자 자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이런 전개는 예상을 완전히 넘는다. 이렇게 예상을 뒤엎는 소설의 전개는 독자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

최근 번역된 ‘신경미학’은 미학적 경험을 신경학적으로 분석한 여러 학자의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 중 데이비드 마이얼의 논문 ‘문학적 독서의 신경미학’에서는 문학을 읽을 때 독자의 경험에 대해 설명해준다.

저자에 따르면,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의 상황에 참여할 때 문학적 독서가 일어나는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가 ‘이화’이다. 이화라는 것은 독자의 예상을 넘는 전개를 만났을 때 생기는 낯선 느낌이다. 이 낯섦은 독자에게 새로운 이해를 추구하도록 촉발한다. 각자 자신이 선택했을 뿐이라는 아버지의 설명은 단순히 네 책임이 아니야 하는 보통의 위로를 넘어 앞으로 조엘이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가르침이다.

이런 아버지의 대응은 독자에게 낯선 느낌을 주면서 ‘지나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지 않고 슬픔을 이겨내는 법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준다. 이화를 통해 독자는 직접경험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활성화된다. 문학적 독서는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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