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산책을 하는 들판이 말끔히 봄단장을 했다. 겨우내 굳어있던 논바닥을 갈아놓은 것이다. 쟁기로 논을 갈던 시절에는 이른 봄이면 여기저기 소모는 소리가 온종일 들판을 울렸는데, 요새는 트랙터가 참 쉽게도 갈아엎는다. 논을 갈아 놓으면 공기에 노출된 속흙에 미생물의 번식이 왕성해져서 지력이 좋아진다. 식량이 모자라 이모작으로 논에도 보리를 심었던 지난날엔 모내기철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보리를 베어내고 논갈이를 했지만, 지금은 미리 논을 갈아 놓은 채로 봄철 내내 바람과 햇볕을 쐬고 눈비를 맞게 한다.
논밭은 한 해만 묵혀 두어도 온갖 잡초가 길길이 자라서 묵정밭이 되고 만다. 쑥대와 억새와 망초 같은 거친 풀들을 베어내고 쟁기로 깊숙이 갈아엎어야 다시 옥토가 된다. 물론 농사를 짓는 일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논밭은 수시로 돌보지 않으면 금방 잡풀이 우거진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안다.농작물을 잘 키우려면 물을 대고 거름을 주는 것보다 풀과의 전쟁이 더 큰일이라는 것을. 요즘은 아예 잡풀이 나오지 못하도록 비닐로 멀칭을 해서 김매는 일손을 대신한다.
사람의 마음 밭도 수시로 갈지 않으면 황폐해진다. 편견이나 고정관념, 맹신 따위로 굳어진 마음 밭에 탐욕과 거짓, 적개심 같은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묵밭이 된다. 심지어는 그렇게 무성한 잡초를 오히려 풍성한 농작물로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가 않은 것 같다. 재물이나 권력, 명예 따위의 열매는 바로 그런 잡초들에 열린다는 믿음이다. 저 혼자 그렇게 살다 죽겠다는 걸 말릴 필요가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그것이 곧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이 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마음이 황폐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란 삭막하고 패역한 황무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봄맞이를 위해서 논갈이를 하듯이 사람들 마음 밭도 봄갈이를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오래 돌보지 않아서 묵정밭이 되지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고요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현대인들은 늘 무엇에 쫓기듯 사느라 차분히 자기성찰을 할 겨를이 없다고 한다. 일이 많아서 바쁜 사람도 있겠지만 시간이 있어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왠지 제 마음을 들여다보기 거북하고 싫어서 일부러 외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슨 이유로든 오래 살피지 않고 묵혀둔 마음 밭은 굳어지고 잡초가 우거지게 마련이다. 우거진 잡초를 제거하고 갈아엎기 위해선 위해서는 낫과 쟁기가 필요하다. 철저한 자기성찰로 낫을 벼리고 종교의 경전이나 성인들의 금언으로 마음을 가는 보습을 삼아도 좋을 것이다. 좋은 책이나 강의를 통한 공부나 돈독한 신앙생활, 명상수련 등이 낫과 쟁기가 될 수도 있을 터이고.
나라 역시 갈지 않으면 온갖 비리와 부정이 우거진 묵정밭이 된다. 도무지 자기성찰이라곤 없는 후안무치, 적반하장, 내로남불로 철갑을 두른 자들이 정권을 잡고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 다가오는 선거에서는 반드시 갈아엎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