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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영독도 의용수비대원 국립 대전 현충원에 잠들다

김두한 기자
등록일 2020-11-19 15:11 게재일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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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마지막 영웅 독도의용수비대 이필영(97‧울릉읍 도동리)대원이 가족들의 애도 속에 18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도의용수비대묘역에 부인과 함께 잠들었다.

한국 전쟁의 혼란한 시기를 틈타 일본이 울릉군 독도를 침탈하려했지만, 지난 1953년 4월부터 울릉도 청년들이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 울릉군 독도를 지켜냈다.

대원 33명 중 한 명인 이 대원은 지난 15일 집에서 쓰러져 119편으로 울릉군보건의료원을 찾아 진단결과 범발성 복막염(천공)으로 판명, 이날 헬기로 영남대학교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소생하지 못하고 16일 숨졌다.

유족들은 이 대원이 100년 가까이 살아온 울릉도에서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포항시민장례식장에서 3일장을 치르고 유골을 18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도의용수비대원 묘역으로 옮겨 먼저 작고한 부인 남선녀씨 유골과 함께 안장했다.

정부도 울릉군 독도를 수호에 공헌한 이 대원의 빈소에 문재인 대통령의 조기, 정세균 국무총리 조화, 강경화외교부장관의 위로금을 보냈고, 김유문경북남부보훈지청장이 빈소를 찾았다. 

이철우 경북지사, 이강덕 포항시장, 김병욱국회의원 조기, 김남일 환동해본부장, 신순식독도재단사무처장, 울릉군에서는 허필중부군수를 비롯해 조문단이 빈소를 방문했다.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에서는  이종윤사무처장, 조석종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장이 빈소를 찾았다. 이밖에도 각종 독도관련단체 및 사회단체에서 많은 조화를 보내 고인을 애도했다.

이 대원은 1924년 울릉도에서 태어나 10대 대부터 어부 생활을 했고 독도를 텃밭처럼 들나들면서 성장 20대에 울릉도에서 몇 척 없는 엔진이 장착된 제법 큰 어선(일명 발동선) 선주가 됐다,

이 어선을  이용 독도와 울릉도를 오가면서 미역채취, 해녀를 실어나르는 등 어업에 종사하다가 29세 때 고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이 부탁을 받고 독도의용수비대원으로 활동을 시작, 대원막사건축자제와 보급품, 대원들을 실어 나르면서 활동했다.

당시 이 대원은 보급선 삼사호(당시 5t급)선주 겸  기관장으로 활동하면서 독도를 60여 차례 보급품과 대원들을 수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울릉도내에 엔진이 장착된 어선은 10척, 정도로 알졌다.

하지만 한때 독도의용수비대원이 아니다는 가짜 논란에 휩싸여 마음 고생도 했지만 홍순칠 대장이 쓴 책에 삼사호가 보급품을 실어 날났다고 기록돼 있고 제주해녀 A씨(87‧제주도)가 증언하는 등으로 가짜를 불식시켰다.

당시 이 대원은 “당시 울릉군 독도 지키는데 기여한 공은 내가 가장 컸다”며“내가 독도의용수비대원이 아니면 독도의용수비대자체가 없다”고 흥분하기도 했다.

이 대원은 이 같은 공로로 지난 96년 4월 6일 보국훈장(광복장)을 받았다. 이 대원은 울릉도에 살면서 독도연구단체 및 대학생 등이 찾아오면 당시의 생생한 현장 상황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설명하는 등  마지막 까지독도수호에 힘쓰기도 했다.

이 대원의 사망으로 현재 생존 독도의용수비대원은 5명으로 줄었다. 생존대원은 서기중(92, 울산), 오일환(91, 부산), 정원도(92, 울릉), 최부업(90,포항), 박영희(86. 냠양주) 대원만 남았다. 이제 울릉도에는 정원도 대원만 생존해 있다.

/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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