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이란 어떤 것인가? 초심은 순수하며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편견 없는 마음이다. 초심은 있는 그대로 보는 자세로서 비판단(non-judging)의 태도이며, 내편 네편을 구별하지 않는 열린 마음이다. 이처럼 겸손한 마음과 경청의 자세가 사실(fact)을 보는 정확한 눈을 가지게 해 준다.
문 대통령의 초심은 취임사에 잘 나타나 있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대통령답게 ‘촛불초심’을 역설하였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며…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고…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며…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 대한 기대가 컸다. 게다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는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라”고 했으니 대통령의 좌우명이라는 ‘정자정야(政者正也)’를 믿었다.
아뿔싸! 착각이었다. 대통령의 정치적 수사(修辭)에 현혹되어 ‘권력의 속성’을 잊었던 것이다. ‘권력의 맛’을 보자 마음이 바뀌었다. 통합과 공존의 초심을 잃었으니 나라는 두 동강 났고, 아전인수(我田引水)로 해석하는 평등·공정·정의는 개념부터 다시 규정해야 할 판이다. 대통령의 당부대로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총장을 제거하기 위해 측근감찰·조직개편·인사이동 등 온갖 압박을 가하는데도 대통령은 말이 없다. 이 정권의 특허품이 바로 ‘내로남불’과 ‘표리부동(表裏不同)’이다. 정치의 생명은 신뢰인데,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초심은 허언(虛言)이 된지 오래다. 대통령은 ‘정의의 편’이 아니라 ‘권력의 편’이었다.
그럼에도 올해 초 연두기자회견에서 또 다시 “임기후반에도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했다. 기막힌 위선이다. 이미 초심을 잃어버렸는데 무슨 말장난인가? 예스맨(yes man)과 ‘문빠’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민심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초심의 상실 여부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 판단하는 것이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초심이 지켜졌다면 왜 국민이 “나라가 니꺼냐”라고 항의하겠는가. 대통령이 초심을 잃었으니 주권자의 민심이 떠나는 것은 당연하다.
권력자가 초심을 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권력이 마약’임을 깨닫고 권력에 취하지 않아야하기 때문이다. 초심을 잃으면 민심을 받드는 ‘수단이 되어야 할 권력 자체가 목적’이 된다. 대통령이 정권재창출이나 퇴임 후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정략적으로 권력의 논리에 집착하면 할수록 불행의 길을 자초하게 된다. 우리의 헌정사를 보면 재임 중 권력으로 퇴임 후를 대비했던 어떤 대통령도 자신을 지켜내지는 못했다. 대통령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선심초심(禪心初心)’을 쓴 스즈키 순류(鈴木俊降)는 “항상 시작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 초심을 유지하는 비법”이라고 했다. 문대통령도 2017년 5월 10일 국민에게 엄숙히 약속했던 통합과 협치, 공정과 정의, 겸손과 소통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