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가레타 망누손은 스톡홀름에서 패션광고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출산 후 프리랜서로 그림을 그립니다. 그녀는 최근 가까운 친정과 시댁 어머니 두 번의 죽음을 연달아 경험하지요. 가족들과 집을 정리하다가 친정 어머니 물건에 메모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버릴 것, 벼룩시장에 내다 팔 것, 자선단체에 기부할 것 등 꼼꼼한 요청이었습니다. 연달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물건 정리가 다 끝난 후 그녀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왜 죽은 다음에 물건을 타인이 정리해야 하는 거지?” 살아 생전 스스로 데스 클리닝을 해 보리라 결심합니다.
모리 슈워츠 교수는 루게릭 병 초기 증세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습니다. 브렌다이스 대학 동료 교수가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힘겹게 장례식에 다녀온 후 모리 교수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합니다. “모두 부질없는 짓이야! 다들 고인을 칭찬해 주었지만, 정작 죽은 사람은 한 마디도 듣지 못했으니 말이야.” 자신도 병이 깊어지고 더 이상 외출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모리 교수는 한 가지 기발한 생각을 떠올립니다. 부랴부랴 몇 군데 전화를 걸지요. 날을 정해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어느 쌀쌀한 일요일 오후 집으로 친구들과 가족들이 모입니다. ‘모리 슈워츠의 생전 장례식’.
죽은 뒤에 치를 장례식을 미리 앞당겨서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치른 것이지요. 참가자들은 모두 한 마디씩 하며 모리 교수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눈물 흘리는 사람, 환하게 웃는 사람, 시를 손수 지어와 읊어준 사람. 모리 교수는 그들과 함께 울고 웃습니다. 가슴에 묻어만 두고 하지 못했던 말들을 모리 교수는 이날 다 쏟아냅니다. 생전 장례식은 모두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주었습니다.
삶을 어지럽히고 복잡하게 만드는 물건들, 관계들, 경험들. “만약 내일 내가 죽는다면?” 이 근본적인 질문 앞에 진지하게 대답하는 자세로 오늘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면, 우리 눈이 밝아져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분별하며 살 수 있겠지요. 고전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계속 질문해 주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다르지 않습니다.
1월의 마지막 날, 한 번 팔 걷어 부치고 함께 묵은 것들을 비워내는 대 청소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누군가의 손에 의해 버려지고 소멸되는 인생이 아니라, 스스로 앞당겨 대 청소를 시작하며 인생을 돌아보는 지혜가 그대와 나의 삶을 한 뼘 풍요롭게 하지 않을까요? /생각학교ASK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