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문 대통령의 ‘사드배치’에 대한 ‘국회비준’ 주장은 물론,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요구 배경에 정면배치된다. 이런 이율배반적 선택에는 석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가운영의 원칙이 그때그때 달라서는 곤란하다.
청와대는 일단 형식적 측면에서 잘못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국정 기본계획과 정부 일반정책, 군사에 관한 중요사항 등은 헌법상 국무회의 심의 사항이고, 대통령은 조약의 체결·비준권을 갖는다는 근거다. 그러나 평양선언의 전제인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1월에 출간한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사드 배치는 민족사, 문명사같은 큰 차원으로 봐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면서 “합의 전에 이 문제를 놓고 사회적 공론화가 이뤄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골프장 매입비용 1천억원 등 중대한 재정부담을 초래한 국제합의”라며 국회 비준 동의를 요구했다.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엔 국가안보와 직결된 조치들이 담겨 있음이 명백하다. 무기배치 및 병력이동 등 재정요인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군사합의 체결 전에 국회 등 공론장에서 제대로 검토된 적이 없다.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은 가운데 대북 억제력 손상,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은 여전하다.
자유한국당이 평양공동선언과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 비준에 대해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헌법재판소에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기로 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갑자기 “현행 헌법과 법률체계상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라며 국회 동의를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국토로 명하고 있는 헌법에 반하는 위헌적인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이쯤 되면 이중잣대를 갖고 아전인수식 논리를 펴는 문재인 정부의 자가당착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분명히 평양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 동의를 요구했다. 평양선언의 성격을 ‘국가간 합의’로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라면서 국회 비준이 오히려 위헌이라는 억지주장를 펴는 것은 정상적인 논리체계를 크게 벗어난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대화의 진전을 견인하려는 조바심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이렇게 교졸한 방법까지 동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앞뒤 안 맞는 정부의 대북정책 과속이 오히려 국가의 미래에 먹구름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