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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그리 정신

등록일 2018-06-06 20:55 게재일 2018-06-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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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은 요즘 젊은이에게는 대세다. 영국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이미 일과 삶의 균형을 생활의 방식으로 채택하면서 이 말을 사용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작년부터 이 용어가 본격 등장하고 있다.

가정보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던 50~60세 이상의 기성세대에게는 다소 생경스런 용어다. 요즘 젊은이는 일은 적게 하고 월급만 받고 싶어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할 만한 표현이다.

6·25 전쟁 직후 폐허가 된 우리 경제가 성장하기까지는 ‘헝그리 정신’이 있었다. 기성세대가 그 정신의 주인공들이다. 배가 고파서 이빨을 깨물고 열심히 일을 했던 시절의 추억이다. 배고픈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눈에 독기를 품고 일했던 그 모습이 헝그리 정신이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 임춘애 선수를 두고 당시 언론에서는 ‘라면 소녀’라 불렀다. 어려운 환경에서 운동을 해 3관왕이 된 그녀의 헝그리 정신을 그렇게 표현했다. 라면만 먹고 달린 것처럼 다소 과장된 부분도 있었으나 헝그리 정신 그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정신문화 유산이었다.

대만에는 81년생 이후의 출생자에 대해 ‘딸기 세대’라 부른다. 운반과정에 쉽게 상처를 입는 딸기처럼 조금만 역경이 닥쳐도 쉽게 좌절하는 젊은이를 비하한 표현이다.

배부르고 등 따스하게 태어난 요즘 젊은이에게 헝그리 정신은 없다.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라 같이 악착스러울 이유도 별로 없다. 물려받은 유산을 잘만 관리하면 지금보다 더 잘 살수 있다는 생각인지 모른다. 그들에게 헝그리란 단어가 굳이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차이를 세대차라 보면 된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보와 보수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했다. “진보는 헝그리 정신으로 뭉치고 선전에 능한데, 보수는 목소리를 잘 모으지 못하고 헝그리 정신도 없는 것 같다.”

지금 우리시대 보수라 지칭하는 정치인들은 과연 배고파 본 기억이 남아 있을까. “헝그리 정신 없다”는 그의 말 새겨볼 만하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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