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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살 마르크스가 보는 세상

등록일 2018-05-11 20:50 게재일 2018-05-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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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5월 5일 어린이날은 카를 마르크스(1818∼1883)가 세상에 태어난 지 200주년 되는 날이었다. 근대세계를 움직여온 거인으로 우리는 마르크스를 빼지 않는다. 호사가들은 지난 3세기를 대표하는 저작으로 루소의 ‘사회계약론’(1762), 마르크스의 ‘자본’(1867),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1929) 세 권을 거명한다. 여기에 다윈의 ‘종의 기원’(1859)을 덧붙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에스파냐 사회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중의 반역’에서 유럽을 대표하는 세 나라로 영국, 프랑스, 도이칠란트를 거명한다. 영국의 산업혁명, 프랑스의 정치혁명, 도이칠란트의 정신혁명으로 현대세계의 근간(根幹)이 만들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지구촌이라 부르는 글로벌 시대를 되뇌게 된 데에는 이들 세 나라의 성과가 근저에 자리한다. 만일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 나라를 꼽으라면 여러분은 어디를 거명하시겠는가?!

각설하고, 마르크스가 대면한 19세기 유럽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횡행하는 불평등의 시공간이었다. 내다팔 것이라고는 육신 하나밖에 없는 임노동자의 삶은 신산(辛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의 대표저작은 ‘자본과 임노동의 화해할 수 없는 대립관계’를 잉여가치의 관점으로 풀어낸 역작으로 수용된다. 근대유럽이 세계에 선물한 두 가지가 과학기술과 자본주의라면, 마르크스는 21세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궁금하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직전인 1988년 봄, 석탄연기 자욱한 알렉산더 광장에서 거대한 동상과 대면한 일이 있다. 앉아 있는 이는 마르크스였고, 서 있는 사람은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였다. 헝가리를 필두로 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사회주의 첨단을 달린다는 동도이칠란트까지 흔들리던 시점에 만난 그들. 무표정한 얼굴의 두 사람에게 지금 심정이 어떠한지를 물었지만 그들은 끝내 말이 없었다.

동도이칠란트 전역에서 ‘탈주자’들이 줄을 잇고,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을 다시 찾는다. 동상에는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라고 적힌 종이쪽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은 1990년 10월 3일 도이칠란트는 분단 45년 만에 재통일된다. “하필이면 우리나라 개천절에 통일될 게 무어람” 하는 볼멘소리를 기억한다.

1867년 베를린에서 출간된 ‘자본’이 성황리에 발매된 곳은 러시아였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이자, 가장 늦게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한 제정 러시아에서 1870년 번역-출간된 ‘자본’은 불과 1주일 만에 초판 2천부가 매진된다. 베라 자수리치 (1851∼1919) 같은 여성 혁명가의 뒤를 이은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과 레온 트로츠키(1879∼1940)가 사회주의 10월 혁명을 완수한 1917년은 ‘자본’ 출간 50년이 흐른 뒤였다.

그러하되 우리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과 소련의 몰락 및 자본주의 회귀현상을 목도했다. 1980년대 레이건과 대처가 서둘러 도입한 신자유주의가 세계전역을 강타하고 그 여파는 현재 진행형이다.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 대체재를 찾지 못한 채 떠돌고 있으며, ‘사민주의’라도 감지덕지(感之德之)라는 심정으로 일상을 영위한다.

오늘날에도 자본과 임노동의 화해할 수 없는 대립관계는 의구하게 제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삼성과 한진 같은 재벌의 행악질이 언론을 장식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다. 이럴진대 눈감고 생각한다. 마르크스가 살아있다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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