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은 1883년에 발행된 한성순보를 꼽는다. 그러나 한성순보는 정부가 발간한 신문이었고, 한문만으로 기사를 작성해 일반 대중화에 이르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정부 발행의 한성순보를 일각에서는 관보적 성격으로 보는 관점도 있으나 근대 신문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 최초 민간신문은 독립신문이다. 1896년 4월 7일 창간됐다. 서재필과 개혁파가 합작하여 창간한 이 신문은 순수 한글로 만들어 신분의 귀천에 상관없이 누구나가 읽을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신문으로서 높은 가치 평가를 받는다.
처음에는 국문판과 영문판으로 구성돼 만들었으나 나중에는 영문판만 별도로 발행했다. 격일간지로 출발하여 일간지로 발전했다. 우리나라 신문 역사에 여러 신문이 창간되는 계기를 만든 신문이여서 역사적 의미도 있다. 초창기 이 신문의 크기는 가로 22㎝, 세로 33㎝의 타블로이드판이며, 모두 4면을 발행하였다.
특히 초창기 독립신문은 만민평등과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삼아 당파를 초월한 엄정 중립의 보도자세를 견지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개방정책이 막 시작될 무렵이어서 신문이 국민계몽에 앞장서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정부정책을 국민에게 해설하고 전달하였으며, 국민의식과 사상 변화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
주말인 지난 4월 7일은 신문의 날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의 창간 일에 맞춰 1957년 한국신문협회는 이 날을 ‘신문의 날’로 지정하고 기념행사를 가졌다. 올해도 한국신문협회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공동으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제62회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서 신문협회는 “신문은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대표적 공공재”며 “신문의 공익성은 어느 매체도 대신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냈다.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면서 신문 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신문의 위기가 신문 본질의 기능적 위기로 이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하다. 신문 산업의 분발이 있어야겠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