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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렁 숲 탐방

등록일 2018-04-06 21:08 게재일 2018-04-0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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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희<br /><br />수필가
▲ 김순희 수필가

林(숲)이란 글자 속에는 나무 두 그루가 손을 잡고 서있다. 어깨도 서로 맞대고 있어서 바람이 불면 한 방향으로 몸을 뉘었다 일어서길 반복한다. 흔들릴 줄도 모르는 빌딩숲에서 넘어지기만 하던 나는 푸른 기운을 받으러 林으로 간다.

`어슬렁`이라는 제목에 꽂혀 얼른 신청했다. 지난해부터 기다린 이 모임은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포항시 가까이 위치한 산이나 숲을 천천히 걷는다고 했다. 무릎이 시원찮아 가파른 산은 겁부터 나는데, 한 달에 한 번 숲을 거닐며 나무 이름, 꽃 이름을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숲에 사는 동물과 곤충들이 숲과 도우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니 어슬렁어슬렁 따라 다니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마음에 쏙 들었다.

오늘 갈 곳은 봉좌산(鳳座山)이었다. 포항시 기계면과 경주시 안강읍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정상에 봉좌암(鳳座岩)이라는 봉황새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러 갈래의 등산로가 있지만 우리는 봉좌산 기도원에서 오르는 길을 선택했다.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거기다 흙보다 돌이 많아 걸을 때마다 돌산에 온 것을 환영하는 돌들의 부딪힘이 소리가 되어 몸에 전해졌다. 산이 오르락내리락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건 계속 오르막뿐이었다. 삼십분도 지나지 않아 숨이 턱에 찼다. 힘에 겨운 나에 비해 같이 간 사람들은 힘든 내색 하나 없다. 나 혼자만 얼굴이 벌겠다.

더 이상 못가겠다 싶을 즈음 샘이 보였다. 이름이 `참샘이샘`이다. 땔감나무와 풀을 베어 농사를 짓던 시절에 나무꾼들이 쉬던 장소에 한여름에도 얼음이 서려 있어 그곳을 파보니 찬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조롱박 모양의 간이 우물을 만들었는데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가난한 시절이었던지라 모두들 이곳에서 물을 마시며 허기를 채웠다고 한다.

뒤에 섰다 나도 한 바가지 얻어 마셨다. 가쁘던 숨도 잦아들고 달아오른 몸도 식혀줬다. 내가 힘들어하는 걸 눈치 챈 회원 한 사람이 주위에 핀 꽃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샘가로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에서 잎을 따서 비벼보라고 했다. 비비니 손에서 향긋한 숲 내음이 났다. 저리던 다리를 부추겨 더 올라갈 수 있게 만드는 향이었다. `비목`이라는 나무를 눈여겨 봐두고 또 오르기 시작했다.

봉좌산은 봄이면 연달래가 많이 피는 곳이다. 만발한 연달래를 보려면 담주 쯤 올라야 할듯하다. 군락지라는 표시를 뒤로 하고 일행들의 꽁무니만 따르며 오르다 문득 산 아래를 굽어보니 발아래 내가 사는 세상이 있었다. 아침까지 아등바등했던 그 곳이 내가 빠져나온 자리의 흔적도 지운 채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바람이 많았다. 포항의 바람은 모두 이 숲으로 모인 것 같았다. 왜 저리 맑나 했더니 바람이 나무의 손을 잡고 하늘을 열심히 닦은 덕분이었다. 가만히 서서 보자니 바람도 숨이 찬지 한소끔 쉬었다. 그사이 나뭇잎에 힘껏 매달렸던 자벌레 한 마리도 한 뼘 움직였다.

오르는 길이 숨이 찬만큼 내려오는 길은 더 가팔랐다. 오르는 속도가 늦은 사람은 내려 올 때도 맨 나중으로 쳐지게 마련이다. 관절이 약한 나는 소심하게 한 발 한 발 내 디뎌야 했다. 그때, 오솔길 양옆으로 도열한 나무들이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밀어 미끄러지는 나를 잡아주었다. 마라톤 코스에서 기록과는 상관없이 뒤쳐져 달리는 선수에게도 아낌없이 응원을 보내는 시민들처럼 나를 지켜주었다. 나무들이 왜 그렇게 손이 많은지 이제 알 것 같다. 나같이 어설픈 등산객들에게 보내는 박수소리를 더 크게 하려고 그렇게 봄이면 잎 같은 손을 내놓는 것이다. 그래서 봄이면 가지 끝까지 물을 퍼 올리느라 숲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다.

봉좌산을 내려오니 나는 탐방팀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자 다음 모임에 꼭 오라며 흔드는 그들의 손이 나뭇잎을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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