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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마중 가자

등록일 2018-03-23 20:45 게재일 2018-03-2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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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래<br /><br />수필가·시조시인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동무들아 오너라 봄 마중 가자 / 나물 캐러 바구니 옆에 끼고서 / 달래 냉이 씀바귀 모두 캐보자 / 종다리도 봄이라 노래하잔다”

봄이면 절로 흥얼거려지는 이 동요의 가사가 맞는지 인터넷에 찾아보니 봄 마중이 아니라 봄맞이란다. 하지만 마중이란 말이 더 좋아서 그냥 입에 익은 대로 부르기로 한다.

이 노래처럼 봄을 삶 속으로 맞아들이던 시절이 있었다. 앉아서 기다리거나 다니며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가운 가족이나 손님처럼 나가서 마중하던 시절이었다. 가난으로 헐벗었던 시절에는 겨울이 참 춥고 길었다. 그래서 따뜻한 봄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다 마침내 얼었던 땅이 풀리고 새싹이 움트는 삼월이 오면 너도나도 달려 나가서 봄을 맞았다. 달래와 냉이를 캐고 쑥을 뜯어서 새 봄의 기운을 식탁에 올리기도 했다.

농경사회에서는 동식물만큼이나 사람들도 계절과 기후변화에 민감했다. 해토머리엔 쟁기로 논밭을 갈아엎는 봄갈이를 하고, 봄풀이 돋으면 온종일 보리밭에 김을 매었다. 때마침 봄비가 내리면 물을 잡아 못자리를 만들고 봄채소의 파종을 하는 등 그야말로 신토불이로 계절을 사는 삶이였다.

산업사회가 되어 생활과 주거의 환경이 바뀌면서 대다수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에 많이들 둔감해졌다. 냉난방 시설이 잘 된 실내에서는 바깥의 기후나 풍경을 직접으로 체감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계절의 추이가 그다지 절실하게 와 닿지 않는다. 주말이나 되어 야외로 나가보고서야 봄이 벌써 이만큼이나 다가온 것을 실감하게 된다. 산업화가 삶의 주축이 되면서 경제적인 여유는 갖게 되었지만 자연과는 점점 멀어진 것이다.

이제는 먹고살만해졌으니 인문학적인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한다고들 한다. 아이들에게도 학습능력 못지않게 건강한 정서의 함양이 중요하다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틈만 나면 스마트폰에만 코를 박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떤 감성과 정서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늘이 아무리 맑고 푸르러도 쳐다볼 줄 모르고, 새싹이 돋고 꽃이 피어도 들여다보지 않고, 새가 울고 벌 나비가 날아도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과연 어떤 심성과 정서를 가질 수가 있겠는가. 걸핏하면 자살을 하거나 아무런 죄의식이 없이 남을 해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정서의 고갈과 심성의 황폐가 초래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물질만능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찌들고 비뚤어진 심성과 정서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연과의 친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로 망가진 사람이 산속에 들어가서 건강을 회복하는 것에서 보듯이 자연에는 병든 심신에 대한 놀라운 치유력이 있다. 인문학 따위를 배우지 않아도 얼마든지 삶의 지혜와 에너지를 얻을 수가 있는 곳도 자연이다.

자연과 친해지기 위해서 구태여 사람들이 북적대는 유명 관광지를 찾아갈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집에서 가까운 들이나 한적한 시골마을이 더 좋을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쑥도 뜯고 냉이도 캐고 진달래꽃도 따먹으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밝고 고운 정서의 함양과 튼실한 정신력을 기르는데 더없이 좋은 학습이 될 것이다.

친해지려면 먼저 이름부터 알아야 한다. 스마트폰 검색기능을 활용하여 주변의 가장 흔한 풀이름 나무 이름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림으로 그려보거나 사진을 찍어 인터넷 블로그에 올려놓고 그것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 첨가한다면, 예체능 과외학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최상의 자연공부 체험학습이 될 것이다.

식물뿐 아니라 곤충이나 새들의 이름도 알아두고 만날 때마다 이름을 불러주자. 그러면 그 나무와 풀꽃과 곤충과 새들이 한결 새롭고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어떤 인문학 수업보다도 생기롭고 즐거운 공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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