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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와 현실 사이

우정구(객원논설위원)
등록일 2017-12-04 21:03 게재일 2017-12-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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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시위`는 지난해 폴란드에서 처음 시작했다. 폴란드 정부가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자 이에 반발한 여성들이 검은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서 `검은 시위`란 이름이 붙였다. 당시 여성들은 생식권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검은 옷을 입었다고 한다. 폴란드 정부는 결국 낙태 전면금지 법안을 폐기하고 말았다.

우리나라도 작년 9월 보건복지부가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료법 개정안을 예고를 했다가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의 반발에 부딪혀 물러서고 말았다. 이후 낙태죄 폐지에 대한 청와대 청원이 봇물처럼 이뤄졌다. 최근에는 그 수가 청와대가 의무적으로 답변해야 하는 기준 20만 명을 넘어섰다. 청와대는 “현행 법 체제는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빠져 있다”며 낙태죄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다.

낙태죄는 OECD(경제협력개발국가) 35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일본, 이스라엘 등 9개국을 제외하고는 임산부의 요청에 따른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3년 낙태죄 관련법을 제정했으나 지금까지 이로 인해 구속된 사례는 단 1건 뿐이다. 법은 있으나 사실상 사문화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음성적으로 인공임신중절이 이뤄지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낳기도 했다.

이번 청와대의 발표는 현행 법 체제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재고의 뜻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당장 폐지 등의 조치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방안도 현실적으로 마땅치 않다.

지난 주말 서울 종로구 세종로 공원에서는 11개 여성단체의 공동 모임에서 `2017 검은 시위`가 있었다. 청와대의 발표에도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컨센서스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시위였다. 낙태죄는 태아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만을 두고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더 많은 사회경제적 요소들이 엉켜 있는 문제다. 사형제가 있으나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는 것과 같이 법과 현실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이런 것이다. 정부의 정책 결정이 궁금하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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