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작년 9월 보건복지부가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료법 개정안을 예고를 했다가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의 반발에 부딪혀 물러서고 말았다. 이후 낙태죄 폐지에 대한 청와대 청원이 봇물처럼 이뤄졌다. 최근에는 그 수가 청와대가 의무적으로 답변해야 하는 기준 20만 명을 넘어섰다. 청와대는 “현행 법 체제는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빠져 있다”며 낙태죄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다.
낙태죄는 OECD(경제협력개발국가) 35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일본, 이스라엘 등 9개국을 제외하고는 임산부의 요청에 따른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3년 낙태죄 관련법을 제정했으나 지금까지 이로 인해 구속된 사례는 단 1건 뿐이다. 법은 있으나 사실상 사문화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음성적으로 인공임신중절이 이뤄지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낳기도 했다.
이번 청와대의 발표는 현행 법 체제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재고의 뜻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당장 폐지 등의 조치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방안도 현실적으로 마땅치 않다.
지난 주말 서울 종로구 세종로 공원에서는 11개 여성단체의 공동 모임에서 `2017 검은 시위`가 있었다. 청와대의 발표에도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컨센서스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시위였다. 낙태죄는 태아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만을 두고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더 많은 사회경제적 요소들이 엉켜 있는 문제다. 사형제가 있으나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는 것과 같이 법과 현실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이런 것이다. 정부의 정책 결정이 궁금하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