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 `쇼미더머니 6`서 우승<BR>“실력파 넉살은 `제2의 개코`”<BR>“우원재 호소력·인간미 강해”
“제 이름이 불리는데 그때부터 아무 생각이 안 났어요. 그냥 힘이 풀리고 눈물이 났어요. 정신 차리고 나니 벌거벗은 느낌이었죠.”
역대 최고인 1만2천 명의 도전 래퍼 중 그가 마지막 1인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최근 종영한 엠넷 `쇼미더머니 6`에서 우승을 차지한 행주(본명 윤형준·31)는 “(그가 속한) 리듬파워 멤버들을 응원하러 갔다가 탈락하는 모습에 충격받아 마지막날 현장 지원을 한 터라 `우승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며 “라운드마다 최고치를 보여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환하게 웃었다.
행주는 `톱 6`이 경연한 세미 파이널 무대에서 왼쪽 눈이 포도막염으로 실명 수준이라는 아픔을 고백하면서 `레드 선`(Red Sun)이란 감동적인 랩을 선보여 파란을 일으켰다.
`행주 대첩`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막판 상승세를 보인 그는 수려한 랩 스킬을 자랑하는 강력한 우승 후보 넉살과 소속사 없이 출연해 진솔한 랩으로 승부한 우원재를 꺾고 우승 상금을 거머쥐었다. 파이널 무대의 경연곡인 `돌리고`의 랩 가사처럼 그는 `2017년의 남자`가 됐다.
다음은 최근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인터뷰한 행주와의 일문일답.
- `쇼미 6`에서 최고의 반전 드라마를 썼는데, 소감은.
△ 저는 물론 주위 누구도 우승을 점치지 않았다. 사실 예선 때 리듬파워의 지구인과 보이비를 응원하러 갔는데, 지구인이 예선에서 탈락하는 모습을 보고서 2년 전 내가 이 프로그램에서 탈락한 기억이 떠올랐다. 지구인 탈락에 충격받아 마지막 날 현장 지원을 했기에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왼쪽 눈 때문에 걸렸지만 그냥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나에게 이런 꿈만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지금도 얼떨떨하다.
- 우승자로 호명됐을 때 많이 울어서 소감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던데.
△ 이름이 불린 뒤로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냥 눈물이 너무 났다. 그날 응원하러 온 멤버들의 얼굴을 일부러 안 봤는데, 무대에 올라온 멤버들을 보니 너무 눈물이 났다. 파이널 당일 리허설 때, 1라운드 곡 `베스트드라이버즈`(bestdriverZ)는 호응이 적을 수도 있겠다 싶어 불안했다. 2라운드 곡 `돌리고`는 경연곡으로 자신 있었는데 어쩌면 `못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1라운드가 끝난 뒤 우원재를 제쳤지만 2라운드를 마치고는 `결국 예상대로 넉살이 우승하겠구나, 이게 좋은 그림이구나, 난 여기까지구나`라고 심적으로 내려놓은 상태였다.
- 이번 시즌 화제의 무대로 `레드 선`이 꼽힌다. 이 무대가 방송된 뒤 `행주대첩`이란 말도 등장했다.
△ 방송을 죽 보면 내가 주인공이 된 적이 없었다. 내가 싸이퍼에서 1등을 해도다른 래퍼들이 더 주목받았는데, 처음으로 주인공이 된 것 같아 그날은 기분이 붕 떠 있었다. 시작부터 우승 후보였던 넉살의 독주를 막았다는 칭찬에 마치 내가 `레벨 업`이 된 느낌이었다.
- 간발의 차로 이긴 넉살과 감정선이 살아있는 랩을 하는 우원재가 견제되진 않던가.
△ 누구나 인정하듯이 넉살의 실력은 `넘버 원`이다. 마치 `제2의 개코` 형을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넉살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고 느껴 자신감이 있었고 무섭진 않았다. 또 우원재는 랩을 할 때의 호소력과 인간미가 너무 셌다. 이 부분에서는 이길 수 없다고 느껴서 이기려 든 적이 없다. 내가 다른 부분을 더 충족시켜야 했다.
- `레드 선`을 선보일 때 눈이 실명 위기라는 사실을 고백했는데.
△ 이번 시즌에 참가하기 전 1년 가까이 치료를 받았다.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로 인한 포도막염으로 하루아침에 눈앞에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게 작년 10월이다. 갑자기 예비군 훈련을 받는데 지구인에게 `옆에서 누가 쳐다보는 것처럼 뿌옇다`고 말했다. 뿌옇고 덩굴 같은 게 따라다니는 느낌이었다. 무서운 것을 넘어 어이가 없었다. 병원에서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고서 1주일에 14㎏이 쪄서 우울하게 지냈다. 부모님께도 말씀드리지 못했고 혼자 있고 싶었다. `쇼미더머니` 출연을 생각할 수 없었다.
- 안타까운 일이지만 일부에선 감성팔이 랩이란 악플도 있던데.
△ 경연하면서 아파 보이고 싶지 않아 계속 다이어트를 하며 살을 뺐다. 나와의 싸움이었다. 랩을 잘해서 올라가고 싶었지, 감성팔이는 하고 싶지 않았다. 심사위원형님들이 `눈이 그렇다면서?`라고 질문하지 않았으면 말을 안 했을 것이다. `쿨`해 보이고 싶어 안 그런 척을 했는데, `레드 선` 때는 내 병이 감기 걸린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감기 걸린 상태이고, 공개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아`라고 솔직하게 얘기해야만 하는 곡이었다. 이전엔 누군가 눈 얘기를 하면 벌거벗는 느낌이었는데, 일기 쓰듯이 가사를 쓰고는 마음이 편해졌다. 부모님이 이번에 아시고 힘들어하셨는데 그것도 감당해야 했다.
-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 역시 `레드 선` 무대를 준비할 때다. 방송에서 최면을 받으러 가는 장면이 나왔는데 사실 랩을 잘하려고 나온 것이니 하고 싶지 않았다. `헛소리를 하면 어떡하지`란 걱정도 됐다. 시간이 촉박해서 고민할 겨를 없이 갔는데 방송에선 편집됐지만 눈물, 콧물 흘리면서 말도 안 되는 집안사를 얘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분이 안좋았다. 정말 `레드 선`을 목숨 걸고 했다. `어두운 그대로 내비둬`란 첫 마디를 쓰는 데 3일이 걸렸고, 가사 수정을 대여섯 번 할 정도로 신중했다. 정신적, 육체적인소모가 컸고 준비한 1주일이 길게 느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