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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대통령기록물

등록일 2017-07-28 22:01 게재일 2017-07-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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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조의 역대 왕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각 시대마다 역사를 정리한 기록물이다. 제 1대 태조로부터 25대 철종에 이르는 472년(1392~1863)간의 기록을 편년체로 서술하고 있으며, 정치·외교·경제·군사·법률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고 있는 조선왕조의 공식 국가기록이다. 또한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진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료이다.

왕조실록하면 대개 왕의 주변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들 중심으로 기록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여기에는 코끼리, 장금이, 공길이 등 당시 생활사의 면모를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들까지 다수 기록되어 있다. 몇 가지 기록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태종실록, 태종 11년(1411년) 2월 22일` `일본 국왕 원의지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코끼리를 바쳤으니 코끼리는 우리나라에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명하여 이것을 사복시에서 기르게 하니 날마다 콩 4.5두(斗) 씩을 소비하였다.` `태종 12년(1412년) 12월 10일` `전 공조전서 이우가 죽었다. 처음에 일본 국왕이 사신을 보내어 순상(馴象)을 바치므로 삼군부에서 기르도록 명했다. 이우가 기이한 짐승이라 하여 가보고 그 꼴이 추함을 비웃고 침을 뱉었는데 코끼리가 노하여 밟아 죽였다.` 이 기록으로 보아 태종 때 코끼리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조선에 처음으로 들어온 코끼리는 하루에 콩 4.5말을 먹는 큰 동물로 당시 고민거리가 되었던 차에 구경을 온 관리까지 밟아 죽였으니 졸지에 큰 죄까지 짓게 된 것이다.

`중종실록, 중종 17년(1522년) 9월 5일``대비전의 증세가 나아지자 국왕이 약방들에게 차등 있게 상을 줬다. 의녀 신비와 장금에게 쌀과 콩 10석씩을 하사했다.` 여기서 장금은 한류 열풍을 선도한 TV드라마 `대장금`의 주인공으로 실록에 등장하는 실존 의녀였다.

`연산군일기, 연산군 11년(1505년) 12월 29일` `전교하기를, 본디 나례(儺禮)는 배우의 장난으로 볼 만한 것이 없다. 또 배우들이 서울에 떼를 지어 모이면 도둑이 되니, 앞으로는 나례를 베풀지 말아 옛날 폐단을 고치게 하라, 하였다. 이보다 앞서 우인(優人) 공길이 늙은 선비 장난을 하며, 아뢰기를, (중략)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 하니 왕은 그 말이 불경한 데 가깝다 하여 곤장을 쳐서 먼 곳으로 유배했다.` 연산군 시대에 궁중에 광대들이 자주 드나들던 상황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며, 영화 `왕의 남자`의 주인공 공길 또한 `연산군일기`에 등장하는 실존 배우이며, 공길이 왕의 잘못을 비판하다가 유배를 가는 용기 있는 광대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광대들은 왕을 비롯해 탐관오리들의 비리까지 해학으로 풍자해 비판했다.

고전 실록이 이처럼 다양한 기록을 담을 수 있었던 것에는 사관들이 작성한 사초 이외에 관청의 업무 일지에 해당하는 시정기(時政記) 자료를 충분히 활용하여 폭넓게 당대사의 모습들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통령제를 채택한 민주국가 형태에서 대통령기록물은 매우 중요한 사초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신들의 불리한 자료들은 모두 파쇄 또는 소각시켰다. 출범된 지 2개월이 지난 현 정부에서 전 정부의 청와대에서 생산된 문건들이 대통령기록물 보관 장소로 이전되지 않고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구석이나 공간에서 다량 발견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 탄핵된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공직자들의 정신자세가 얼마나 무능하고 무책임했는지 짐작으로도 알 수 있다. 국가의 정통성이나 민족의 자긍심에 국가기록물이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공직자들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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