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지역이 배출한 민족시인 이상화에게 봄은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이었다. 그는 그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빼앗긴 들은 조국이요, 봄은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을 바라는 민족의 염원으로 표현했다. 그의 시는 첫 구절부터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첫 줄의 표현에서 조국을 잃은 아픔을 함축적이고 강하게 나타냈다. 그 속의 봄은 광복의 소망과 기쁨이다.
1901년 대구시 중구 서문로 2가에서 태어난 그는 개벽 70호에 이 글을 발표한다. 개벽은 곧바로 판매금지 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은 유명세를 탄다. 민족시인, 저항시인이란 닉네임도 덩달아 따라 붙었다.
봄은 계절의 시작이다. 한해의 초반, 봄꽃과 함께 시작하는 봄은 사람들에게 설레임을 준다. 봄이 희망을 표현하는 이미지로서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화가 봄을 소재로 광복의 소망을 표현한 것도 봄에 거는 많은 사람들의 희망을 담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벚꽃이 만개를 시작했다. 봄의 화려한 꽃 잔치가 봄의 전령사를 통해 전해져 오고 있다. 진해군항제를 비롯 경주의 벚꽃축제, 달성의 진달래축제 등 각종 행사가 시작을 알리고 있다. 희망의 계절에 민족시인이자 우리 고장이 낳은 이상화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다. 대구 근대로의 여행길에서는 그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봄꽃과 함께 3·1운동 길, 청라언덕, 계산성당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다보면 이상화 고택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가 일생을 마감하기 전 4년동안 살았던 곳이다. 대구시민의 보존 100만명 서명운동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대구 달성공원에는 이상화시비도 있다. 1948년 김소운, 구상 등 시인들이 중심이 돼 세운 한국근대시인 최초의 시비다. 5월에는 대구 수성못에서 상화문학제까지 열린다고 하니 봄은 이상화와 인연이 많은 계절이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