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때 산림으로 꼽혔던 여헌 장현광(1554~1637)은 그의 용사일기 `피란록`에 `이치가 이미 혼란한데도 사람과 사물이 혼란하지 않는 이치는 없으며, 도가 이미 망했는데도 집안과 나라가 망하지 않는 도리 또한 없다`라고 적고 있다. 이 글은 임진왜란 피란일기에서 나라가 망하게 된 원인을 말하고 있다. 나라가 초토화된 임진왜란의 원인은 복합적일 것이다. 그런데 조선이 임진왜란에 잘 대처하지 못한 까닭은 왜군이 훈련이 잘 되고 무기가 발달된 것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것들은 주변적인 것이고, 주된 원인은 지배계층 스스로의 잘못이라 밝히고 있다.
그 근본 원인을 당시 조선사회는 이치와 도리를 잃어버리고 임금부터 공경대부는 물론이고 백성까지 모두 자신의 직분을 내팽개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이치와 도리를 지켜야 할 임금과 관원들이 먼저 도망가서 군대와 백성이 그 자리를 지킬 이치와 도리는 없다는 것이다. 대포가 있고, 성이 있고 군대가 있어도 그것을 지킬 책임 있는 사람이 도망치면 모든 것은 무너질 뿐이다. 국가나 사회도 결국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러한 모임은 눈에 보이는 규칙이나 보이지 않는 규칙에 의해서 그 질서가 유지된다. 이러한 규칙은 어떤 궁극적인 가치기반 위에 존재하기 때문에 장현광이 말하는 이치와 도리라는 것은 그 사회의 규칙이 의지하는 가치기반을 말하기 때문에 서로가 그 가치를 지키기를 바라고 또한 지키리라 믿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 사이의 상호성이며 내가 지키면 상대도 지킬 것이라는 믿음 속에 상대방이 그 믿음을 배신하면 이쪽도 더는 그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게 되고 이치라는 것도 곧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유학에서는 사단(四端)으로 드러나는 인의예지의 천성을 기본으로 언어를 구사하여 상호간에 의사를 소통하고 도구를 이용하여 작업에 효율을 높이며 나아가 사회 제도를 운영하며 그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보람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 속을 살펴보면 상반된 두 부류로 구분된다. 현상으로는 사랑과 배반, 정의와 사악, 양보와 탐욕 등이고 인격으로는 대인과 소인이다. 대인은 내면세계가 객체화되어 이타적인 것에 충실하며 자신이 고난과 위험을 불사하고, 소인은 목전의 이득을 위해 배반과 탐욕을 일삼는다.
소인배들도 분명 사단의 천성을 지녔건만 무슨 까닭으로 배반과 탐욕을 일삼으며 질서를 파괴하는 것일까에 대해 맹자는 한마디로 `자기가 인의예지를 지녔다는 것을 생각지 않아서일 뿐이다`라고 단정하였으며 `인은 사람의 본심이고 의는 사람의 큰 길이다. 큰 길을 버려두고 가지 않으며 본심을 잃어버리고 다시 찾을 줄을 모르니 애처롭다`라고 말한다.
사람에게는 선천의 본연지성과 후천의 기질지성이 있다. 본연지성은 사단이고, 기질지성은 태어날 적에 부여받은 음양오행이 어느 한 쪽으로 편중되어 형성된 특수한 본성이다. 때문에 너무 강하거나 유약하거나 너무 민첩하거나 노둔하거나 하는 등 어느 한쪽으로 편향된 성품 때문에 사물이나 사람 또는 사회를 대할 때 균형감각을 잃기 쉽다.
기질지성도 본성이지만 동물적인 본능에 가깝다. 이 성질이 여과 없이 발동하면 욕구를 균형감 없이 무리하게 취할 수밖에 없기에 남에 대한 배려나 관용 따위는 사라지고 자신의 명성·이익·쾌락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명예나 안전, 행복은 일고의 가치도 없이 내팽개치고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못 느낀다. 결국 이런 부류들은 만인의 행복을 깨뜨리는 공공의 적으로 경계의 대상이 되고 법의 심판을 받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할 대상들이다. 현 시국에서 정의로 포장하고 벌어지는 불법시위나 그 시위를 조장하는 행위, 법조인이 법을 유린하는 사례,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여 법치주의를 흔드는 행위들은 사회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기에 국민들은 정밀하게 살펴서 이런 행태를 영원히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